층층나무과 산수유(山茱萸)나무의 열매가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다.
도봉서원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서울의 하나뿐인 서원이다. 서원은 국공립교육기관인 향교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사립교육기관으로 도봉서원은 이런 모적으로 생겼으며 당시에는 무릉도원에 비교 정도로 경치가 수려한 곳이였다.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났던 이곳은 정암 조광조 선생이 소년시잘부터 자주 왕래하고 청년기에는 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했던 곳으로 1573년(조선 선조6년) 정암의 학문적 덕행을 추모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창건 되었다.현재 남아있는 유적으로는 도봉서원 인근의 계곡 바위에 우암 선생의 친필을 새긴 도봉동문(道峯洞門)과 역시 주자의 시를 우암 선생이 대자로 새긴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 료장현송답잔원(聊蔣絃誦答潺湲)이란 암각문을 비롯하여 김수향, 권상하, 이재 등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여러 바위글씨들이 계곡 주변에 남아 있다. 도봉동문(道峯洞門) : 도봉의 동구 문이 열리는 곳 즉 도봉산 입구를 알리는 의미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 : 비가 개이고 달이 올라 시원한 바람이 다시금 특별이 이어 받았도다.
료장현송답잔원(聊蔣絃誦答潺湲) : 애오라지 거문고를 치며 노래하여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화답하네. 바위글씨는 도봉산에 2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계곡에 생태 보존으로 줄을 쳐놔서 다른 바위글씨들을 내려가 자세히 들여다 볼 수가 없어 아쉽다
도봉산은 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시, 의정부시의 접경지대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39.5m이며, 주봉(主峰)은 자운봉이다.
북한산(北漢山)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며, 서울 북단에 위치한다. 우이령(牛耳嶺:일명 바위고개)을 경계로 북한산과 나란히 솟아 있으며, 북으로 사패산이 연이어 있다.
면적이 24㎢로 북한산의 55㎢에 비해 등산로가 더 조밀하며, 산 전체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자운봉·만장봉·선인봉·주봉·우이암과 서쪽으로 5개의 암봉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오봉 등 각 봉우리는 기복과 굴곡이 다양하여 절경을 이루는데, 선인봉은 암벽 등반코스로 유명하다.
얼마 만의 산행이였는가? 산책하는 정도의 산행을 하자는 제의에 별 부담없이 약속을 하고 참으로 오랜 만에 도봉산을 찾았다.
도봉산 입구에는 식사하러 2년 전쯤 가본 적이 있지만 도봉산에 오른 것은 아마 족히 10년만인 것 같다.
남들은 멀리에서서도 명산인 도봉산을 찾는데 나는 지척에 두고도 이리 멀리했으니 나의 일상이 너무 무료했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이 참 많은 도봉산인데 말이다
도봉 능선길을 오른지 한시간 넘짓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등산화가 불편해서 가볍게 산행할 생각으로 운동화로 바꿔 신고 왔는데 비가 점점 더 오기 시작하니 미끌어질까봐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도 조금 더 오르곤 하였지만 비는 계속 내릴 것 같아 "비오는데 그냥 내려갑시다"하고 하산을 하였다. 나는 이 정도 산행이 내몸에 무리가 되자 않아 딱 좋은데 일행은 아쉬움을 말했다.
입구까지 내려오니 비는 그치고 했빛은 얄밉게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바위에 걸터 앉아 준비해온 먹거리들을 먹은 후 우이암길로 다시 올라갔다.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도봉산 언저리만 훌터 본 격이지만 마음에 드는 풍경은 사진 한 컷에 담으며 상쾌한 숲내음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 이렇게 좋은 곳을 가까이에 두고 멀리하며 살았으니 . . .
그러나 안타깝게 내 머릿 속에는 산행은 힘들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는 기억때문에 더 오르지 못하고 폭포교를 건너 자운봉 길로 내려왔다.
그래도 10시 약간 넘은 시간에 출발하여 3시가 넘어 입구까지 내려왔으니 어쨌거나 산행의 즐거움을 누리고 운동도 많이 한 것이 아닌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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