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그건 그냥 추억일뿐

智美 아줌마 2007. 5. 5. 00:04

오랜만에 울엄니와 한참을 전화 통화를 했다.
며칠 후면 어버이 날이라 여기 저기 올려 있는 글을 보면서
불현듯 울 엄니 생각이 났다.
이틀 전에도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전화 통화를 하였지만
오늘은 엄니가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시는지 내 얘기를 많이 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막 시작하던 때
난 모 가무단에 오디션을 봐서 합격을 하였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능쪽에 소질이 참 많았고 즐겨하였는데
그래서 울 아빠는 늘 내가 훌륭한 화가가 되기를 바라셨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 보시기를 좋아 하셨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는 언제나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우리 딸은 꼭 훌륭한 화가를 만들거야' 라고 하셨는데
아빠는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여러 번의 미술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였지만
그림 그리기는 나와 점점 멀어져 갔고
미술 선생님께서도 미대 가기를 권하셨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노래 공부를 하였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늘 음악 속에서 우리를 키우셨기 때문에
음악은 늘 내곁에 있었고 나의 생활이였다.
우연한 기회에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합창을 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9년 동안 내내 노래를 불렀다.

선배들은 나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고
후배들의 노래 지도도 열심히 하였으며 교대 음악경연대회에서도 입상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노래 공부를 하였고 모 가무단에 합격을 하였지만
엄니와 오빠가 입단을 반대하시고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그 가무단이 사립 가무단이여서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고
대신 국립 가무단에 합격을 하면 허락하시겠다는 이유였다.
그때는 이렇다할 오페라단이나 뮤지컬단들이 없는 시절이였고
연극인의 산실인 소극장이 처음 생기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런 예술 단체들을 아주 생소해 하였던 때이다.

그러던 어느날 TV에 내가 오디션을 봤던 가무단의 공연이 방송이 되었고
그 후로도 여러 번 방송이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본 엄니는 허락하지 않은 것을 미안해 하셨고
내가 살아가는 것을 보시면서 예술적인 기질들을 생활 속에 묻고 사는 것이
가끔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당신이 바꿔 놓으신 것같아 후회하셨다 한다.

그 당시 난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웠지만
엄니와 오빠의 보살핌 속에 있었기 때문에 포기를 하였었다.
엄니는 그때 너가 고집을 피웠더라면 또 다른 인생이 너의 것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너는 포기를 하더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키우시면서 가끔 사주 팔자를 봤을 때
나는 예술쪽으로 풀리면 외국도 여러번 나가고 엄니가 내덕을 많이 보고 산다고,
그쪽으로 나간다고 하면 막지 말라고 했었다고 하신다.
점술가들이 한 얘기가 평생 잊혀지지 않고 엄니의 기억 속에 깊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아마 엄니한테는 당신의 잘못으로 내 인생이 바뀐 것 같다는 미안함이
죄의식 같은 것으로 평생 마음에 담고 사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엄니한테 이렇게 말을 했다.

"엄니, 내 팔자는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그때 바뀐거야.
아빠가 살아 계셨으면 아마 난 계속 그림 공부를 하였을거고
그럼 거기서 부터 내인생은 지금과 다른 길을 갔을테지." 라고 . . .
그리고 그건 그냥 추억일뿐이라고 . . .

2007년 5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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