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이 서러움 누가 만들었나

智美 아줌마 2007. 5. 9. 22:09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다 늙고 병들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
어버이 날, 안산 엄니한테 다녀왔다.

3년 전 시엄니는 돌아가셨기에 친정 엄니한테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 어버이 날 친정 엄니한테 간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지 아닐까.
참으로 씁쓸고 마음 아픈 기억이다.

91세를 꽉 채우고 돌아가신 시엄니, 나까지 포함해서 며느리는 넷이였지만
시엄니한테 며느리는 나밖에 없다고 하실 정도로 날 많이 예뻐하셨다.
그렇게 이쁨 받고 살아온 나는 그것이 좋지만은 않았다.

7남매의 막내 며느리
7남매의 막내 며느리인 나는 7남매의 몫까지 자식 노릇(?)을 해야 되었기에
늘 마음이 아프고 혼자 삭히기에 너무 힘든 세월이였다.

그러함을 아시는 시엄니께서는 항상 미안해 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면서
"너가 무슨 죄로 내 치닥거리는 너 혼자 다해야 하냐" 하시면서
나한테 당신이 죄인이라고 하셨다.

나 스스로 시엄니는 머리에서 발 끝까지 하나하나 다 챙겨드리면서
친정 엄니는 늘 뒷전으로 밀어 내놓고 있었다.
그래도 친정 엄니는 늘 "시엄니한테 잘해드려라 사시면 얼마나 시시겠냐,
나중에 못해드린것 후회되지 않게 잘해드려야 한다." 하셨다.

나 또한 친정 엄니와 같은 마음으로 시엄니한테 정성껏 해드렸다.
내 마음 편하려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 . .
그런데 난 후회를 한다. 너무 너무 많이 아주 많이 후회를 한다.

피 한방울 안섞인 시엄니한테는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해서 섬기고
나를 낳아 주신 울엄니한테는 늘 서운하게 한 것이 세월 흐른 지금에서야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가 된다.

시엄니 두개 해드릴 것을 내 엄니한테도 같이 하나씩 해드릴 것을 . . .
왜 그렇게 시엄니만 챙기고 울엄니는 뒷전으로 밀어 내놓았는가를 . . .
하지만 때늦은 후회, 지금에 와서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이다.

엄니가 우리들에게서 떠날 날을 하루하루 앞 당기고 계시기 때문에
이제 와서 사무치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란말인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니 몸을 씻겨 드렸다.
며칠 전 전화 통화하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 하시던 중
몸이 아프시니 당신 혼자 목욕하시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니 며칠 있다가 내가 가서 씻겨 드릴게 이삼일만 더 참고 계셔요.
하고는 오늘 엄니 몸을 씻겨 드렸다.
그동안 많이 야위어서 정말 피골이상접하다할 정도로 마르셨는데
오늘 엄니 벗은 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 뽀얀 살들은 다 어디로 가고 뼈만 앙상하니 정말 . . .
스무살이 되도록 엄니 옆에 누워 쓰다듬고 만지던 엄니의 하얀 배와 젖무덤,
바지를 입으면 오동통하니 뒷태가 예쁘던 엉덩이 . . .
흔적만 남아 다 어디로 가버리고 금새 주저 앉아버릴 것만 같은 뼈만
휭하니 버티고 있었다.

정말 이 아픈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
목욕을 시켜드리고 엄니 빨래꺼리들을 찾아서 손으로 해 널고
나이 들어 처음으로 엄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다.

"엄니, 내가 나이 들어서 처음으로 엄니한테 꽃 달아 드리네."하고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꾹꾹 참아 누르고 있던 눈물이 솟구쳐
끝내 엄니 앞에서 흐느껴 울고 말았다.
엄니는 내 손을 꼬옥 잡으시고 다독이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이 땅에 사는 딸들이여,
딸의 인생은 어찌 이렇게 서러울까요.
이 서러움 딸인 내가 만든 것은 아닌가요?
내가 만든 서러움에 내가 섧고 내 엄니를 섧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요?

이 땅에 사는 며느리들이여,
며느리의 인생은 어떤가요?
시엄니 지극 정성으로 섬기고 남편한테 사랑 받으니 행복한가요?
그 행복 뒤에 계시는 내 엄니는 딸을 그리워 그리워하고 계시는데
그리 살으니 행복한가요?

2007년 5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