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연 나들이

영화 문영

智美 아줌마 2017. 1. 13. 16:10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하얗게 온 날이었다. 명동 나가기 전 다행히 눈이 그쳐 땀나게 눈 쓸어 놓고 외출 준비를 했는데 우리 집은 여러 세대가 사는 다세대로 10년 넘게 이 집에서 살고 있지만, 눈 한번 같이 쓰는 집이 없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실은 나도 답답할 건 없는데, 늘 눈 쓰는 건 내 차지가 된다. 게다가 우리 집이 안쪽에 있다 보니 건물 3동 골목 끝까지 쓸어 나가다 보면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연신 나오는데 얄미운 건 내가 눈을 쓸고 있어도 미안한 내색 하나 없이 애들이건 어른이건 밟고 드나든다는 것이다. 이웃 간에 인심이 너무 야박해진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 가정 교육 또한,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실감하고 산다.

 

그렇게 눈을 쓸고 며칠 전에 영화 문영을 예매해 둔 명동 씨라이브러리로 가려고 나가니까 땀나게 눈 쓸 때는 몰랐는데 날씨가 꽤 춥다는 게 느껴져 기온을 보니까 영하 7도라고 한다. 영화 보고 돈화문 국악당에서 무료 공연이 있어 보러 가려 하는데 저녁 되면 기온이 내려가 더 춥겠다.

영화 문영, 아가씨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태리의 데뷔작으로 대사가 없는 무언의 연기를 펼치는데 작은 체구에 표정이 압권이다. 어린 나이에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한 우수에 젖은 표정이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참으로 연기자는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문영은 여느 영화 상영 시간보다 훨씬 짧은 1시간 정도 상영되는데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무능력하고 술주정뱅이 아버지, 가정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버지, 할 수 있다면 아버지 자격을 박탈하고 싶은, 관계 부정이라도 하고 싶은 존재. 문영은 그런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 사춘기 꽃다운 소녀의 얼굴은 늘 그늘이 져 있고 세상을 향해 입을 닫아버린 아이였다. 행인의 얼굴을 작은 캠코더로 찍는 것이 엄마를 찾기 위함이라니, 그런 문영이 처음으로 마음을 연 희수에게 "언니, 우리 엄마 찾았어. "

 

 

배우 김태리의 첫 주연 데뷔작 <문영>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성장하는 문영과 희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신예 감독 김소연이 연출을 맡은 <문영>은 영화 <아가씨>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 김태리가 말없이 세상을 카메라에 담는 열여덟 소녀 '문영'으로 출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 그동안 장·단편 독립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에서 크고 작은 역을 맡아 온 배우 정현이 활력을 불어넣는 '희수'를 연기했다. <문영>은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제6회 서울프라이드영화제 등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했으며, 제28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이야기, 지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자, 하고 오랜 고민 끝에 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가 이미 2011년이었고, [문영]은 처음에 [subway,days]라는 제목의 20페이지 남짓한 트리트먼트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트리트먼트로 써두었던 글을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게 2012년이었고, 결국 53페이지가량의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그리고 그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게 되어 영화를 찍는데 탄력을 받아, 그해 말부터 준비하여 2013년 2월,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영 역 같은 경우는 연기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실제 캐릭터와 유사한 과거, 유사한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아무 표정 짓지 않아도 내면의 상처가 드러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배우를 찾고 싶었는데, 연기 활동을 하는 친구 중 그런 배우를 찾지 못한다면 비전문 배우를 찾아 캐스팅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만큼 문영을 캐스팅하는 데는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고자 했다.

 

졸업했던 대학 행정실에 찾아가 연기 전공생들의 사진을 모조리 받고, 단편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면서 문영 역을 할 만한 배우를 찾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졸업 작품에서 본 배우에게 꽂혀 한 달을 삼고초려하며 같이 작업하자고 열렬히 러브콜을 보냈지만, 연기를 그만뒀다며 결국 거절당했고, 좌절한 내게 친구가 소개해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배우 중 서늘한 이미지의 한 배우에게 꽂혀 같이 작업하기로 했지만, 그 배우가 번번이 미팅 약속을 어기고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 바람에, 신뢰도가 깨져 2주 만에 캐스팅을 취소했다.

 

촬영 일정은 다가오고, 주인공은 없었다.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배경은 겨울이었으면 했는데, 그냥 더 준비해서 여름에 찍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무렵, 필름메이커스를 통해 한 배우를 알게 되었는데, 이미지도 좋았고, 문영이처럼 어두웠던 유년시절을 보내고, 지금도 넉넉지 않게 살며, 배우라는 꿈을 좇고 있는 성실한 친구였다. 이 친구라면 문영을 잘 표현할 수 있겠구나, 만나자마자 같이 하기로 하고 늦게까지 술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아차, 다음 날 마지막으로 소개받은 한 명의 배우를 더 만나기로 했다는 게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소개받을 그 배우는 단편 영화 촬영 경험도 몇 차례 없었고, 연극영화과를 나오지도 않았으며, 극단 막내 생활을 하는 그냥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였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 그리 문영과 잘 맞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약속을 취소할까 하다가, 소개해준 분(극 중 혁철 역의 배우 소개였다)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거절하더라도 만나서 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난 게 결국 최종 문영 역을 하게 된 ‘김태리’ 배우였다.


 만나고 나서 보니 정말 내가 생각했던 문영의 이미지와 정반대였다. 그러나 사랑스러웠고 순수해 보이는 친구였다. 이 친구가 문영에게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친구랑 하면 신선하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와 문영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상상하니 신이 났다. 결국 전날 술까지 마셔가며 같이 하기로 약속했던 그 배우에게는 굉장히 미안했지만, 어렵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고, ‘김태리’배우와 함께하기로 하면서, 그제야 문영 역 캐스팅이 완료되었다.[제작 노트]

 

 

사실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카메라에 사람들의 얼굴을 담는 말 없는 소녀 '문영'
 추운 겨울, 술주정하는 아버지를 피해 뛰쳐나온 문영은
 연인과 울며 헤어지는 희수를 몰래 찍다가 들키게 되는데...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혼자이던 문영의 곁으로 희수가 들어온다.

 

문영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그녀가 말을 할 수 없기에 마음의 빗장이 닫힌 건지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다. 그녀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 주로 지하철역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매번 술에 전 아버지가 모진 욕과 폭언을 퍼붓는 그녀의 집은 지옥 같다. 그날 문영은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도로 집을 나와버린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소란한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한 여자(정현)가 대문 앞에서 누군가를 부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아마도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앙금이 남은 모양이다. 문영은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가 여자에게 발각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