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연 나들이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智美 아줌마 2016. 12. 27. 16:19

오늘은 서울대 병원 소화기 내과 정기 초음파 검사가 있는 날이다. 검사 시간이 10시 15분이라 뒤로 밀리지 않게 서둘러 일찍 나갔더니 얼마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검사를 마치게 되었다. 이왕 외출했으니 초딩이 여자 동창 모임 회비로 정기 예금 들어 놓은 것이 만기가 몇 날이 지나있어, 올해 지나기 전에 정리하고자 동창 가스나한테 전화했더니 문병 가서 동작동에 있다고 한다. 일찍 만나 처리하고 들어오려고 했더니 2시쯤이나 되어야 집 쪽으로 가게 된다고 해서 중간에 비는 시간을 나중에 보려고 미루어 뒀던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을 보기로 했다.

 

서울대 병원 가까이에 있는 대학로 CGV에서도 상영 중이라 그곳에서 보면 좋으련만, 영화 끝나는 시간이 2시라 약속 시각과 맞물려 약속 시간 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 명동 씨네 라이브러리에서 보게 되었다. 광고 시간 중에 도착해 상영하는 아트관에 들어가니까 한두 사람씩 드문드문 들어온다. 요즘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보다 자극적인 작품이 많고 그런 영화가 흥행도 되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을 보면 달리 보인다. 20여 명 정도 같이 봤나? 이 사람들이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이 영화를 보면서 평생 함께하는 진정한 친구 한 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그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다. 참으로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의 인연이 몇이나 될까. 친구의 죽음마저도 지켜봐 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어찌 보면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해 온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이 한순간에 절연한 안타까움이 아마도 후세에도 안타까움으로 전해지지 않을까. 영화 마지막에 에밀 졸라가 고향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는 세잔, 그러나 에밀 졸라가 기자들에게 "세잔은 사산된 재능”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쓸쓸한 세잔의 뒷모습이 가슴 찡하게 했다.

 

국내 최초 영화 전문 도서관과 아트하우스를 갖춘 CGV 명동 씨네 라이브러리 포스터

도서관 이용하려면 가방도 사물함에 넣어야 하고 입장 등록도 하고 들어가야 해서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고 입구에서 한 컷!!

아, 이 포스터 너무 좋다. 저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서로 마주보며 띄우는 잔잔한 미소가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빛을 그린 화가, 폴 세잔 & 진실을 쓴 작가, 에밀 졸라 위대한 두 예술가를 탄생시킨 특별한 우정의 이야기 사과 한 알로 회화 역사에 혁명을 일으켰던 위대한 화가, 폴 세잔. 그를 두고 파블로 피카소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 했고, 폴 고갱은 ‘세잔의 그림은 내가 가진 소중한 보물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그의 그림 수백 점은 전세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폴 세잔은 살아생전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했다. 평생을 그림에 헌신했지만 당대 함께 활동하던 마네나 모네 등과는 달리 말년까지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를 곁에서 지키며 예술가의 길로 인도한 친구가 있었으니, 영화 <박쥐>의 모티브가 된 [테레즈 라캥]부터 [목로주점], [나나] 등을 썼으며 ‘드레퓌스 사건’으로도 유명한 ‘행동하는 지성’이라 불린 작가 에밀 졸라였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며 남다른 우정을 쌓은 폴 세잔과 에밀 졸라.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으로, 때로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사랑하는 여자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누는 동반자로, 그리고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적으로 평생을 함께하며 성장해왔다. 말년에 이르러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지만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이고 강렬했던 그들의 우정은 두 예술가를 탄생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명성과는 달리 완벽하게 숨겨져 있었던 두 사람의 우정을 영화화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위대한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그 특별한 비밀을 드라마틱하게 들려준다.

 

청년 시절 친구들과 고향 생트빅투아르 산에서

 

 

 

폴 세잔 역을 연기한 기욤 갈리엔은 에밀 졸라 역을 제안 받았는데 새로운 도전으로 이브 생 로랑의 피에르 베르제 역이 졸라와 비슷하다고 느꼈기때문이고 반면 시나리오를 읽으며 세잔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의 관계와 부유하게 자란 이의 면모, 분노에 찬 젊은이라는 점에서 에밀 졸라 역을 제안 받았지만, 폴 세잔 역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에밀 졸라 역을 연기한 기욤 까네와도 19살 때부터 알았던 사이로 에베르토 극장에서 함께 공연하면서 가까워졌고, 연기 학교에 같이 다니기도 했다. 이미 서로 신뢰하는 사이였으므로, 두 인물 간의 친밀함이나 애정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으며 세잔을 연기하기 위해 촬영 8개월 전부터 그림을 배웠다. 세잔이 일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며 그가 붓을 어떻게 들었는지 살펴봤다. 그림을 가르쳐준 화가 제라드 트라캥디가 내게 지나치게 빨리 칠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비워 두고 채우려 하지 말고, 무언가를 그리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본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오르세 미술관도 함께 가서 세잔의 그림을 많이 살펴봤다. 컬러리스트인 아내와 함께 색채를 공부했고, 세잔과 졸라의 서신을 포함해 많은 글을 읽기도 했다. 촬영 전 얼마 동안 엑상프로방스에 집을 빌려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작품]은 읽지 않았다. 졸라가 바라본 세잔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대신 톰슨 감독의 시각에서 접근하려 했다. 세잔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옳은지는 모르는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자신의 재능을 느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행할 수 없는 나약함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세잔은 미쳐갔다. 자기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에 확신이 있었다. 그런 고민이 그림에서 모두 느껴진다. 세잔의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아주 두터운 붓 터치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수준이 됐다. 그 부분이 가장 감명 깊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절제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밀 졸라를 연기한 기욤 까네은 [작품] 외에 그의 글은 잘 알지 못했다. 이 영화를 통해 졸라라는 인물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고,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게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다. 자신의 열망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여정을 떠나는 사람이다. 첫 인상은 다소 과묵해 보이지만 꾸밈 없고 약간은 거친 면도 있다. 졸라가 친구와 자신의 뜻에 열성을 다하는 모습도 남다르게 여겨졌다. 나는 졸라의 여러 색채와 면모에 공감했고, 그 점이 즐거웠다. 졸라와 세잔 두 사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세잔은 졸라의 단호함과 열정에 많은 영감을 받았고, 졸라 역시 세잔에게 무척 많은 영감을 받아서 [작품]이 탄생했을 때 스스로 말하듯이 세잔의 삶을 훔쳐버린다. 두 사람은 서로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둘의 길이 갈라진다. 한 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쪽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큰 이유였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심오한 무언가로 묶여 있다. 졸라는 두 사람의 우정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어린 시절의 우정은 그런 법이다.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생기기 마련이다. 언제나 그걸 느끼지는 못하지만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기욤 갈리엔과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서로를 다시 알게 된 기분이다. 기욤 갈리엔 특유의 자신에 대한 끝없는 탐구가 인물을 풍성하게 만들고 감동을 줬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젊은 시절, 비오는 날 밤 세잔이 갑자기 파리로 졸라를 찾아온다. 그와 서로 부둥켜 안는데 그 장면에서 무척 감동을 받았다.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예상치도 못하게 감정이 벅차는 걸 느꼈다. 또 마지막에 내가 세잔을 두고 “사산된 재능”이라고 말할 때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에 남아 있다. 또 졸라가 서재에서 갑자기 자신을 놓아 버리는 긴 장면도 그랬다.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아주 강력한 감정과 싸웠던 장면이다.

 

 

 

 

에밀 졸라는 하녀를 마음에 두고 오랜 갈등하는 모습이 가끔 비춰졌다. 마지막에 하녀를 부인 알렉산드리네의 허락 하에 첩으로 맞아하여 두 자녀까지 낳은 장면이다. 부인 알렉산드리네와는 안타깝게도 슬하에 자녀가 없다.

 

 

소피 마르소를 책받침 여신으로 만들었던 일등공신 <라붐>과 <유콜 잇 러브>부터 방대한 피의 역사를 강렬하게 그려냈던 <여왕 마고>까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프랑스 영화들의 각본을 썼던 스토리텔링의 대가 다니엘르 톰슨은 성공적인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길을 걷다 뒤늦게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데뷔작 <크리스마스 트리>의 흥행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에 관해 알게 되고 이토록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료 조사를 해나갈수록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두 인물이 어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고 서로를 사랑하며 평생 함께하려 했지만 작은 갈등들로 결국 관계에 금이 가는 인생의 변화를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리고 16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다니엘르 톰슨 감독은 본격적인 영화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캐스팅이었는데, 실제 두 예술가가 그랬던 것처럼 완벽히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가지면서도 조화로운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또한 20대부터 50대까지, 청년의 젊음과 중년의 성숙함 모두가 요구되기도 했다. 감독의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것은 프랑스의 국민 배우인 두 명의 ‘기욤’, 기욤 갈리엔과 기욤 까네로, 그들은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하고 이해하며 완벽한 앙상블을 보여줬다.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만난 두 소년,

화가를 꿈꾸는 폴과 글을 쓰는 에밀은 어린 시절부터 희망, 좌절, 꿈과 사랑까지 모든 것을 공유한다.

서로를 동경하고 무척 아끼면서도, 냉혹한 평가 또한 서슴지 않으며 함께 성장하는 두 사람은 청년이 된 후,

파리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화가와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테레즈 라캥], [목로주점] 등을 출간하며 명성을 쌓는 에밀과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폴. 한때는 모든 것을 함께했지만,

엇갈리는 운명을 맞이하고 에밀이 비참한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발표하자 폴은 에밀을 찾아가는데...

40년에 걸친 두 예술가의 위대한 우정이 공개된다!

 

* 세잔은 1852년에 같은 학교를 다니던 에밀 졸라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들은 곧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서로를 영웅처럼 숭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관상 졸라는 세잔의 미술을 경외했고, 세잔은 졸라의 글을 경외했다. 졸라 역시 아마추어 화가로, 두 소년은 엑상프로방스의 시골을 산책하며 스케치하는 등 대부분의 자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세잔은 졸라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시절을 항상 잊지 않았다. 그의 많은 작품들 속에는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졸라를 모델로 한 것이다.

졸라의 격려 덕분에, 세잔은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로 갈 수 있었다. 졸라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졸라와 그의 어머니는 파리로 이사했다. 세잔의 아버지가 완강하게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졸라는 세잔에게 함께 파리로 가서 집중적으로 그림을 그리자고 설득했다. 세잔과 졸라는 30년 이상 친구로 지냈다. 유명한 소설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졸라는 1886년에 『걸작』을 출판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늘 불안해하고 성적으로 자신이 없으며, 실패한 화가로, 이후 자살을 한다. 랑티에는 졸라가 알고 있던 많은 화가들의 특성을 섞어 놓은 인물로 여겨지지만, 세잔은 랑티에가 자신을 풍자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세잔은 수십 년 동안 졸라에게 털어놓은 비밀들이 우롱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사건으로, 한때 아름다웠던 둘의 우정은 끝나버렸다.

 

 

하얀 터번을 쓴 자화상, 폴 세잔은 1839년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기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1859년 엑스대학교의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화가가 되려는 그의 욕망은 꺾이지 않아 1861년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파리로 향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냈던 에밀 졸라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쉬스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여기에서 카미유 피사로, 아르망 기요맹 등을 만나 후에 인상파 화가들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초기 파리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미술 공부를 시작한 아카데미 쉬스의 몇몇 학생들만큼 기교가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곧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결국 6개월 만에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왔다. 세잔은 1862년 화가로서 성공할 것을 다짐하며 다시 파리로 갔다. 오노레 도미에와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은 그의 초기작은 대체로 어둡고 극적이며 거칠게 바른 물감을 특징으로 한다. 세잔은 살롱전에 출품을 준비하며 그림을 그렸지만, 매번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1863년 살롱전에서 거절당한 화가들을 중심으로 ‘낙선전’이 열렸다. 그는 이 전시회에서 마네, 피사로, 앙리 팡탱 라투르 등과 함께 작품을 전시했다. 20년 후인 1882년에 그의 작품은 처음으로 살롱전을 통과했다. 1870년대 들어서면서 그의 양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세잔은 마리 오르탕스 피케와 사랑에 빠졌으며,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피사로에게서 인상주의 기법 및 이론을 배우고 함께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스스로를 진정한 인상주의 화가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1874년 제1회 인상파 전시에 참여했다.

 

그는 인상파에서 주목했던 광선에 관심을 가졌으나, 빛과 명암의 표면적인 분석을 넘어 기본이 되는 형태를 탐구했다. 1877년 제3회 인상파 전시를 고비로 그는 점차 인상파를 벗어나는 경향을 보였고, 구도와 형상을 단순화한 거친 터치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해 나갔다. 이때의 작풍이 더욱 발전하여 후에 야수파와 입체파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기가 되었다. 세잔은 1886년 졸라와의 오랜 우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은 졸라의 소설 『작품』(1886) 때문인데, 세잔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실패한 천재 화가’ 클로드 랑티에가 바로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완전히 결별했다.

 

1895년에 세잔은 화상 볼라르(Ambroise Vollard)의 기획으로 첫 개인전을 열어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말년에 그는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 돌아와서 작품에만 몰두했으며, 1900년경부터는 재능과 독특한 화풍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형태는 원기둥과 구, 원뿔에서 비롯된다”는 견해를 밝힐 만큼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하고, 색채와 붓 터치로 입체감과 원근법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법으로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20세기 회화의 참다운 발견자로 칭송되고 있으며, 피카소를 중심으로 하는 입체파는 세잔 예술의 직접적인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을 구분하면 《목맨 사람의 집》(1872~1873)이 그의 전기 작품 중에 손꼽히는 걸작이며, 《에스타크 L》(1883~1885),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1892~1896) 등은 원숙기의 작품이고, 《대수욕도》(1898~1905), 《생트 빅투아르산》(1902~1904) 등이 대표적인 후기 작품이다. 또한 정물 그림과 초상화에도 많은 걸작을 남겼다. 세잔은 1906년 그의 고향에서 숨을 거뒀다.

 

1907년 개최된 대규모 회고전은 젊은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세잔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밖의 주요 작품에는 《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폴 알렉시스》(1869~1870), 《목욕하는 사람》(c. 1885), 《온실에 있는 세잔 부인》(1891~1892),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1894~1895), 《석고상이 있는 정물》(c. 1895),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1895~1900) 등이 있다

 

 

에밀 졸라는 파리 출생.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자랐다. 이탈리아계의 토목기사인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난한 직공의 딸인 어머니의 변통으로 중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뒷날의 대화가 폴 세잔과 사귀게 되어 시와 예술을 논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극심한 곤궁 때문에 1858년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옮겨가 생루이고등중학교에 전학하였다. 파리로 옮긴 뒤로는 학업에 의욕을 잃었고, 에콜 드 폴리테크니크(고등 이공과 학교) 입학자격 시험에 두 번이나 실패한 것을 계기로 문학의 길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이 무렵에 V.위고, A.뮈세를 동경하여 곤궁 속에서도 열심히 장편 서사시를 써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1862년 아셰트서점에 취직하여 그곳에서 처음으로 당시의 과학적 ·실증주의적 사상과 결부된 사실주의적인 문학 조류에 눈을 뜨고 시를 버리고 콩트나 평론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낭만주의적인 작품집 《니농에게 바치는 콩트》(1864), 자서전적인 중편소설 《클로드의 고백》(1865) 등을 썼다. 1866년 아셰트를 그만둘 때에는 청년비평가가 되어 있었는데, 이 해 봄의 미술전비평을 써서 기성의 대가들을 비판하고 마네·피사로·모네·세잔 등 신진의 불우한 인상파 청년화가들을 강력히 지지하였다.

 

 이 무렵에 플로베르와 공쿠르 형제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특히 공쿠르 형제의 작품을 본받아 처음으로 자연주의적인 작품 《테레즈 라캥》(1867)·《마들렌 페라》(1868)를 발표하였고, 또 이론적으로도 자연주의 소설관을 명확히 하였다. 한편, 《마르세유의 신비》(1867)라는 약간 통속적인 대작으로 H.발자크적인 사회탐구를 시도하여 자신을 얻은 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 비견될 대작 《루공마카르 총서》를 구상하게 되었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정신병에 걸린 여자가 건강한 농부 루공과 결혼하였고 루공이 죽은 뒤 알코올 중독자인 마카르를 애인으로 삼았는데, 이 두 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많은 자손들이 제2제정시대의 여러 방면에 진출하여 어떻게 생활하였는가를 기록하려고 한 것으로서 <제2제정하의 일가족의 자연적·사회적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868년경부터 구상에 착수하여 처음 10권을 5년 동안에 완성할 생각이었으나 계획이 점차 확대되었다. 1869년 완성한 제1권 《루공가(家)의 운명》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에 발표하고, 그 뒤 매년 1권 정도씩 계속 써서 1893년 《파스칼 박사》를 출판함으로써 총서 총 20권을 완성하였다. 《목로주점》(1877)·《나나》(1880)·《제르미날》(1885)·《대지》(1887)·《수인》(1890) 등 대표적인 걸작은 대부분 이 총서에 들어 있다. 처음에는 이 총서가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목로주점》이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대가의 대열에 끼였고, 자연주의 문학을 확립하였다.

 

《실험소설론》(1880)에서는 그의 소설이론을 펼쳤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특히 하층 대중을 묘사하는 데에 뛰어났다. 인간의 추악과 비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는데, 그것이 인간생활의 개선과 진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모랄리스트이고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였다. 그 때문에 만년에 드레퓌스사건이 일어나자 사이비 애국자들에게 항거하고 군부의 부당성을 공격하였으며 끝까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여 결국 승리하였다.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장 《나는 고발한다》(1898)는 유명하다. 만년의 작품 《세 도시 이야기》(1894∼1898)·《4복음서》(1899∼1903)는 그 당시의 정열을 반영하고 있다.

 

 

생트빅투아르 산의 풍경은 세잔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로 영화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갈 때 배경 화면으로 나왔다. 영화는 끝났지만, 잔잔한 ost를 들으며 자막이 다 올라가도록 그 자막 마저 끝이 나서야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트빅투아르 산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같은 이름인 작품이 여러 점이 있다.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연작은 유화, 수채화, 드로잉 등 무려 200여 점이 넘는다.

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폴 알렉시스

온실에 있는 세잔 부인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같은 이름인 작품이 여러 점이 있다.

사과와 오렌지, 과일 정물화도 여러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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