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연 나들이

현대 무용 어린 왕자

智美 아줌마 2016. 12. 10. 14:55

얼마 전 국립 무용단의 soul 해바라기 공연을 보고자 예매했다가 깜박 잊고 가지 못해 사달이 난 후, 다시 국립 무용단 공연을 예매한 어린 왕자를 보러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으로 갔다. 아이돌 가수 김진우가 어린 왕자 역을 한다고 해서 세간의 기삿거리가 되고 있으나 나야 출연진보다 작품을 먼저 보고 예매를 하기에 아이돌 가수 김진우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일단 예매해두었다.

 

국립 무용단의 어린 왕자 공연 보러 가는 날, 예술의 전당 외벽엔 지난주에 본 연극 페리클레스 자리에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걸려 있고 옆에는 오늘 볼 현대 무용 어린 왕자가 걸려있다. 그리고 그 옆에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 걸려 있는데 얼마 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봐서 예매하지 않았더니 어린 왕자 공연 끝나고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 중인 로미오와 줄리엣 영상을 보니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예매할까 하고 좌석을 보니까 대부분 다 예매되고 가장자리와 맨 뒤 좌석만 남아 있어 고민하다가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하고 마음을 접었다.

 

공연 시간이 되어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까 내 옆자리에 갓 스물? 앳된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혼자 보러 왔니? " 하고 물으니 아이돌 가수 김진우 보러 친구랑 공연 보러 처음 왔는데 친구는 2층 싫다고 1층 좌석을 예매해서 아래층에 있고 자기는 돈이 없어 1층 예매 못 했다며 아쉬워했다. 우리가 앉은 자리도 3만 원하는 좌석이라 적은 금액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무용이나 발레는 2층 앞자리에서 약간 내려다보는 게 더 아름답게 잘 보이고, 특히 군무 볼 때 더 좋다고, 각자 선호하는 자리가 있겠지만, 아줌마는 무용이나 발레는 2층 앞자리를 예매한다고 말했더니, "정말요? " 한다. 그놈의 돈이 어린 나이에 벌써 차별을 받게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예술의 전당 공연 포스터가 걸린 외벽

와 ~ 예쁘다. 올해 크리스마스 장식은 포토월 자리에 설치했네.

 

 

 

 

cj 토월극장 무대

커튼콜 촬영

 

어린 왕자 역할로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위너’의 김진우가 캐스팅되었는데 2014년도 데뷔한 그룹 위너에서 보컬을 맡은 김진우는 어린 왕자에 적합한 이미지와 춤에 대한 열정으로 출연 제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공연 첫날에 갔더니 멤버들이 보러 와서 학생들과 아가씨들이 한호성을 지르고 공연 끝나고도 몰려 따라다니며 사진 찍느라 난린데 제대로 사진 찍게 좀 해주지 아쉬워하는 아이들 보니 안 돼 보였다.

 

 

 

1939년 '바람.모래.별'의 영문판이 발간된 직후 뉴욕 맨해튼 방문 때                     1943년 출간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어린 왕자' 케릭터

 

1942년 초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생텍쥐페리는 흰 냅킨에 장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식당 종업원이 옆에서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함께 식사하던 출판업자 커티스 히치콕이 생텍쥐페리에게 뭘 그리는 것인지 물었다. 생텍쥐페리가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 한 어린 녀석이지요.”

 

히치콕이 그림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 어린 녀석 말입니다. 이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시면 어떨까요. 어린이용 이야기로 말이지요. 올해 성탄절 전에 책을 낼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며칠 뒤 생텍쥐페리는 친구 레옹 윈체슬라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보고 어린이 책을 써보라는데, 날 문방구에 좀 데려다 주시오. 색연필을 사야 하니 말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착상을 색연필로 그려보았지만 신통치 못하다고 생각했고, <전시 조종사>의 삽화를 그린 베르나르 라모트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라모트의 데생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생텍쥐페리는 점점 더 이 일에 몰두했다.

 

1942년 여름 생텍쥐페리 부부는 뉴욕에서 기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롱아일랜드 노스포트 근처 이튼 네크에서 식민지풍의 하얀 삼층집을 세내어 살았다. 이 집이 <어린 왕자>의 사실상의 산실이 되었다. 그리고 1943년 4월 6일 레이널앤히치콕 출판사에서 영어와 불어로 출간되었다.

 

이듬 날인 7일부터 배포된 영어판 초판은 3만 부, 불어판 초판은 7천 부였다. 나중에 갈리마르 출판사가 레이널앤히치콕 출판사를 고소했고(생텍쥐페리는 자신의 모든 저작에 관한 출판권을 갈리마르와 계약해둔 터였다.), 프랑스에서는 1945년 11월에야 책이 나왔다. 그러나 전후 인쇄용지 품귀 탓에 실제로 본격적으로 서점에 배포된 것은 1946년 4월이었다. (1948년 레이널앤히치콕 출판사는 하코트 브레이스 앤 컴퍼니에 인수되었다.)

 

국립현대 무용단 제공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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