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지리산 종주 산행 넷째 날 이야기(세석 대피소→백무동)

智美 아줌마 2016. 10. 28. 11:53

지리산 종주 산행 마지막 넷째 날

전날 장터목 대피소까지 가야 했지만, 거북이도 못 되는 자라가 가기에는 길이 멀어

세석 평전이 아름다운 세석 대피소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오는 도중에 고마운 인연을 만나, 덕분에 혼자가 아닌 동행인과 함께 세석 대피소에 무사히 도착해서

울긋불긋 단풍 든 세석 평전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았다.

 

하산을 하기로 한 지리산 종주 산행 마지막 날

장터목 대피소를 거쳐 천왕봉 찍고 중산리로 하산할까? 아니면 장터목 대피소에서 바로 백무동으로 하산할까? 

그래, 지난 5월에 천왕봉에 올라가서 길 상태가 어떠한지 아니까

천왕봉에 올랐다가 중산리로 가자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니까

뭐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닌가.

 

천왕봉 일출은 못 봐도 가는 길목에 촛대봉의 일출도 멋지다니까 보고 가야지 했더니

3일간은 정말 날씨가 쾌청하니 좋았는데 다음 날에 온다는 비가 앞 당겨오고

다행히 많은 비가 쏟아지는 게 아니라 살짝 오고 있지만, 운무가 산골짜기마다 가득 차고 피어올라

순식간에 앞을 가름할 수 없게 뿌옇게 가려 버리고는, 행여 모습을 보여줄까 하고 기다리면

살짝 보여줄까? 말까? 감질나게 하더니 심술을 부리는지. 숨은그림찾기 하라는지, 꼭꼭 숨겨 버린다.

 

흥!! 치사 뿡이다. 보여주기 싫으면 관둬라. 나 그냥 가련다.

얼레? 간다니까 살짝 보여주면 가려던 발길 멈추게 유혹을 하네. 그래, 그럼 조금만 더 살짝 보여줘 봐. 안 갈 테니까.

뭐여? 또 숨겨버리는 겨? 이젠 안 속아, 나 붙잡지 마라, 하고 가려니까

구름바다에 돛단배를 하나둘 띄어주며, 요건 어때? 마음에 들어? 하며 또 유혹한다.

그렇게 밀당하듯 홀리는 통에 자꾸 뒤돌아보게 하고 아쉬움을 뚝뚝 떨어트리며 길을 가게 했다.

 

세석 대피소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3.4km,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1.7km, 환경 교육원길 중산리까지 7.8km,

칼바위 쪽으로 직진해서 중산리까지는 5.3km인데 비가 살짝 내린 후 운무에 갇혀 있을 것 같아 천왕봉 찍는 건 포기하고

장터목 대피소에서 백무동까지 5.8km를 내려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중산리로 가도 되지만, 중산리에서는 진주 원지까지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나가야 서울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지만,

백무동으로 내려가면 서울 가는 버스가 바로 있어 편하게 서울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세석 대피소에서 출발, 장터목 가는 3.4km 길은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장터목 대피소까지 종주 23.8km 중에서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장 많이 보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고, 시야가 탁 트인 곳이 많아 지리산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특히 연하봉이 좋았는데 아쉽게도 내가 걷는 동안에는 골짜기에서 운무가 짙게 올라와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살짝살짝 감질나게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자, 이제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 대피소에서 만난 산객들이 만류하였지만, 처음 지리산에 오를 때 왔던 백무동으로 내려간다.

지리산의 로망을 갖고 처음 백무동으로 오를 때 어찌나 길이 가파르고 죽어라 치고 올라만 가라고 하는지.

지리산 너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산인데 이렇게 생겼냐? 다시는 너 보러 오고 싶지 않다고 볼멘 소리를 하였다.

그때 힘들게 오를 때 기억이 시간이 흘러 희미해져 있었는데 다시 백무동 길을 내려가다 보니 정말 고약한 길이었다.

가장 힘든 구간은 소지봉 오르는 구간으로 정말 이 구간은 최악으로 사람 잡는 길이다.

그래, 이렇게 고약한 길이었으니 내가 다시는 지리산 너 보러 안 오고 싶다는 말을 했지, 괜히 트집 잡으려 한 말이 아니었지?.

 

백무동 길은 올라가는 것도 매우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것도 힘이 많이 드는 길이다.

내려가는 내내 돌계단, 그것도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오는 도중에 비까지 다시 내려 미끄러웠고 

정말 흙이 너무 밟고 싶어, 가파른 길이어도 좋으니까 제발 돌만 좀 안 밟고 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내려가는데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그놈의 돌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살살 딛고 내려가는데도 발목이 시큰하고 발이 얼얼하다.

그런데 그렇게 돌만이라도 밟지 않게 해달라고 했거늘 야속하게, 아니 괘씸하게 백무동 길은 끝까지, 끝까지 돌이었다.

 

백무동에서 서울 가는 버스가 오후에는 4시, 5시, 그리고 막차인 6시 차가 있는데

막차라도 타야 했기에 내려가면서 중간중간 시간 계산하며 내려가다 보니 5시 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아

막바지 하산 길을 서둘러 내려가려는데 그놈의 돌, 돌, 돌 때문에 다리는 천근만근 발목은 시큰거리고

그렇게 아픈 다리로 백무동 종점에 도착하니 4시 45분이다. 이제 나, 집에 간다.

 

지리산 종주 산행을 계획하고 지리산에 가서 3박 4일 산에서 있었더니, 몸도 힘들고 이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비가 와서 날씨도 좋지 않아 천왕봉 찍는 것을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하였지만,

3박 4일 지리산 종주 산행하면서 이젠 이렇게 힘든 산행은 하지 말아야지, 그냥 밑에서 땅에서 여행이나 다녀야겠다, 했는데

집에 도착해서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직 안 가본 코스를 챙기고는 해가 길 때 내년 봄에 다시 가자고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참으로 어이가 없어 혼자 웃고는 정말로 못 말린다는 생각에 싸가지한테 말하니까

위험하게 혼자 산에 다니지 말고 다른 데 다녀, 여행지나 다니라고 한다

 

그려, 산에 가는 것도 나한테는 여행 가는 겨. ㅎㅎㅎ

한 번의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이렇게 3박 4일 지리산 종주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이젠 단풍잎도 떨어지고 썰렁해져 있을 것 같아 내년 봄을 기약하며 지리산 3박 4일 종주 산행을 마무리 한다.

잘 있거라, 지리산아, 내년 봄에 다시 보자. 

설경 보러 겨울에 안 올거냐고? 내가 미치기를 바래라. 그럼 혹시 누가 아냐? 미쳐서 겨울에 너 보러 갈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