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지리산 종주 산행 둘째 날 이야기(노고단 →연하천 대피소)

智美 아줌마 2016. 10. 19. 21:33

지리산 귀신이 될 뻔한 종주 산행 둘째 날,

노고단 일출을 보고자 05시 알람을 맞춰 놓고 잤지만, 코 고는 사람들로 인해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전날 저녁해서 먹고 남겨둔 찌개와 밥으로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노고단으로 올라간다.

 

어째 노고단 일출 보러 올라가는 사람이 없네.

위아래를 둘러 봐도 플레쉬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여행 중, 노고단에 왔을 때 시간이 늦어 노고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내려간 적이 있어

늘 아쉬움이 남아있었는데 이번 종주 산행 때 노고단을 올라가게 되었고

플레쉬 불빛을 앞세우고 20여 분 올라가니까 시간이 늦어 발길을 돌려야 했던 돌탑이 있는 노고단 고개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고르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음미하기도 전에

어느새 어둠을 헤치고 서서히 해가 떠오르려고 산 물결 위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빨리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가자.

그런데 상쾌하게 느껴지던 바람이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가니까 돌변하여

어찌나 야멸차게 불어대던지, 패딩 점퍼를 가지고 갔지만, 대피소에서는 춥지 않아 그냥 올라갔더니

나를 얼려 죽이려는 듯 온몸을 찬 바람이 휘돌고, 흔들어 대니 이내 덜덜 떨게 하였다.

 

그렇게 추위에 떨게 되었지만, 멋진 일출을 보게 되었고 다시 대피소로 내려가 배낭을 챙겨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둘째 날 목적지 연하천 대피소로 간다.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 2.8km, 노루목까지 1.7km, 반야봉을 갔다 오려면 2km, 화개재까지 1.8km, 연하천 대피소까지 4.2km

노고단 대피소에서 연하천 대피소까지의 총 거리는 12.5km인데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초행길을 야간 산행을 하게 되었다.

 

반야봉 갔다가 내려와서부터 연하천 대피소까지 6km인데 난 왜 2km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2km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고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과 여유 있게 얘기도 나누며 반야봉을 올라가는데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젊은 친구 둘이 반야봉에 갔다가 어느 방향으로 갈 거냐고 묻기에 연하천대피소로 간다고 했더니

연하천까지 가려면 반야봉에 올라갈 게 아니라 바로 연하천 대피소로 가도 시간이 늦는다며

빨리 연하천 쪽으로 가라고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되돌아 내려가, 하고는 그냥 반야봉으로 올라갔다.

 

그 친구들이 연하천까지 거리가 꽤 멀다고 해서 확인을 하니까 워매 ~ 2km가 아니라 5km가 넘는 게 아닌가.

아이고 미치겠다. 그 젊은 친구들을 만난 시각이 2시 반이 되었으니 무슨 수로 어둡기 전에 연하천 대피소까지 가겠는가.

약간은 조급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볼 거 다 챙겨 보면서 삼도봉에서 반야봉 내려올 때 만난 젊은 아저씨 둘과

서로 인중 샷도 해주고 연하천 대피소 가는데 길은 고약하니 좀처럼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해는 산 너머로 가려고 산마루에 걸려있더니 이내 숨어 버리고 어둠이 내려앉고 말았다.

 

늘 거북이걸음으로 다니다 보니 가끔 어두운 산속을 걷기도 해서 어둠이 무섭지는 않은데

국립공원의 등산로가 잘 되어있어도 밤에는 길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 길을 잃을까 두렵기는 했지만,

이번엔 하마터면 굴러떨어져 지리산 귀신 되어 황천길로 갈 뻔했다.

 

연하천 대피소 1.9km 지점에서 1.4km 지점을 지나는 길이 너덜 지역이 있고 암릉 구간이 많아 거칠어서

정말 아이고 소리하며 올라가다가 몇 발자국 길을 비켜 내려가니 길이 아닌 것 같아 둘러 보니까

바로 위에 길이 있는 게 아닌가.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갔으면 식겁할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가로질러 올라가려다가 나뭇가지에 배낭이 걸려 뒤로 벌러덩 중심을 읽고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마침 오른쪽에 팔뚝 굵기의 나무가 있어 잡는 바람에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살아올 수 있게 되었다.

산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까 여기저기 푸르딩딩 멍들고 상처 나고

아,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정말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그렇게 가슴 쓸어내리는 일을 겪고는 마음 가다듬고 더 주의 깊게 살피며 연하천 대피소를 찾아가는데

어찌 1km도 안 되는 거리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왜 그렇게 대피소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지

칠흑 같은 산길을 가도 가도 대피소는 보이지 않으니 이 고개만 넘으면 보일까, 이 길만 돌아가면 보일까

그런데 연하천 대피소는 바로 앞까지 가야 불빛이 보였으니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고 나서야 모습을 보여주던지.

 

다행히 사고없이 밤길을 더듬으며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7시 30분

6시 10분쯤 해가 산마루를 넘으니 이내 어두워져 플래쉬를 켜야만 했고 1시간 20여 분을 어둠 속에 걸어야 했다.

오는 중에 대피소에 연락해서 많이 늦을 것 같다고 했더니 조심해서 오라는 말 한마디가 고마웠고

삼도봉에서 서로 인증 샷을 해주던 젊은 아저씨 둘은 6시 20분에 도착하여 다른 아저씨와 내 얘기를 하면서

시간이 많이 지나 캄캄한데도 도착하지 않고 있어서 걱정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두 젊은 아저씨들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숙소로 들어가고 같이 걱정하고 있었다는 아저씨는

혼자 밥을 먹으면 심심하잖냐며 내가 밥을 다 먹을 동안 이런저런 얘기하며 기다려 주셨다.

처음 보는 나인데 작은 부분이지만, 챙겨주는 따듯한 마음이 정말 고마웠는데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하지 못했고 다들 일찍 길을 나서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