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덥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더운지, 덥다 못해 이글이글 불볕 폭염이 내 발목을 붙잡아 놓고 있다. 작년 같으면 7, 8월에도 산에도 가고 여행도 가고 했는데 건강한 몸이 아니다 보니 올여름에는 방콕 생활하며 더위와 씨름하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지금 한창 배롱나무꽃이 예쁘게 피어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을 텐데, 날짜는 자꾸 가고 꽃은 점점 시들어 떨어질 텐데, 올여름에도 명옥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에라 모르겠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으니 내 인생이 요만큼 살다 가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 가자. 폭염이 사람 잡는다고 해도 떠나는 거야.
그래서 담양 명옥헌과 회산 백련지를 둘러 볼 생각에 무안, 담양 여행 계획을 세우고 교통편을 알아보니 그리 수월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문화관광부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회산 백련지도 명옥헌도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렵다며 자가용으로 가는 게 편하다고 했고 게다가 아직 휴가철이라 평일이라도 고속도로가 막힐 것 같아 기차를 타고 가려니까 군내버스 시간과 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가야 할까 궁리하다가 회산 백련지는 무안 일로에 있어 지도를 살펴보니까 철길이 있네. 어라? 일로 역도 있잖아? 얼른 스마트폰으로 코레일로 들어가 확인하니까 목포 전 역인 일로 역에 무궁화호가 서는 게 아닌가. 와 ~ 목포 다 가서 일로네. 그런데 첫차가 07시 15분, 5시간 가까이 걸려 12시 넘어 도착한다.
연꽃은 오후 한두 시쯤 되면 꽃 문을 닫기 때문에 오전에 가야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로 역에서 일로읍으로 이동, 일로읍에서 회산 백련지 가는 버스 시간도 첫차가 07시 10분이지만, 아침 첫 기차를 타고 가면 1시 50분 버스를 타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 버린다. 그럼 이번엔 모험을 한번 해 봐? 그래서 야간열차를 타고 가고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일정을 짰다. 밤 11시 10분 용산역에서 목포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갔다. 가는 중에 공사 구간이 있어 다행히 20분 연착되어 새벽 4시 20분에 일로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 내려 앞뒤를 살펴보니 나와 같은 칸에서 내린 젊은 할배 한 분뿐, 혼자 내리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다행이지 않는가. 그런데 그 할배는 일로에 사시는 분으로 서울에 사는 딸이 눈 수술을 해서 다녀오시는 길이라고, 역 앞에 차가 있으니 읍내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해서 뜻하지 않게 발품을 덜 팔게 되었다.
아, 그런데 얼떨결에 그 할배 차 얻어 타느라 일로역 사진도 못 찍고 기차역에서 날이 밝아지길 기다렸다가 시간 맞춰 읍내까지 걸어가 07시 10분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야심한 밤에 어디서 버스 올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고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데 일로읍사무소 앞이라고 하시는 말에 둘러 보니까 바로 앞에 편의점 CU가 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감사 인사하고 내렸는데 그 할배는 CU 아래 노란 길로 가시고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도시락을 사 먹고 어차피 길에서 첫차 올 때까지 기다리느니 회산 벽련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일로 역에서 CU까지 1.4km, CU에서 회산 백련지까지 4.5km이니 걸어갈 만 한 거리이다.
어둠 속에 걷는 이방인의 인기척에 동네 개들은 짖어대고 부지런한 장닭의 회치는 소리는 고요한 새벽의 적막을 깨며 아침을 열고 있다.
무안중학교 앞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이정표에 있는 용산리 사거리가 나오는데 길이 묘하게 되어있어 잠시 청호리로 빠져 걷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마침 집 앞에 나와 계신 아저씨께 여쭈어 보니 잘못 들어왔단다. 다시 되돌아 나와 건너가 보니 그제사 회산 백련지 가는 길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에 꽃단장을 하고 있는 루드베키아
오른쪽 연꽃 그림이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어두워서 용산리 사거리 초입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회산 백련지 가는 길에 이렇게 차도에 연꽃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멀리 빨간 불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가서 왼쪽으로 가면 회산 백련지
안개가 짙어 카메라 랜즈에도 안개가 끼어 유화 그림을 그린 것 같다.
그래서 갤럭시7으로 찍는다. 얼마전 스마트폰이 열받아 dg게 되어 새로 장만한 갤럭시7이 카메라 기능이 좋다고 해서 신형으로 샀다.
날은 밝아오는데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 여름엔 태풍이오지 않아 벼가 가지런히 일렬로 서있다.
해바라기도 가로등 불빛에 화사하게 단장을 하고 있고 . . .
연꽃 방죽(회산 백련지)가는 길
참깨
와 ~ 얘는 무슨 꽃씨니? 탁구공만하다. 살펴보니 부용화의 꽃씨인데 부용화 꽃이 어찌나 큰지 대접보다 더 큰 것 같다.
산정리 길가에 부용화가 많이 심어져 있어 색색의 부용화 꽃을 보며 간다.
나팔꽃
누가 내 집을 망가트렸어? 바람 네가 그랬어?
뉘집 논에 허수아비가 아니라 허수어미?
닭의장풀 또는 달개비, 뜻밖에 이 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걸어가다 보니 하얀 설치물이 보여 뭐지? 하고 가서 보니까 버스 정류장 쉼터였다. 백련을 상징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안개가 짙어 가로수 끝에서 오는 차는 보이지 않고 소리를 듣고 얼른 길가로 나오니 서서히 안개 속을 헤치며 차 한 대가 달려온다.
이른 시간에 농부 아저씨는 벌써 농약 살포를 하고 있다. 휙휙 뿌리며 지나가는 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ㅎㅎㅎ
마을을 지날 때면 집들이 많지 않지만, 집집마다 이런 벽화가 그려있다.
빨간 칸나와 함께 있는 백련 버스 정류장 쉼터
회산 백련지 한 정거장 전의 버스 시간표라 5분 정도 차이가 날까? 가운데 일로 회산 시간표를 보면 된다.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슈퍼
슈퍼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가면 회산 백련지
해바라기가 다 얼굴을 돌리고 있네
아, 이 꽃은 뭐지? 시계꽃같이 생겼는데 정말 신기하게 생겼네.
빨강 봉숭아가 한 무리 피어있네. 어찌 이 곳에 피어있나?
이곳 해바라기는 얼굴을 보여주네. 예쁘다. 고창 학원농장 해바라기도 예쁘게 피어있을까? 지난번에 갔을 때는 많이 지고 있어 아쉬웠는데 . . .
노란코스모스 황화가 화사하니 예쁘다. 그런데 얘들 키가 참 크다.
드디어 회산 백련지 앞에 도착했다. 어둠 속을, 안개 속을 살방살방 사진 찍으며 2시간 채 안 걸어왔다. 9시부터 매표를 한다고 해서 바쁠 것도 없어 천천히 걸어왔지만, 초행인 낯선 곳 무안 일로에 도착해서 어둠 속을 걷는 게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도전해 보자 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온 것이 참 잘 한 것 같다. 이제 앞으로도 교통편이 좋지 않을 때 야간열차를 타고 여행지를 갈 수 있는 용기가 더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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