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총리 가옥을 둘러 보고 심우장으로 가기 위해 장면 총리 가옥 바로 앞, 길 건너에서 마을버스 종로 08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내리긴 했는데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인지 몰라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까 버스가 서있는 앞쪽 언덕으로 올라가라고 알려줬다. 언덕 길을 헥헥대며 올라가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지나가는 초딩이한테 심우장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니? 하고 물어보니 도리어 그게 뭔되요? 한다.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선생님 께서 살던 집인데 너희들 모르니? 하니 모른단다. 또 다른 아짐한테도 물어 보니까 그 아짐도 모른단다. 이럴 수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있는 문화재도 모르고 만해 한용운 님에 대한 지식도 없다니, 오, 통재라. 우리나라 역사 공부를 어떻게 시킨 것인가?
어쨌든 간에 버스 기사 아저씨가 알려준 언덕배기를 계속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되돌아 내려오는데 아짐 둘이 올라온다. 두 아짐한테 심우장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냐고 물으니 한 아짐은 내가 올라가던 방향으로 올라가라고 하고, 다른 아짐은 마을버스 내린 곳 뒤에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으로 올라가서 성곽 너머에 있다고 알려준다.
마을버스 뒤, 왼쪽에 보이는 계단 난간
아이고 ~ 계단이 높다. 이 동네가 산자락에 있어 마을버스도 꼬불꼬불 한참을 돌아 올라왔다.
와 ~ 숨가쁘게 올라오니까 꽃동네가 나타난다. 오른쪽에 작은 건물이 있어, 관리실인가? 뭐지? 하고 가보니까 화장실이였다. 보기에는 들어가기 찜찜해서 그냥 올라갈까 하다가 들여다 보니까 의외로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었고 화장지까지 비치해 놓았다.
개나리가 노랗게 떨어져 있고 초록 잎이 풍성하게 자라서 꽃과 자리 바꿈을 한다.
아, 예뻐라. 바닥에 벚꽃이 떨어져 양탄자를 깔아 놓았네.
철쭉
계단 아래 오른쪽으로 나가는 성문이 있다.
앞에 보이는 집들 너머에 심우장이 있다. 성북동에서 마을버스 성북 03번 타고 오면 찾기 쉬운데 혜화동에서 올라오다 보니 방향을 모르겠다.
⑪ 마을 안내도 앞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심우장을 둘러보고 파란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왔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니까 공터가 있고 어느 집 앞에 핀 복사꽃이 화사하니 넘 예쁘다.
요 아래 어디엔가 심우장이 있겠지?
심우장을 찾으러 내려가자.
이 지역이 재개발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빈집도 있고 집들이 여느 달동네 같다. 명색이 성북동인데 . . .
좁은 골목을 따라 내려오니까 어라? 심우장이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지은 집으로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일관했던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올린 민도리 소로수장집으로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해가 죽은 뒤에도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이 곳 건너편에 자리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하였다.
왼쪽에 걸린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쓴 것이라고 한다.
만해 한용운(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 님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이며 자는 정옥, 속명은 유천,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집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1896년 선생은 홀연히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선생은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08년(융희 2년)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에서 원종종무원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 서울 계동에서 월간지 《유심》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에 가입하여, 이듬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의 일을 맡았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입적하였다.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 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 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 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 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 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오동송은 1917년 설악산 오세암에서 깨달음의 세계를 시로 표현한 만해의 친필 서각
마저절위 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고사로서 쉬지말고 정진하라는 뜻
전대법륜은 큰 법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뜻
건물 오른쪽에 부엌
부엌 쪽에서 본 방
명자꽃
박태기 꽃
꽃사과
심우장 대문을 나오면 북정 마을도 들렸다 가라는 안내문이 있다.
겹 벚꽃
북정 마을의 비둘기 공원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산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비둘기 공원에서 올라온 길
무슨 건물이 저렇게 예쁘냐? 했더니 화.장.실
한성대역 성북동에서 마을버스 성북 03번을 타고 수퍼 앞이나 북정 노인정 앞에서 내려서 이정표 방향으로 밑으로 내려가면 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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