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늙어 돈 없으면 자식도 소용없다.

智美 아줌마 2016. 6. 2. 21:13

세상엔 돈이 다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 돈이 다가 아니지, 그러나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궁색해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또한, 돈이 없으면 속된 표현으로 사람 구실 못 하고 사는 경우가 많고

어떤 것을 하기 위해 꼭 돈이 필요해도 없어서 해야 할 것을 못하게 되면 안타깝고 참담해지기도 하다.

 

돈이 많다고 한들 어차피 죽을 때 그 돈 다 가져가는 것도 아니니 

보통 사람 사는 것처럼 적당히 누리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게 돈인데

돈이 없는 사람은 없어서 더 갖고 싶어지고, 있는 사람은 더 채우려고 가지려 하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람들은 더 많이 더 갖기를 바라니까 돈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창동 사는 친구가 점심 같이 먹자고 전화가 왔다.

지리산 세석에서 거림으로 내려오는 중에 시간 되면 얼굴 보자고 전화 왔으나

산행 마치고 집에 가서 연락하자고 했는데 이 일 저 일 바쁘게 지내다 오늘 시간이 난다며

그래서 나도 줄 것도 있고 해서 도봉구청 앞 "자연 한 그릇"에서 1시에 만나기로 했다.

 

친구가 먼저 도착해 번호표를 받고는 대기자 순서대로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 가는 곳이라 한 끼 먹는데 번호표까지 뽑아야 해?

친구는 애들하고 몇 번 와 봤는데 점심때는 늘 그렇다고 하기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옆에 의자에 할매 한 분도 본인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고 앉아계셨다.

 

일행 오기를 기다리시나? 혼자 식사하러 오신 건가?

그런데 우리가 좌석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까 이내 할매도 뒤따라 들어오셔서 우리 옆 테이블에 앉으신다.

아, 혼자 오셨구나. 우째 할매 혼자 식사하러 오셨을까? 가족이 없으신가?

친구와 같이 밥을 먹으면서 할매 테이블에 자꾸 신경이 쓰였는데

친구가 음식 가지러 간 사이에 우리 대화를 들으셨는지 나한테 물으신다.

 

"산에 자주 가요? 지리산 다녀왔어요? "

"아니요, 여행 다니면서 가끔 산에도 가요. 지리산은 요즘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 하니

할매는 해외여행, 국내 여행은 수도 없이 많이 했고 산도 많이 다녔다고 하시면서

지리산도 여러 번 다녀오셨는데 좋은 산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작년에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넘어지셔서 고관절 수술하시는 바람에

병원 신세 지고 치료받으러 다니다 보니 답답하다고 하신다.

83살이라고 하셨던가? 그 연세에 혼자 여행을 다니시고 산에도 가셨다니 대단하다.

 

그렇게 옆 테이블에 앉아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마흔 무렵에 할배 돌아가시고 1남 2녀를 혼자 키우시게 되었지만,

살림이 넉넉하셨는지 큰 고생 모르고 아들은 대학교수로 딸 둘도 앞가림하며 산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다 가까이에 살지만, 할매 혼자 사신다고 한다.

당신이 언제 어떻게 잘못될 수 있으니까 미리 3남매에 상속할 건 똑같이 지급, 다 정리해서 주고

할매가 쓸 수 있는 돈은 은행에 넣어 놓고 찾아 쓰신다고 하시면서

가끔 딸들에게 필요한 장을 봐오게 하면 그때마다 품목에 상관없이 10만 원씩 주고

심부름을 시키게 되면 그에 따른 대가를 늘 지급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얼마 전에도 할매 일을 보러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작은딸은 엄마 일 보러 다니는 건데 무슨 돈을 주느냐고 했지만,

큰딸은 엄마 일을 봐주러 다니는 것이라도 당연히 대가를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해서

할매 마음이 많이 상하셨고 욕심 많은 큰딸에게 정이 떨어지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할매 앞으로 남아있는 재산은 사후에 자식에게 주고 싶지 않아 기부하기로 서류를 만들어 놓았는데

자식이 권리 주장하고 상속을 받으려 한다면 자식한테 가겠지? 하시는 말씀이 쓸쓸해 보이셨다.

요즘 심심찮게 유류분 청구소송을 하는 자식들이 있어 아마 그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다.

 

40년 넘게 남편 보내고 혼자 사시면서 자식 뒷바라지하셨는데

이제는 자식한테 보살핌을 받으셔야 할 그 연세에 혼자 식사하러 다니시는 모습을 보니까

왠지 쓸쓸해 보이셔서 말벗이라도 되어 드리고 싶었다.

 

작년에 다쳐서 병원 생활하시면서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몸 아프고 나니까

자식 다 소용없다는 생각에 내 몸 내가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려움도 겪어 보며 자라야 하는데 너무 고생하지 않고 키운 게 좋은 건만 아니더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래도 83살 그 연세에도 건강해 보이셨고 혼자 여기저기 다니시며 식당 밥을 드신다고 해도

능력이 되니 다행이지, 삼시 세끼, 끼니조차도 해결 못 하는 빈곤층 노인이 얼마나 많은가.

 

할매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돈이 많아도 말년이 외롭게 사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할매에 비하면 울 엄니는 돈도 없고 자식하고 같이 살았어도 외롭게 살다 가셨으니

어찌 보면 외로워도 돈있는 그 할매가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라리 혼자 외롭게 살아도 돈이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