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지리산 너 보러 또 갔다가 dg는 줄 알았다.

智美 아줌마 2016. 5. 25. 16:36

지리산 너 보러 다시는 안 가고 싶어 했지만, 내가 너를 보러 또 갔지?

그런데 지난주, 백무동에서 하동바위, 장터목 대피소 가는 길보다 한신 계곡, 세석 대피소 가는 길이

더 힘들다고들 하였으나 힘든 구간이 1. 3km인데 그 정도쯤이야 죽기 살기로 어떻게 올라가지 않을까?

 

에효 ~ 그런데 많은 사람이 힘들다고 한 것을 왜 힘들다고 했는지, 얼마나 힘든지를 내 어찌 알았겠으리오.

그 길이 정말 죽을 맛이었다는 것을, 그 길을 가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고약하리란 것을 예측불허, 상상초월이었다.

어제 백무동에서 출발한 사람은 여러 명이었지만, 한신 계곡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오직 나, 나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

아니, 올라가는 내내 올라가는 사람도 없고, 내려오는 사람도 없고, 한신 계곡을 누비는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뿐

그래도 올라가는 동안 계속 계곡을 보며 가는 길이라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좋은 길을 왜? 했다.

 

그렇게 중간 정도 올라갔을까? 그제야 내려오는 두 사람,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그래. ㅎㅎㅎ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서 또 한 사람이 내려오고, 좀 더 올라가니까

에구머니, 뭐냐? 저 두 아저씨, 빤추 바람으로 계곡에서 난리 났다.

옷은 벗어 바위 위에 다 널어놓고 무슨 사무가 저리 바쁜지 왔다갔다 하다가

내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얼른 바위 뒤로 숨었지만, 아저씨 나, 다 봤거든, 빤추 바람인 거.

 

모르는 척 계속 내 갈 길을 가는데 하산할 시간이 되어 가서인지 드문드문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서 올라가는 동안 내려가는 사람은 세석 대피소에서 퇴근하는 국립공원 직원 1명을 포함해서 총 11명,

악 소리 나게 하는 마지막 1, 3km 구간 올라갈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사람 일행 6명을 만나게 되었으니

아무리 평일이지만, 사람 구경하기 힘든 날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지막 1, 3km 구간을 마의 구간이라고 한다는데

정말 그 1. 3km 구간은 많은 산행은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산행한 곳 중에서 최악의 길이었다.

가파르다는 설악산 오색 길, 천불동 무너미 길, 마등령 길, 내가 다녀 본 여느 산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급경사에다 거칠기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심지어 내가 길을 잘 가고 있는 거야? 길이 맞는 거야? 할 정도로

길이 길 같지 않은 돌무더기 너덜겅 길도 있어 길 잘못 들었나 싶어 순간 가슴이 덜컥, 당황했던 구간도 있었다.

 

아, 마의 1. 3km 구간, 정말 지랄 같은 길이었지만, 그렇게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투덜 올라가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는데 이 길을 닦아 놓은 분들은 우리보다 얼마나 더, 더 힘들었겠는가

문득 그분들이 길을 만드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가슴이 울컥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그분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저 아름다운 풍경을 어찌 볼 수 있었겠는가

산에 다니면서 이런 곳에 어떻게 길을 만들었는지, 정말 대단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여행만 다니던 내가 설악산 매력에 빠져 산에 다니면서 정말 길 닦아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전한다.

 

그렇게 악 소리 나는 1. 3km 구간을 깔딱깔딱 숨넘어가며 올라가니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지상 낙원 무릉도원이 이보다 아름다웠을까 싶을 정도로

복사꽃은 아니지만, 흐드러지게 핀 분홍 철쭉이 세석평전을 물들이고 있었고

겹겹이 둘러쳐진 지리산 자락은 출렁출렁 물결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 정말 아름답다. 올라오면서 힘든 과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엔 행복 가득,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서울서 내려갈 때 같은 버스를 탄 젊은 할매 두 분은 장터목에서 1박하고 연하천으로 간다고 했는데

세석평전의 아름다운 풍경을 못 잊어서 지리산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이번에 두 번 째 지리산 산행 계획은 한신 계곡으로 올라가서 세석 대피소에서 1박하고 청학동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청학동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산죽이 키를 넘게 웃자라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아져

곰이나 멧돼지가 나타날 정도로 숲이 깊고 남자 산객 한 분이 청학동 길로 한 번 내려갔다가 식겁하고는

다시는 청학동 길은 가지 않는다는 말에 나 혼자 가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거림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세석 대피소에서 거림 길은 철쭉 터널을 계속 지나게 되고 세석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여기저기로 흘러내려

계곡의 큰 물이든 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숲이 시원하고 노란 동의나물 꽃과 하얀 꽃황새냉이가 지천으로 피어있어

내려오는 동안 눈이 즐거워 콧노래가 절로 나왔는데 가파른 구간이 조금 있지만, 대부분 길도 완만해서 좋았다.

 

거림 길을 내려오는 도중에 거창에서 혼자 왔다는 아짐이 올라오면서 잠시 쉬며 커피 한 잔하고 가자고 해서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 한잔을 얻어먹고 시간도 여유 있어 둘이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내려왔는데

다음에 지리산 종주 같이했으면 했지만, 얘기 들어보니까 그 아짐은 워낙 산을 잘 타는 것 같아 사양했다.

 

나도 지리산 종주했으면 하는데 그 아짐도 지리산 종주하고 싶어 했고 성격이 우선 좋아 보여

저질 체력 거북이만 아니라면 흔쾌히 동행하자고 했을 텐데, 그리 말할 수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그렇게 커피 한 잔씩 먹고 쉬다가 헤어져 내려오는데 연락처라도 주고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아짐도 얼핏 그런 말을 내비치긴 했는데 그리하지 못하고 헤어진 것은 스쳐 가는 인연이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남들은 2, 3시간이면 내려온다는 거림 길, 역시나 이 거림 길도 남들보다 두 배 가까이 시간이 걸려

5시간 반만에 거림 탐방지원센터에 2시 다 되어 도착, 먼저 그린포인트부터 신청하고

쪽동백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꽃이 때죽나무라고 알려주신 거림 탐방지원센터 아저씨와 몇 마다 나누고는

2시 35분 원지, 진주 가는 버스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어 거림 종점으로 바삐 내려갔다.

 

어떤 블로거의 자료에 거림에서 원지까지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막상 버스를 타고 가보니 1시간이 걸렸다.

지난주 법계사 셔틀버스 타는 곳도 잘못 알려줘 하마터면 고생할 뻔했으나

고마운 분들을 만나 편히 집으로 올 수 있었는데 정확하지 않은 자료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행여 나도 잘못 안내한 것이 없을까?

나는 대중교통을 타고 직접 다니면서 올린 자료니까 나중에 변경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맞게 정리해서 올린 것이니 나로 인해 고생하신 분은 없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