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든 산행이든 길을 나서 다니다 보면 여러 인연과 스치게 된다.
이번 지리산 산행에서도 이런저런 인연을 만나게 되었는데
가끔은 스쳐 가는 인연이 아니었으면 하는 인연도 있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인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은 스쳐 가는 인연이 되지만,
8년 전 삼척 여행 중에 도움을 받았던 삼척 터미널 직원과 3년 전 청송 여행 중에 만난 칠십 중반의 주왕산 할배
그리고 재작년 평창 여행에서 만난 전남 고흥의 한 살 많은 언니와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작은 도움이라도 받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지라 이동할 버스 시간이 맞지 않든지 차를 놓치게 되면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도움을 청하고 목적지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렇게 도움을 준 사람이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여자인 내가 혼자 여행을 다닌다고
신기(?)해하거나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많이 묻곤 한다.
요즘엔 여행지나 산에 가면 나같이 혼자 다니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되지만,
10년 전쯤만 해도 혼자 여행 다니는 나를 문제 있는 여자로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매표소에서 입장권 한 장을 달라고 하면 잘못 들었나? 하고 재차 확인해 물어보는 직원도 있었다.
요즘에야 턱도 없는 소리겠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여행 경비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고 또 재미삼아 "입장료 비싸요. 깎아주세요. "하며 떼를 쓰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어른 표 대신 청소년 표 또는 어린이 표를 끊어주기도 하고 일반실이 불편해 하면 특실 빈자리에 앉아가게 해주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그런 인간미 넘치는 인정은 바랄 수 없게 되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번 지리산 산행 중에도 소소한 인연은 생략하고 두 인연을 이야기하고 싶다.
백무동에서 출발해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천왕봉에 올랐다가 중산리로 하산하는 일정을 잡았는데
중산리로 하산하는 도중에 법계사라는 절이 있어 절 구경을 하고 절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고 해서
중산리까지는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가 원지나 진주로 가서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천왕봉에서 법계사까지 1.7km니까 여유만만 내려가도 시간이 충분하기에
그래서 천왕봉 언저리에서 놀며 놀며 법계사로 내려왔더니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법계사로 올라가면서 어떤 산객에게 셔틀버스 타는 곳이 어디인가를 물으니
셔틀버스는 2.8km를 더 내려가야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는 말에 나는 "망했다, "속으로 외쳤다.
법계사 일주문에 도착했을 때가 4시가 되어 가고 있었으니 무슨 수로 2.8km를 1시간 안에 내려갈 수 있겠는가.
그것도 5시 막차인데 고약한 중산리 길을 . . .
에라 모르겠다. 걸어 내려가 중산리 주차장에서 원지나 진주 가는 버스는 늦게까지 있으니까, 하며
로터리 대피소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할배 네 분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 계셨다.
한 분이 몸이 불편하신 것 같아 "어르신, 어디 편찮으세요? " 하고 여쭈니 다리가 풀려서 그렇다고 하시며
혼자인 내가 더 걱정된다고 셔틀버스 정거장에 일행의 차가 있으니까 중산리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하셨다.
아, 다행이다. 셔틀버스 정거장에서 중산리 종점까지 3.1km를 더 걸어 내려가야 한다는데
포장도로지만, 3.1km를 걸어 내려가려면 족히 1시간은 걸리는 거리이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할배 두 분은 먼저 내려가시고 몸이 불편한 할배와 친구 할배와 같이 내려가게 되었는데
몸이 불편한 할배께서 몇 걸음 걸으시다가 휘청 뒤로 자빠지기를 반복하시며 위태롭게 산에서 내려가시기에
불안해서 그 할배 뒤를 바짝 붙어 따라 내려가게 되었고 자꾸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지려고 하셔서
몇 번이나 등을 받쳐 잡아드리며 내려갔다.
그런데 두 분 다 스틱을 한쪽만 짚고 있으시기에 친구 할배 배낭에 꽂힌 스틱 한 개를 보고
몸이 불편한 할배를 드렸으면, 스틱 두 개로 짚으면 중심 잡기가 훨씬 낫다고 말씀드리고 나니
친구 할배 걸 드리고 나서 "내가 자꾸 들으니 불쾌해서 말을 해야겠다, " 하시면서 이르시길
"왜 기분 나쁘게 할아버지, 할아버지 합니까?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내 아들딸의 자식인 손자 또래가 부르는 것이지
어른한테 예의 없게 할아버지가 뭐요? 어르신이라고 해야지 . . ."
띠 ~잉 앞 퉁소 한 대 얻어맞았다.
"할아버지라고 해서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또 어르신이라고 하면 내가 그렇게 늙었느냐고 싫어하시는 분도 있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호칭이라 할아버지라고 한 건데 아무튼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보아하니 나이도 이제 겨우 마흔서너 살이나 됐나? 오십도 안 되어 보이는데 젊은 사람이 @#$%&* . . ."
다 들은 후에 "저 나이 제법 먹었어요. " 하니 몇 살이나 되었다고 그래요? 하시기에
"ㅇㅇ살입니다. " 하니 그 할배께서 깜짝 놀라시며 당신이 실언했다고 사과하신다.
몸이 불편한 할배께서는 내가 실수한 거 없다고, 마음 상해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시기에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오다가 몸이 불편한 할배께서 내가 자꾸 걱정된다시며
먼저 내려가서 셔틀버스를 탈 수 있으면 타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차 타고 가게 기다리고 하시기에
내 생각에도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먼저 내려왔더니 셔틀버스 승차장에서
천왕봉 내려올 때 만난 다리에 쥐가 난 학생과 선생님께서 셔틀버스를 놓쳤다고 하시면서
119대원과 함께 내려오는 본교 학생을 기다렸다가 함께 내려가시겠다고 하셨다.
나도 어차피 할배 두 분이 내려오셔야 갈 수 있으니 하고 기다리는데 아저씨 두 분이 내려오셨다.
두 분도 차를 얻어 타고 중산리까지 내려갈 생각에 같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119 구급대 아저씨와 학생이 먼저 내려와 한 대가 출발하고 다른 한 대에 다리에 쥐난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두 분 아저씨와 내가 얻어 타고 중산리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중산리로 내려오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아저씨들은 중산리에서 어디로 가실 거예요? " 하니
나같이 원지나 진주로 가는 가해서 물어봤는데 주차장에 차가 있어 서울로 간다고 하신다.
주차장에 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기에 괜찮으면 서울로 저도 묻혀가면 안 되겠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끔 자리 남으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중산리에서 원지나 진주로 가면 서울 가는 버스는 탈 수 있지만, 날은 곧 어두워지고
초행길이라 번거로울 수도 있었는데 그분들의 배려 덕분에 승용차로 편하게 올라오게 되어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하시기에 저녁 대접은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그건 경우가 아니라면서 굳이 사양을 하셨지만, 저녁은 내가 사드리고 그럼 커피를 사주세요, 했다.
식사하시면서 여자한테 밥 얻어먹는 거 처음이라고들 하시면서 오늘 일기장에 써야겠다는 농담을 하셨지만,
어차피 고속버스 타도 식대만큼 차비가 나가니까 괜찮다고
그래야 나도 편하게 타고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부담 갖지 말라는 마음에 그렇게 말씀드렸다.
함께 올라가는 동안 너무 편하게 대해주셔서 남의 차 얻어 타고 가는 불편함 없이 올라오게 되었고
우리를 뭘 믿고 차를 같이 타고 갈 생각을 했느냐고, 그것도 여자 혼자서라고 물으셨으나
중산리까지 같이 차를 얻어 타고 오면서,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해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쉽게 표현해서 나쁜 사람 같지 않았고 게다가 산악회 회원이 아닌 친구 관계라는 것에 좋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태워줄 테니까 가다가 휴게소에서 커피라도 사세요, 라는 말장난을 한 사람들이었다면
아마, 중산리에서 원지나 진주로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을 것이다.
한 분은 수원에서 안경점 하시고 또 한 분은 대구에서 직장 생활하시면서 주말에 수원댁을 오가신다고 하고
분당에 사시는 분은 2년 전 전역한 군 출신으로 1년 정도 쉬고 있는데 너무 좋다고 하셨다.
남자들은 대부분 가족 생계를 위해 일을 하게 되니 그 일에서 벗어나면 얼마나 자유롭고 좋겠는가.
그렇게 수원, 분당에 사시는 분들이라 우리 집과는 거리가 떨어져 걱정하셨지만,
수원에 사는 차 주인께서 친구들 내려드리고 나도 광역버스 타고 사당역에서 전철을 타고 갈 수 있게
끝까지 잘 챙겨주셔서 고생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죠. 성대역 앞에 내려주셨는데 타야하는 7780번 버스는 내가 도착 직전에 이미 지나가 버렸고
다음에 오는 버스 7790번은 24분 후에 온다고 해서 4호선 선바위역으로 가는 버스 3003번 타고 선바위역으로 갔는데
선바위역에서도 마찮가지로 당고개행 전철이 막 출발해 가버려 20분 후에 오는 한성대 역까지 가는 전철을 탔답니다.
그래서 혜화역에 내려 버스 타고 들어왔지만, 어차피 당고개행을 탔어도 버스 한 번 더 타고 와야 했으니까
마찬가지고요. 덕분에 편히 집에 잘 돌아왔습니다. 배려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겨.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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