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거제 옥포대첩 기념공원

智美 아줌마 2016. 3. 29. 12:00

옥포 공원에서 만난 할배 차를 타고 옥포 공원 정자에서 본 길을 따라 옥포대첩 기념공원으로 간다.

옥포대펍으로 가는 길이 참 예쁘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옥포만에서 왜선 50여 척 중 26척을 격침시킨 옥포대첩을 기념하여 조성하였다. 옥포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첫 승첩으로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57년 6월 12일에 기념탑을 세웠으며, 1963년에는 옥포정을 완공하였다. 1973년에 옥포조선소가 들어서며 기념탑과 옥포정을 아주동 탑곡마을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주변이 협소하여 1991년 12월부터 현 위치에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높이 30m의 기념탑과 참배단·옥포루·팔각정·전시관 등을 건립하여 1996년 6월에 개원하였다. 이중 '충(忠)' 자를 형상화한 참배단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있다. 전시관은 옥포해전 당시의 해전도 등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며, 옥포루는 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팔각 정자이다. 공원에서는 매년 이순신 장군의 제례행사가 열리며, 6월 16일을 전후하여 약 3일간 옥포대첩기념제전이 열린다.

 

옥포대첩 기념 공원 주차장의 풍경

 

 

 

 

먼저 옥포대첩 기념탑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조팝나무 하얀 꽃길

 

아, 아쉽게 목련은 대부분 지고 지저분한 흔적만 남아있네.

 

 

 

노란 개나리 꽃길을 지나

빨간 동백나무 꽃길도 지나고

 

흰동백은 시들면서 노란색으로 변하는가? 동백은 시들어도 예쁘게 진다.

 

 

덕포 방향

옥포루

 

 

옥포대첩 기념탑

 

 

이순신 장군 영정이 있는 忠 참배단

 

사당으로 가는 길

 

금창초는 금란초라고 하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길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습기가 많은 곳이나 양지에서 잘 자란다. 한방에서는 해수·천식, 기관지염, 인후염, 장출혈, 코피, 객혈, 유선염, 중이염, 종기, 타박상 등에 처방한다. 민간요법으로는 생초를 짓찧어 종기·타박상 등의 환부에 붙인다. 한국(제주·경남·전남)·경북(울릉도)·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목련, 백과사전에서는 목련을 검색하면 이렇게 생긴 꽃 이미지가 나온다. 흔히 공원이나 가정 집에서 꽃잎이 더 넓고 둥근 것을 많이 볼 수 있지만, 가끔 좁은 꽃잎의 목련을 볼 수 있는데 대게 이런 목련은 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 사당

 

 

 

 

 

 

 

 

홍살문, 사당의 가운데 문은 신도문으로 닫혀있어 관람객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서 왼쪽 문으로나온다.

외삼문인 경앙문

거충사(우측)

승판제(좌측)

경앙문에서 내려다 본 옥포항

내삼문인 경충문

 

 

효충사

 

이순신 장군 영정,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의 장수로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본관은 덕수이고,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1545년(인종 1년) 4월 28일(음력 3월 8일) 한성부 건천동(현재 인현동)에서 이정과 초계 변씨와의 사이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보성군수 등을 지낸 방진의 딸인 상주 방씨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으며, 이 밖에 해주 오씨와의 사이에 2남 2녀가 있었다.

 

이순신은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명나라 제독 진린과 연합해 노량에서 500여척의 왜군과 싸워 200여척의 적선을 불태우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노량해전).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이순신은 도주하던 적선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이순신이 “싸움이 지금 한창 급하니 조심하여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숨이 끊어졌으며, 조카인 이완이 그의 죽음을 숨긴 채 전투를 독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죽음 소식을 들은 조정은 이순신에게 우의정을 추증했다. 이순신은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1등으로 녹훈되었으며, 좌의정이 증직되었고 덕풍부원군으로 봉해졌고 충무라는 시호를 받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옥포대첩 기념관

 

 

벽화가 너무 커서 한 컷에 다 담을 수가 없어 파노라마로 찍었는데 제대로 잘 찍혔다.

전시실 내부

 

장군과 수병의 복장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인 정문부의 창의로 소매가 넓고 뒷솔기가 갈라져 있다.

쇠로 만든 투구

 

 

 

 

 

 

이순신 장군 영정

 

 

 

 

 

 

 

 

무과급제교지

 

 

 

 

 

 

 

 

 

 

옥포해전의 승리를 가능케한 양지암 모형

 

 

 

 

노량묘비 탁본첩

전라좌수영 탁본첩

 

 

김념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옥포항, 대우조선해양, 팔각정 매점

 

옥포 공원에서 만난 할배의 도움으로 편히 옥포대첩 기념 공원에 와서 둘러 보기 전에 답례로 차 대접을 하겠다고 했더니 찻집 있다고 하시면서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팔각정 매점이었다. "할배, 다른 찻집 없어요? 맛있는 차 사드릴 테니까 다른 곳으로 가요. " 했더니 여기가 좋다고 하시면서 들어가셨는데 매점 쥔네 부부와는 형님, 아우 하는 가까운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매점에서 종이컵에 타주는 커피 믹스 500원 하는 차 대접으로 때우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매점 쥔장께서 여기까지 왔는데 김영삼 대통령 생가를 안 보고 가면 되겠냐고 하시기에 그곳까지 가기에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 들를 계획이 없다고 했더니 할배께서 오늘 나한테 봉사하겠다고 하시면서 김영삼 대통령 생가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초면에 이곳까지 데다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사양했더니 마침 오늘 볼일이 없는 날이라 시간이 된다면서 괜찮다고 하셨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김영삼 대통령 생가까지 둘러 보게 되었고 할배께서는 내가 옥포대첩 기념공원을 다 둘러 보고 사진 찍는 것을 다 기다려주셨는데 재촉하거나 못마땅한 내색 하나 없이 "이쪽에도 찍었나? 저쪽도 찍고 온나. " 하시면 부담되지 않게 기다려 주셔서 정말 좋은 품성을 가진 분이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젠 김영삼 대통령 생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