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일정에는 3일, 4일에 전주, 완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양 사는 친구가 이틀 비 오고 나면 고사리가 쑥쑥 올라오니까 4일 수요일에 내려오라는 전화가 왔다.
본지도 여러 달 되어 일정을 변경하고 청양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해뒀다
그것도 매월 첫째 주 월요일마다 대학로에서 모임이 있어 외출 준비하면서 말이다.
모임 끝나고 바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불교문화에 관한 아카데미 강좌가 있어
그것까지 듣고 오려면 늦게 집에 도착할 것 같아 나갈 채비 하면서 차표 예매를 한 것이다.
이틀 후, 고사리 뜯으러 가는 날
7시 20분 첫 버스를 타려고 날이 밝고 있는 6시에 집을 나섰다.
몇 달 만에 친구 부부와 동생 부부를 만나서 점심을 먹고 데려다 주는 대로 이 산 저 산 다니며 고사리를 뜯었다.
내가 청양 내려간다고 하니 동생 부부가 이틀 동안 새벽에 산에 올라가 고사리 한 부대를 뜯어 놓았다고 했으나
이왕 내려갔으니 손맛도 보고 친구와 나눠 먹으려고 허리 굽혀가며 고사리 하나라도 더 뜯고 다녔는데
작년에는 데쳐서 말려줘서 간편하게 들고 왔으나 요즘엔 강쥐가 더 늘어 일이 많아 그럴 겨를이 없다고 했다.
동생 부부는 안양에 살다가 청양으로 내려가 산 지, 만 3년이 지나고 있는데
원래 청양 사람이 아니라 어찌 하다 보니 청양에 터를 잡고 살게 된 것으로
그래서 청양 친구로 인해 그 동생 부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동생 부부도 나보다 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안양에서 살 때 길에 버려지는 강쥐가 가여워 한 마리 두 마리 데리고 와 살다 보니
이웃 사람이 못 키우겠다며 동생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심지어 동생 집 앞에 몰래 묶어 놓고 가는 사람도 비일비재라 그러다 보니 강쥐가 수십 마리가 되었고
3층 건물을 갖고 세를 주며 살았는데 강쥐 때문에 동네 사람과 다투는 일이 잦아져서
건물을 팔아 강쥐를 마음 편하게 보살피자고 장소를 물색하다가 청양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처음 그 동생 부부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듣고 남이 듣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참쉽지 않은 선택인데
그런 결정한 부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형편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우리 강쥐 사료 주문할 때 그 집 강쥐 사료 한 부대 보내주자 했다.
자주는 못 보내주고 있지만, 두 세 달에 한 번씩 우리 강쥐 사료 주문할때 20kg 한 부대씩 택배로 보내주고 있는데
그런 얘기 들어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이 오지랖 넓은 내가 속사정을 알았으니 어찌 그냥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계산을 따지자면 그 돈이면 조금이라도 더 여유있게 여행 경비를 쓸 수 있고
맨날 가장 싼 좌석표를 예매해서 관람하는 음악회도 한 단계 더 나은 좌석을 예매할 수도 있을 텐데
오지랖 병이 깊은 내겐 나 자신보다 주변 사람의 어려움이 더 먼저 생각되니 고치기 힘든 불치병인 것 같다.
그렇게 동생 부부가 챙겨주는 고사리를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5일 연휴 시작 전날이어서 그런지 내려갈 때는 2시간 소요되던 게
올라올 때는 상하행 다 정체를 반복하더니 3시간 걸려 센트럴시티에 도착했다.
어깨엔 배낭을 메고 한 손에 작은 장바구니를 들고 한 손엔 동생 부부가 챙겨 준 고사리 부대 들고 전철 타러 간다.
평소에도 조금씩 아프던 오른쪽 손목이 무거운 짐을 들어서인지 시큰시큰 아프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 맞물려 혼잡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출입문 끝에 카드 지갑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비자카드와 여러 장의 카드가 들어있는 작은 지갑인데 일단 얼른 주어서 손에 들고
며칠 전 싸가지가 알려준 지하철 문자 신고 센터로 전화했다.
"고속버스 터미널 역에서 승차하면서 지갑을 주었는데 어덯게 할까요?" 하니
내리시는 전철역 역무실에 맡기면 된다고 한다.
아니, 내가 내리는 역은 쌍문역인데 이 지갑 주인이 찾으러 오기엔 너무 멀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렇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지금 타고 가는 전동차가 신사역으로 가는 중이니까
잠깐 내려서 신사역 역무실에 맡기고 가겠노라고 했다.
이 오지랖이 날로 중증이 되나 보다. 그 무거운 고사리 부대를 들고 그것도 손목 아파하면서
신사역에 내려 역무실까지 메고 들고 가야 하겠느냐고?
그런데 그렇게 역무실까지 가는 중에는 힘들다는 생각보다 지갑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이 먼저였으니
아 ~ 악 나 왜 이렇게 사니? 아이고 ~ 내 몸 상하는 것 생각 않는 이 멍청한 여자야.
그렇게 고사리 보따리를 메고 들고 역무실에 맡겨 놓고 다시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더니
다행히 복잡한 전철 안이지만, 배려석이 비어있어 염치 불고하고 슬쩍 가서 앉아 오는데 손목이 점점 더 아파온다.
게다가 집에 도착해서는 가까이 사는 두 친구에게 전화해서 고사리 줄 테니까 집 앞으로 나오라 하고
돗자리에 고사리 쏟아붓고는 4등분을 하여 한 덩어리씩 담아 들고 버스 환승 시간 넘을까
부랴부랴 챙겨 들고 갖다 주고 왔다. 참으로 못 말리는 오지랖이다.
그렇게 오지랖 넓은 짓하고 다니니 손목과 허리가 너무 아파 파스 붙여도 나을 기미도 안 보인다.
열흘 있다가 지리산 천왕봉 산행 계획을 세워 두고 있는데 그 전에 빨리 나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 동생네가 길냥이까지 챙기는 걸 보고 와서 냥이 사료 한 부대 주문해서 보내줬다.
마음은 더 해주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그 동생네 생각하면 마음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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