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옛 정자를 찾아 걷는 경포호

智美 아줌마 2016. 2. 28. 22:00

경포 해변에서 점심을 먹으러 경포호 앞으로 나갔다. 예전에 없던 설치물도 있고 콘도같은 큰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다. 밥 먹을 적당한 식당이 있나 둘러 보니 대부분 횟집이고 딱히 식당이 눈에 띄지 않는다. 목을 빼고 아래쪽으로 보다가 편의점 골목에 호수식당이 보여 상호가 마음에 들어 그리로 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보니 동네 아짐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있기에 되돌아 나오려고 하니까 자기들은 간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 나오고 쥔네인지 일하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맛있게 해주겠다며 자리에 앉기를 권해서 그냥 들어가 앉게 되었다.

 

그런데 가겠다고 일어나던 아짐들은 가지 않고 다시 있던 자리로 가서 앉더니 밥 먹는데 정신없게 떠들어 대는 것도 모자라 아예 눌러앉아 고스톱판을 벌린다. 게다가 맛있게 해주겠다던 음식은 언제 구워 놓은 것인 지, 식어서 뻣뻣한 꽁치에 데우지도 않은 된장국, 밥이라도 따끈했으면 좋으련만 밥마저도 미지근하니 참으로 성의라곤 눈 씻고 봐도 없는 밥상이었다. 그래서 꽁치를 데워 달라고 하고 보니 밥이며 국도 미지근해서 다 데워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고 말았는데 이런 밥을 7천 원이나 주고 먹어야 한다니, 먹으면서도 짜증이 났다.

 

어느 식당이든 가게든 들어갔을 때 손님이 아닌 종업원이나 마실 온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앉아 있으면 대개가 되돌아 나오는데 다 갈 것처럼 일어나 나오기에 그냥 들어가 앉았더니 후회막급이었다. 날씨도 흐린 데다가 빗방울까지 떨어지고 있으니 손님에게 따뜻한 음식을 먹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제값 다 받으며 파는 음식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내놓다니, 아무리 뜨내기손님이라고 할 망정. 경포호 주변은 여행객이 한 번 가고 다시는 가지 않는 그런 관광지가 아닌데 저런 식으로 장사하면 누군들 그 식당 또 가겠는가.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나오니까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고 종점 버스 정거장 앞 편의점에 들어가 커피 한 잔 사고, 우산을 한 개만 가지고 가서 우산도 하나 더 사고, 온종일 발품 팔고 다녀서인지 달달한 초코릿이 당겨서, 2+1로 사서 챙기고는 다시 경포호 길을 이어서 걷는다.

 

 

"올라 가지 마세요" 라고 쓰여있다. 저길 사람들이 올라가나 보네.

 

경포호 가운데 새바위가 월파정 오른쪽에 있던 게 왼쪽에 있다. 우리가 반대편으로 돌아왔네.

 

홍장은 조선 초기 강릉 기생으로 시조 작가로서 시보 1수가 전한다. 박신이 강원도 안렴사로 갔을 때 그녀를 사랑하여 아주 깊이 정이 들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갈 때 강릉 부윤으로 있던 조운흘이 "홍장은 이미 죽었다."고 하고, 그녀를 마치 신선처럼 꾸민 뒤 박신을 한송정으로 유인하여 놀려주었다는 일화가 동인시화에 전하고 있다. 조선 효종 때의 신후담이 홍장과 박신의 이와 같은 애정 고사를 소설화하여 홍장전을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김태준의 조선소설사에서도 그의 속열선전 등 여러 소설작품과 함께 거론된 바 있다. 그녀가 지은 시조는 한송정 달 밝은 밤에 오락가락하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가고 오지 않는 왕손을 그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교주해동가요 등에 전한다.

 

1. 강원도 안렴사로 부임해서 강릉으로 순찰하는 박신

2. 절세미인 홍장을 만나다.

3. 박신이 홍장에게 반하다.

4. 홍장에게 구애하는 박신

5. 강릉에 있는 동안 열애 중인 박신과 홍장

우리 딸 노란 우산 쓰고 앞서 걸어가고 있다. 이번 여행에 좋은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6. 홍장을 가슴에 품고 떠나는 박신

7. 업무를 마치고 홍장을 만나러 가는 박신

8. 강릉 부사 조운흘 친구가 홍장이 죽었다고 놀리다.

9. 경포 호수에 뱃놀이 나오는 홍장

10. 홍장의 죽음이 장난인 줄 알고 웃다.

11. 재회의 기쁨

홍장암 옆의 전망대

 

 

 

박신과 홍장 포토존

포토존이면 어떻게 찍어야 돼? 가운데 하트에 서서 찍으라는 겨?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섰더니 싸가지 우습단다.

비내리는 경포호, 비에 젖은 도로에 비친 나무들, 걷다 보니 방해정이 나온다. 오래 전 방해전 뿐만 아니라 경포호 주변 정자들을 답사했다.

 

방해정은 조선 철종 10년(1859) 통천 군수를 지낸 이봉구란 이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객사의 일부를 헐어다가 선교장의 부속 별장으로 지었다고 하며, 정자이기는 해도 온돌방과 마루방, 부엌 등을 ㄱ자형으로 갖추어 살림집으로도 사용했다. 1940년 그의 후손인 이근우가 중수하고 1975년 보수하였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돼 있다. 옛날에는 집 앞까지가 호수여서 대청마루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놀았으며, 출입할 때에는 배를 이용했다고 한다. 대청마루에서 낚시를 하고 배를 타고 집을 드나들고 넘 낭만적이다.

 

 

 

인월사 터, 신라 때 화랑들이 모여 심신을 단련했던 절 터.

 

 

금란정은 현세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계속 더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 초기(1466년) 강릉의 젊은 유학자들은 호불세력을 견제하고, 성리학적 질서를 지역 사회에 심기 위해 계모임인 금란반월계를 조직했다. 원래는 조선 말기 이 고장 선비 김형진이 경포대 북쪽 시루봉 아래에 건물을 지어 매화를 심고 노닐던 ‘매학정’이었는데, 현재의 금란정은 이들 금란반월계원들이 이용하던 매학정을 1899년 이건해 세운 정자다. 금란반월계는 조선 왕조 500년을 거쳐 지금까지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금란정을 거점 삼아 계모임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상영정과 경호정 가는 길

 

상영정은 1886년(고종 23)에 향토유림) 16인으로 구성된 상영계의 회원들이 건립하였다. 모임인 상영계에서 상영정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당초에 오봉산과 영귀암 사이에 건립되었으나, 1908년(순종 2)에 금산 낙안전 건너편으로 옮겼고, 1938년에 사천면 순포로 옮겼다가 196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정자의 전면에 ‘상영정’이라고 쓰인 현액과 석농 최대순, 경운 김영래의 시판이 걸려 있다. 또한 '상영계원록', '상영정인'과 더불어 다수의 시문과 기문이 걸려 있다.

 

 

경호정은 1927년에 건립, 경포호수 가에 자리 잡은 정자로서 경호정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창회계를 결성하고 강신 활동을 위해 건립하였다.해서와 전서로 쓴 ‘경호정’ 현액이 걸렸고, "경호정기", "경호정상량문" 등 17개의 기문과 시판이 걸렸다.

 

 

경호정

경호정을 내려오니 바로 손성목 영화 박물관 뒤였는데 돌아가지 않으려고 틈으로 슬쩍 들어가 앞으로 나갔다. ㅎㅎㅎ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에디슨 과학 박물관, 손성목 영화 박물관

박물관을 나와 경포호 길로 내려간다.

경포대 입구에 도착했다. 아이들 어렸을 때, 오래 전엔 입장료를 받았던 것 같은데 몇 년 전에 가니까 무료 관람이다.

경포대 올라가는 길

 

경포대는 고려 제 27대 충숙왕 13년(1326년)에 강원도 안렴사였던 박숙이 신라의 사선이 놀았다던 방해정 뒷산 인월사 터에 세웠다가 그 뒤 1508년(중종 3)에 강릉부사 한급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1626년(인조 4) 강릉부사 이명준이 크게 중수하였다. 인조 때 우의정을 지냈던 장유가 지은 『중수기』에는 “태조와 세조도 친히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라고 적혀 있다.

현재의 건물은 1745년(영조 21) 부사 조하망이 세운 것이며, 낡은 건물은 헐어낸 다음 홍수로 사천면 근처 앞바다까지 떠내려온 아름드리나무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관동팔경 중 첫손에 꼽히는 경치를 자랑하는 경포대의 현판은 전서체와 해서체로 쓴 것 두 개가 있다. 해서체는 순조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이익회가 썼고, 전서체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 유한지가 썼으며 ‘정자가 없어 비바람이 치는 날 놀러 왔던 사람들이 곤욕스럽게 여겨 작은 정자를 지었다.’라는 창건 이야기가 전한다.

 

 

第一江山은 전주 객사의 풍패지관을 썼다고 알려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글씨라고도 하고 또는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인 양사언의 글씨라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뒷부분의 파손된 두 글자는 후세 사람이 써서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 밖에 숙종의 어제시와 명문으로 널리 알려진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사람의 글이 걸려 있는 가운데 율곡 이이가 열 살 무렵 지었다는 「경포대부」도 편액되어 있다.

 

누각에서 내려다 본 경포호, 오른쪽 끝 너머가 경포 해변

 

고려 때의 문신 김극기는 경포대를 두고 『“서늘한 경포대에 물과 돌이 다투어 둘렸네. 버들언덕에는 푸른 연기 합쳐졌고, 새는 교반을 떨어뜨리네. 모래언덕에 흰 눈이 무더기졌구나. 선인은 아득하게 어디로 갔나. 땅에는 푸른 이끼만 가득하다”라고 노래하였고, 조선 초기의 청백리 황희는 “맑고 맑은 경포 물엔 새 달이 잠겼고, 늘어진 차가운 소나무는 푸른 연기에 잠겼구나. 구름 비단의 연꽃은 못에 가득하고 대엔 대나무가 가득한데, 티끌세상에도 또한 해중 신선이 있다”』라고 읊었다

 

 

어느 가을 달밤에 경포대에서 호수를 바라보던 세조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속세는 간데없이 온갖 선경이라 나오느니 서경시요, 들리느니 노래라 바다에는 갈매기, 호수에는 철새들이 쌍쌍이 날고 천병만마 늘어선 송림 사이로 거니는 선남선녀의 모습이 그림 같구나.』

 

충혼탑, 싸가지 네 살 때 저 탑 앞에서 같이 앉아 찍은 사진이 있는데 어디 있나?

내리는 비로 인해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위에서 한 컷 찍고 만다.

 

예전엔 이쪽 출입구가 없었는데 몇 년 전 가니까 만들어져 있었다.

왼쪽 경포대 후문, 오른쪽 경포 해변 가는 길

저 아래 삼거리에 있는 사공의 노래 기념비와 3.1독립운동 기념탑 있는 곳으로 간다. 비는 진눈개비로 내리고 그칠 기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

비가 오는 데도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우리 싸가지, 자기 스마트폰으로 찍으라며 건낸다.

 저 곳에 홍난파 곡 '사공의 노래' 시비와 김동명의 시 '호수'의 시비가 있다.

양쪽에 사공의 노래 시비가 있고 물가에 작은 배가 늘 있다.

버튼을 누르면 사공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호수 / 김동영, 여보, 우리가 만일 저 호수처럼 깊고 고요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별들은 반딧불처럼 날아와 우리의 가슴속에 빠져주겠지…… 또, 우리가 만일 저 호수처럼 맑고 그윽한 가슴을 가질 수 있다면 비애도 아름다운 물새처럼 조용히 우리의 마음 속에 깃들여 주겠지…… 그리고 또, 우리가 만일 저 호수처럼 아름답고 오랜 푸른 침실에 누울 수 있다면 어머니는 가만히 영원한 자장 노래를 불러 우리를 잠들여 주겠지…… 여보, 우리 이 저녁에 저 호수가으로 가지 않으려오. 황혼같이 화려한 방황을 즐기기 위하여…… 물결이 꼬이거던, 그러나 그대 싫거던 우리는 저 호수가에 앉어 발끝만 잠급시다그려.

이 길은 봄에 다시 와서 걷기로 하자.

 

 

 

 

 

 

 

 

 

가시연 습지 가는 길, 이곳도 봄에 와서 가보자. 마침 경포해변 종점으로 버스가 들어간다. 이번 여행은 이곳에서 마치고 종점에서 버스가 많이 정차하지 않는 것 같아 터미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경포대 앞 버스 정거장으로 간다.

 

 

편의점에서 산 우산에 비가 흐르더니 이젠 눈이 쌓인다. 날씨가 좋으면 싸가지한테 하루 더 돌다 가자고 떼를 써 보련만, 이제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무료 쿠폰으로 서울로 가자. 몇 년 전 강릉 여행 갔을 때 쿠폰에 도장 2, 3개 받았는데 내 것은 잘 둔다고 한 게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안 나고, 3, 4년 전인가? 재작년인가? 짱구가 친구들과 강릉 쪽으로 여행 다녀와서 도장 10개를 다 찍은 쿠폰을 줘서 요건 잘 뒀다가 이번에 사용하게 되었다. 1인은 공짜로 타고 1인만 14,600원 내고 표를 끊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까 눈은 펑펑 내리고 바로 출발하는 차를 탈 수 있었지만, 서울 도착해서 먹으려면 늦을 것 같아 이른 저녁도 먹을 겸 6시 차표를 끊었다. 롯데 카드로 할인받을 수 있는 롯데리아로 가서 커피와 햄버거를 먹은 후 여유 있게 버스를 탔는데 2시간 반, 넉넉잡고 3시간이면 동서울에 도착하는 것을 계속 내리는 눈으로 인해 5시간이 더 걸려서 동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준 딸과의 1박 3일의 여행길이 즐거웠고 함께 해 준 싸가지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딸, 고마워. 사랑한데이 ~

 

 

동해상사 고속버스는 전국 시외버스 회사 중 유례없이 동서울~강릉 간 시외버스에 쿠폰제가 도입됐는데, 운전기사나 회사 직원한테 쿠폰에 도장 10개를 찍어서 제시하면 버스 1번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시스템이다. 14,600원에 해당하는 편도 운임 1회를 절약할 수 있는 데다 기존 버스 회사 중에선 상당히 파격적인 쿠폰제도이기에 동서울~강릉 버스 이용객의 상당량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쿠폰 뒷장에 동해상사 배차 시간표가 있어서 해당 노선 경쟁 버스회사인 강원 여객(흥업) 배차와 혼동하지 않고 탈 수 있다. 해당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 배차 중 일부는 주문진, 양양 혹은 동해, 삼척까지 운행하기 때문에 양양, 동해, 삼척에서도 해당 쿠폰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쿠폰 두 장을 합쳐 도장 10개가 됐다는 식으로 하는 무료 승차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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