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딸과 걷는 경포호 홍길동 길

智美 아줌마 2016. 2. 28. 19:30

허난설헌 생가를 둘러 보고 솔밭을 가로 질러 경포호로 간다. 계획은 왼쪽 경포 가시연 습지로 가려했는데 오른쪽 경포 해변으로 가게 되었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직원 아짐이 다리 두 개가 나온다더니 다리가 보이네.

허난설헌교

다리 양쪽엔 꼬마 홍길동, 청년 홍길동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홍길동은 조선 연산군 때 충청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도적떼의 우두머리이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모델이 되었으며, 명종 때 임꺽정, 숙종 때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도적’으로 꼽히기도 한다. 홍길동은 양반관리의 복장을 하고 스스로 「첨지」라 하면서 무장한 많은 농민을 지휘해 여러 고을의 관청들을 습격했다. 결국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취조당한 기록이 남아 있다. 뒤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홍길동전으로 소설화되었다. 홍길동은 홍길동전의 유행과 더불어 조선 후기까지도 민간에 널리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00년 음력 10월 22일의 기록에 홍길동에 관한 내용이 처음 등장한다.

 

실록에는 이날 영의정 한치형,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이 “듣건대,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참에 그 무리들을 다 잡아들이도록 하소서”라고 왕에게 건의하여 그대로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음력 10월 28일에는 의금부에서 홍길동에게 접대를 받고 그에게 집까지 주선해 준 엄귀손의 처벌을 건의해 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반역이나 강상의 죄를 저지른 중죄인을 왕명에 따라 조사, 처벌하는 의금부에서 홍길동 사건을 담당했으며, 홍길동이 무반인 엄귀손과 결탁하여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홍길동 사건에 대한 의금부의 조사는 1500~1501년 두 해 동안 이루어졌는데, 수많은 사람이 그와 관련해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홍길동 개인의 신분이나 행적 등에 관해서도 장성 출신이라는 것 외는 분명히 확인되는 내용은 없다. 다만 엄귀손과 마찬가지로 의금부의 조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길동 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홍판서의 서자로 태어나 학대를 받으면서도 병서, 검술, 천문, 지리 등을 배운 뒤 도적을 모아 활빈당을 조직하고 그 두목이 되어 8도의 방백 수령들이 착취해들인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도술로 관가를 괴롭혀 주다가 조정의 회유에 응하여 병조 판서가 되었다. 후에 율도국에서 이상적 왕국을 건설했다. 조선 신분제도의 사회적 모순과 그것에 저항하는 허균의 이상주의를 구현한 인물이다.

 

경포천, 왼쪽에 경포 아쿠아리움 건물이 보인다.

 

 

교산교

 

경포 가시연 습지, 시비 조각 산책로 가는 길, 봄이 되면 벚꽃 길이 되겠지?

경포호

경포 해변으로 가는 홍길동길, 홍길동 캐릭터 제작 김문기 作

총명하고 힘찬 청년 홍길동, 호수 건너 왼쪽에 경포대가 보이는데 날씨가 흐려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아쉽다.

나라를 내 준 율도국의  임금

율도국 충신 김현충 장군

평화로운 율도국 백성

길동이의 부인이 되는 백룡의 딸

 

 

 

 

 

 

 

경포호 달 속에 우리 딸과 내가 함께 있네. 딸 ~ 우리 떡방아라도 찧을까?

 

 

망탄산의 요괴 우농들

고민하는 조선국 임금

푸대 속에 갖힌 포도대장

백성을 괴롭히는 흥청망청 포졸들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고

우리 딸, 뭘 보나? 뭐가 보이남?

 

재물을 나눠 받고 좋아하는 백성들

활빈당에게 곤장 맞는 탐관 사또

재물을 나눠주는 의적 활빈당원들

도적 텁석부리와 졸개

길동의 방을 침입하는 자객

 

"엄마, 저기 말 있어." 경포호를 보고 있다가 딸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 보니 꼬마와 말의 설치물이 있다.

꼬마 아가씨, 나물 다듬니? 혼자 소쿠리에 담긴 거 다 다듬으려면 한참 걸리겠다.

에구 ~ 꼬마야, 혼자 배 타려고? 위험해서 안돼.

얘들은 숨바꼭질하네. 빨리빨리 숨어라.

수줍은 타는 듯한 저 소녀, 이 사내아이가 찾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살포시 나무 뒤에 숨어있다.

홍매화가 예쁘다. 우리 딸 여기 앉혀 놓고 사진 한 장 찍었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우리 딸, 돌아 보니 산책로로 나가버렸네.

아이고 ~ 넌 수레를 끌려고? 어린 소녀가 끌기엔 힘들 텐데 도와주리? 싫다는 표정이다. ㅎㅎㅎ

작은 설치물이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숲이 되게 한다.

부자 간을 이간질 하는 관상녀

길동이의 친어머니 춘삼

길동이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호수 건너 참소리 박물관과 에디슨 박물관이 보인다.

습지

 

앗! 깜짝이야. 이 할망구는 누구여? 하늘도 담고 나무도 담고 잠시 나도 담아 봤다. ㅎㅎㅎ

길동이를 아끼는 이복 형 홍인형

아버지 홍판서와 부인 유씨

이번 여행에서는 노란 홍길동 길에서 경포 해변을 돌아 경포대 지나 3.1 독립운동 기념탑까지 걷고 꽃피는 봄에 이어 걷기로 했다.

 

 

 

 

 

"엄마 쟤네들 봐. 너무 귀여워."한다. 청둥오리들이 자맥질하느라 머리를 물에 처박고 꼬리만 간들간들

인기척에 세 녀석은 피하는데 한 녀석은 뭘 하는지 주변 상황을 모르고 혼자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ㅎㅎㅎ 

세 녀석 가다가 한 녀석이 안 따라오는 걸 알았나? 야, 빨리 와. 사람 왔어. 저쪽으로 가자. 하는 것 같다.

 

 

호수 건너편은 경포 해변 앞의 상가와 숙박 시설 건물이 보인다. 큰 건물이 많이 들어 선 것 같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의 정원이나 온실에서 심어 기르는 상록 떨기나무이다. 다수의 백색의 꽃이 달리는데 개개의 꽃은 종형으로 크고, 지름 10㎝ 가깝게 된다. 개화기는 6월로 가을에 한번 더 피는 일도 있다.

 

 

 

호수 건너 방해정이 보인다.

 

경호교

오른쪽에 검은 줄 무늬가 있는 새가 있다.크기는 청둥오리와 비슷한데 이름이 뭔가? 이곳에는 작은 새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 큰 새들이다.

 

"엄마, 이쪽엔 온몸이 까만 새도 있어." 하기에 가보니까 정말 부리 쪽만 하얗고 온몸이 다 까맣다. 너흰 누구니?

 

와 ~ 무궁화 길이다.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서 본 무궁화 같이 생긴 나무다.

딸이 저 건너에서 벌써 이곳까지 왔다며 금방이네. 한다. 힘들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더니 엄마가 힘들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경포호는 바다와 이어지는 자연 석호로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경포호에는 달이 다섯 개 뜬다는 풍류가 있었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요,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그리고 술잔에도 달이 하나, 그대의 눈동자에 또 하나,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포호는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고 경포호는 수심이 깊지 않아 사람이 빠져도 상하지 않는, 마치 선비와 같은 덕을 가진 호수 같다고 해서 군자호, 어진개라고도 한다. 

 

원래 주변이 12㎞에 달했으나 지금은 하천의 유사로 4㎞에 불과하다. 그리고 ‘때복이’라는 민물 조개도 유명한데,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전설이 전한다. 경포호 자리에 최부자가 살았는데, 시주를 청한 스님에게 똥을 퍼주어 내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솟아올라 마을은 호수로 변하고 최부잣집 곳간에 쌓여 있던 곡식들은 모두 조개로 변하였다고 한다

 

 

경포호 한 가운데 월파정과 새 바위, 새 바위엔 우암 송시열이 쓴 ‘조암’이란 글씨가 남아 있다. 달 물결을 이르는 월파정은 1958년 같은 나이의 계원 28명이 뜻을 모아 건립한 정자로 팔각정의 형태인 월파정(15.9㎡)은 2000년 호수와 좀 더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순수한 전통 한식 양식으로 단장하였고 처음 건립 때 월파정 지붕 위에 있다가 없어진 목재로 만든 날개를 펴고 있는 학의 모형을 청동으로 만들어 설치하였다.

 

검은 새만 모여 있다. 너희는 누구니?

 

 

전망 태크도 큐피트의 화살과 하트 모양이다.

 

 

지도를 찾아 봐도 나와 있지 않다. 차가 다녀서 길 건너에서 찍었더니 건너 갈 볼 걸 그랬나?

새바위가 정자 왼쪽으로 이동하였네. 우리가 반대 편에서 돌아왔다.

이제 잠시 경포 바닷가로 가보자. 정말 오랜만에 경포 해변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