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아트월드 조각 공원과 피노키오와 마리오네트 미술관 관람하고 걸어서 등명낙가사로 갔더니 마침 괘방산에서 패러글라이딩이 날고 있다.
아이들 어렸을 때 가족 여행 길에 등명낙가사를 세 번인가 들린 적이 있는데 싸가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하긴 유치원, 초딩이 때니까.
등명낙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이 창건하여 수다사라 하였다. 자장이 이 절에 머무를 때, 꿈속에서 중국 오대산의 북대에서 보았던 스님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저 큰 소나무 밑에서 꼭 만나자.”고 하여 이튿날 그 자리에 갔더니 그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의 전쟁으로 소실된 뒤 고려 초기에 중창하여 등명사라 하였다. 현재 절 근처에는 고려성지가 있다. 이 성은 고려시대에 등명사의 중요한 물품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창고를 짓고 성을 쌓았다는 사방 1㎞의 석성이다. 이로 보아 당시의 사찰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등명사는 폐허가 되었다.
원래 등명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지에 1956년 경덕 스님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등명사라 한 것은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볼 때 이 절은 강릉도호부 내에서는 암실의 등화와 같은 위치에 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가 3경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사찰을 중창한 경덕 스님이 1천일 관음기도 끝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이곳은 관세음보살이 계신 보타락가산이라 하여 ‘낙가사’로 사찰명을 정하고 옛 사찰명인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 명명하였다.
처음 조그마한 절을 지은 경덕 스님이 1천일 관음기도 끝에 해수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침술을 점지 받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어 영험을 보였다고 한다. 소문을 듣고 차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스님은 절을 증축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증축해서 현재의 가람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절이 폐사된 이유로는 3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불을 질렀다는 설이며, 둘째와 셋째는 왕실에서 폐사시켰다는 설이다. 왕실에서 폐사시킨 이유 중 하나는 안질에 고생하던 어느 왕이 한 점술가의 말을 믿고 폐사시켰다고 한다. 그 점술가는 왕의 병이 정동쪽에 있는 큰 절에서 쌀 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들어가 용왕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왕의 특사가 함경남도 원산을 거쳐 배편으로 이곳에 와 보니 점술가의 말과 같았으므로 폐사시켰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절이 서울의 정동쪽에 있어 궁중에서 받아야 할 일출을 늘 먼저 받으므로, 정동쪽 등불을 끄면 조선에서 불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주장에 따라 폐사시켰다고 한다.
정 동쪽을 가르키는 나침반
포대화상과 동자승
거북 등에 용이 몇 마리야?
등명 약수는 등명감로약수라고도 불리는데 오백나한을 조성해 봉안한 후 발견된 신비의 약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탄산과 철분이 포함돼 있다. 등명약수는 빈혈과 신경쇠약, 부인병, 성인병에도 효험을 나타내며 이 물로 목욕을 하면 만성피부염과 무좀 등의 피부질환과 류마티스 신경통 등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물 맛이 좋아서 조금 담아올 걸 그랬다.
등명낙가사 부도군
불이문
범종루와 영산전
범종루
영산전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제화가라보살, 미륵보살이 협시
영산전과 극락보전
극락보전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협시
살구나무, 몇 년 전에 갔을 때 전날 비바람이 몹시 몰아쳐 살구가 많이 떨어져서 양동이에 모아 담아 놓은 것이 있어 성한 거 골라 먹으니까 정말 달고 맛있었다. 마침 지나가시던 스님께서 몇 개 따주셔서 가지고 다니다 간식으로 먹었다. 그때 미국 교포 일행이 절에 와서 내가 골라서 먹는 걸 보고 그들도 골라 먹으며 맛있다고 몇 개 먹고 갔는데 영산전 앞에서 다시 만났기에 스님께서 따주신 것과 양동이에 있던 중에 골라 가져온 것을 몇 개 주니까 웬걸, 맛있다며 내가 지고 있는 것을 다 주면 안 되느냐고 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몇 개 더 주긴 했지만, 주지 않아도 되는데 일부러 생각해서 줬더니 사람 욕심이 참 그런 걸 보고 씁쓸했고 베플 가치없는 사람인 것 같아 괜히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 부터 달마도를 그려 판매도 하는데 오늘은 그리시는 분이 안 계신다.
등명사지 오층석탑(유형문화재 제37호) 본래 이와 같은 탑이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군부대의 사격을 받아 그 잔해만 남아 있고, 또 하나는 호국을 위해 절 바로 앞 수중에 세웠는데 언제부터인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이 탑은 은은한 연꽃무늬로 조각된 지대석 위에 2층의 기단과 5층의 탑신을 얹은 것이다. 2층 몸돌에 자물쇠 모양이 선명하게 조각돼 있고 특히 2층 기단부에는 돌자물쇠를 채워 놓았던 관계로 탑 안의 보물이 도굴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왔다. 지붕돌의 귀퉁이가 조금씩 떨어져 나갔고, 탑 남쪽에는 안상이 새겨진 배례석이 놓여 있다. 전설과는 달리 고려 때의 석탑으로 보고 있다.
2층 몸돌에 선명하게 조각된 자물쇠 모양
소림선원
전등서원
절 구경을 하고 내려가면서 등명 약수 한 모금씩 먹고 남한진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거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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