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람이라서 미안했던 날이다. 걷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고 떨쳐낼 수 없었다. 순천 여행을 다녀온 후 하루 쉬고 전에 화의군 묘 앞에서 본 냥이가 생각나 냥이 줄 사료 챙겨 구파발로 향했다. 아파트 앞에 도착해 둘러 봐도 냥이는 보이지 않았고 경비 아저씨께 물어보니 새끼는 얼마 전에 죽고 어미도 요즘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냥이 보러 가봐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 간 것이 후회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챙겨간 사료는 둘레길을 걸을 때 무게가 느껴졌지만, 그 무게는 사료 무게가 아니고 슬픈 마음의 무게이었으리라.
냥이를 봤던 아파트 앞, 오른쪽에 화의군 묘역이다.
화의군 묘역
지난번 날머리를 찍은 진관 생태 다리로 간다.
진관 생태 다리
맞아요. 떼로 몰려 다니며 얼마나 떠들고 다니는 지 익히 잘 알지. 제발 조용히 다니세요.
와 ~ 전망 좋다. 봉우리 이름을 알면 좋으련만,
몇 년 전 진관사 쪽으로 하산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나무가 너무 멋있어 둘러 보고 갔다. 아, 둘레길이 이곳을 지나는구나.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복원 중에 발견된 독립신문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 일부를 비에 새긴 것으로 독립 신문 6종 20점이 태극기에 싸인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 유물은 1919년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항일 운동에 실제 사용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나는 왼쪽 둘레길 효자동 쪽으로 간다.
계단을 내려가고
와 ~ 진관사 방향 길이 참 예쁘다. 저 봉우리가 응봉인가?
나무 다리를 건너니까 넓지는 않지만, 자작나무 숲이 나온다.
보호수 느티 나무
앗!! 누가 나를 이곳에 만들어 놨네. ㅎㅎㅎ
다리 건너 정자 있어 한 컷 찍고 다시 가던 길로 직진
낙엽을 밟으며? 아니, 너무 예뻐서 밟지 않고 옆으로 피해 걷는다.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일까? 색이 참 예쁘다. 잎은 버들잎 같이 생겼는데 뭘가?
후쿠시아
쥔장도 모른다는 꽃
야생화인 용담이 원예종으로 개량되어 요즘 자주 보게 된다.
다육 식물인데 이름은 모르지만 꽃이 앙증맞게 달렸다. 대부분 다육 식물 꽃이 귀엽던데 넌이름이 뭐니?
북한산 둘레길 9구간 마실길은 이름 그대로 마을을 걷는 듯 길이 좋다.
여기 부터 내시묘역길
내시 묘역인가? 개인 소유의 울타리 안으로 살짝 들어가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봤다. 연고가 없이 이렇게 방치되어있어 안타깝다.
골목길이 이름이 화화호호길이라고 되어있는데 주민이 직접 꾸민 길인 것 같아 잠시 안으로 들어가봤다. 지저분한 담이 예쁘게 꽃단장을 했다.
백화사 쪽으로 직진
여기소라는 연못이 있어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북한산성 성곽 축조공사에 많은 장정이 동원되었는데 공사 종사관을 기생이 면회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연못에 빠져 죽었다. 공사를 끝내고 그 관리가 연인이 연못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여기서 죽었는가?’ 하여 ‘여기소’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용출봉과 용혈봉
보호수 200년된 느티나무
왼쪽 용출봉, 가운데 용혈봉
백화사에 잠시 들렸다 간다.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닌 것 같았고 비구니 스님이 주지로 계신다고 한다.
삼성각과 마애삼존불,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내시묘역 구간 중에 이곳은 단풍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아 예쁘다.
경천군 이해룡 사패지 송금비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 일본과의 화평 교섭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여 경천군으로 봉해진 이해룡에게 1614년 광해군이 하사 한 토지의 경계 지역 내의 소나무를 무단으로 침범 혹은 벌목하는 것을 금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송금(松禁)이란 역사적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목재를 확보하기 위하여 소나무의 생장에 적당한 곳을 선정하여 보호하고 벌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일찍이 고려 시대부터 시행되어 조선시대에는 금산(禁山)과 봉산(封山)의 제도가 있어서 소나무 숲의 벌목이 엄하게 다스려졌다.
이 송금비는 그동안 문헌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 임업정책의 실례를 방 증하는 유물로서, 이 비를 통해 조선 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일관되게 시행된, 오 늘날의 자연환경 보존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송금 정책의 일면을 잘 살펴 볼 수 있다. 송금비는 모두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고, 이 비가 송금비로서는 전국적으로 유일한 사례이자 조선시대 임업사에서 중요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2기가 확인된 바 있으나, 현재 2기 중 1기는 소재 확인 중에 있으며 우선 남아 있는 1기부터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단풍 터널이 예뻐서 셀카!!
1967년 3월 25일 유흥억 할아버지께서 학교를 세우는데 앞장서고 공을 남겼기에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한 비
북한산 초등학교
용출봉인가? 가운데가 용혈봉?
왼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백운대 옆에 살짝 보이는 만경대, 그 앞 노적봉이 맞나? 수위실 아저씨가 알려주셨는데 기억이 안 난다.
노란 북한산 초등학교 교문
꼬마 쉼터
북한산 산성 탐방센터
원효봉, 백운대는 원효봉에 가려 살짝 보이고 만경대, 노적봉
화의군 묘역 앞에 있던 길냥이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곳에서 다른 냥이를 만났다. 얼른 배낭을 내려 사료를 좀 주고 가려고 하니까 멈춰 앉아 나를 보고 있다. 사료 한 움큼 꺼내 철망 사이로 넣어주니 눈치도 안 보고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고 나중에 또 와서 먹으라고 여러 번 집어 넣어주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냥아, 너라도 만나서 밥 한 끼 챙겨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미국쑥부쟁이
이곳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쉬고 있기에 나도 잠시 쉬면서 이야기도 하고 간단히 요기하고 간다.
원효봉
원효봉
어린 시절 이런 것이 있으면 아이들 놀이터가 되었는데 이렇게 눕혀 있기도 하고 세워 있기도 하면 너 나할 것 없이 들어가 숨었다.
단풍 사진 찍는 어떤 부부에게 부탁해서 한 컷!!
남을 위해 자기 것을 내 준다는 게 쉽지 않은데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내시묘역길
이 문을 나가면 효자길 시작
농원을 지나자 바로 차도가 나온다.
야 ~ 예쁘다. 차도 많이 안 다니고 하늘엔 구름이 두둥실 가로수는 빨간 옷으로 차려 입고 있으니 눈이 즐겁다. 즐거워.
관세 농원 앞 버스 정거장
둘레길 걷는 사람도 안 보이고 4시 조금 넘고 있어 그냥 관세농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까 망설이는데 어떤 부부가 이곳에 도착한다. 교현리까지 갈 거라며 아직 시간이 이르니까 좀 더 가라며 앞 서 간다. 너무 외져 보여서 망설였는데 나도 그 부부 뒤를 따라 산길로 들어간다.
아짐이 사진을 찍으면서 뒤따라 가니까 늦게 온다며 아저씨 잔소리한다. 그래도 아짐은 그럼 그냥 가냐고? 티격태격 ㅎㅎㅎ
오른쪽 밤골 공원 지킴터 1km 방향으로
작살나무 열매
이제 다 나왔나 보다. 주차해 둔 차들이 보인다.
밤골 공원 지킴터
계속 직진
드디어 차도가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엔 여기부터 출발
밤골 공원 지킴터 방향
효자 2동 버스 정거장에서 가능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가능역 버스 정거장의 벽화를 찍고 오늘 둘레길 걷기를 마무리 했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둘레길 11구간 효자길 → 12구간 충의길 (0) | 2015.11.21 |
---|---|
예술의 전당의 가을 (0) | 2015.11.16 |
순천만 국가 정원 ② (0) | 2015.11.10 |
순천만 국가 정원 ① (0) | 2015.11.10 |
순천 낙안읍성 (0) | 2015.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