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순천 낙안읍성

智美 아줌마 2015. 11. 9. 22:00

용산역에서 06시 55분 출발하여 순천역에 11시 40분 쯤 도착, 역 앞 농협 뒤에 있는 흥덕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농협 오른쪽 길 중앙초교 버스 정거장에서 1시 20분 종점 출발하는 63번 버스를 타고 낙안읍성으로 갔다.(40분 소요) 오래 전 싸가지와 짱구 중딩이 초딩이 때 기차 여행하며 들린 낙안읍성의 기억이 참 좋아서 가끔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이번 여행지를 국가 정원과 낙안읍성으로 정하였다. 이번에 다시 가서 보니까 전에 갔을 때 국밥 파는 장터가 꽤 넓은 곳이 있었는데 이번엔 보이지 않았고 혼자 곳곳을 누비벼 돌다 보니 아이들과 왔을 때가 새록새록 떠올라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다는 생각을 했다.

 

 

 

 

낙안의 기록은 마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낙안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백제 때에는 파지성이라 불렸고, 고려 태조 23년(940)에 비로소 낙안()이라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주변의 여러 고을을 관장한 행정중심지이자 남해안을 지키는 군사요지로 번화했지만 1910년 일제의 행정개편으로 폐지되어 순천군에 편입되었다. 그후 주변의 편리한 도로교통을 따라 새로운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낙안은 중심지 기능을 잃고 말았다.

그런 낙안이 민속마을로 지정된 것은 1983년 낙안읍성 옛터가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면서이다. 낙안읍성마을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민속촌이 아니라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실제 마을이라는 점이 여느 민속 마을과는 다르다. 낙안마을이 낙안읍성마을로 불리는 것은 마을을 둘러싼 성곽 때문인데 대개 성곽이라고 하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나 산기슭에 자리잡은 산성을 떠올리게 되지만, 낙안의 성곽은 산에 의지하지 않고 평지의 마을을 둘러싼 읍성이다.

읍성은 대개 평야지대나 산을 뒤로 끼고 앞으로 평야가 펼쳐진 준평야지대에 세워지며, 지방행정관서가 있는 고을에 축성되게 마련이므로 성안에 민가와 관아가 공존한다. 따라서 행정 및 군사 기능을 갖춘 읍성은 평상시에는 행정 중심지, 유사시에는 방어기능을 갖춘 성곽으로 이용되었다. 읍성은 고려 말에 처음 등장해 조선 초기에 널리 퍼진,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형태의 성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179개 읍성이 기록돼 있는데, 당시 부·목·군·현 등의 행정구역이 330여 개였던 것으로 미뤄보면 조선 초기에는 앞다투어 읍성이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문 낙풍루, 관람 출입문 입장료 4천 원

목화밭

목화꽃

 

 

 

 

임경업  장군 선정비, 전설에 따르면 낙안읍성은 인조 4년(1626)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큰 칼로 낙안마을 뒤에 있는 금전산의 바위들을 내리쳐 하루 만에 쌓았다고 한다. 이는 임경업 장군이 벌인 개축공사가 그의 공적과 뒤섞여 백성들에게 과장되게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든 당시 낙안읍성에 살던 인구가 불과 1,000명 남짓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적은 인원이 어디서 수만 개의 돌을 날라와서 어떻게 이만한 규모의 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자못 놀랍고 기이하기만 하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지금도 임경업 장군의 선정비가 남아 있으며, 마을사람들은 임장군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해마다 정월 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를 지낸다.

 

본래 낙안읍성은 태조 6년(1397)에 흙으로 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쌓으면서 성의 규모가 커졌는데, 『세종실록』에 의하면 당시 “둘레 2,865척, 높이는 9.5척, 여장1)이 420개로 높이가 2.5척, 옹성2) 없이 문이 세 곳이었고, 적대3)는 12개가 계획되었으나 4개가 만들어졌다. 성안에는 우물 2개와 연못 2개가 있었으며, 성밖의 해자4)는 파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문의 보호시설인 옹성이 설치되고, 여장은 모두 붕괴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경업 장군이 하룻밤 만에 석성을 쌓았다는 전설 속에는 지혜로운 임장군 누나의 아우 사랑 이야기가 곁들여 전해오고 있다. 임장군의 누나는 왜구를 물리칠 궁리를 하는 장군이 대견하여 돕고 싶어했다. 누나는 동생에게 성곽을 쌓도록 하고 자신은 낙안 군사들의 군복을 만드는 내기를 제안했다. 누나가 군복을 다 지었는데도 동생이 성을 완성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자 누나는 다 지은 군복의 옷고름을 하나하나 뜯어 다시 달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런데 누나는 동생이 성을 다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끝내 동생의 옷고름만은 달지 않고 남겨두었다고 한다. 동생의 사기를 꺾지 않으려는 누나의 지혜로운 배려가 지금 사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홍살문은  붉은 주칠을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궁궐, 관아, 서원, 향, 능, 묘 등에 설치하여 신성시 되는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객사

객사 마당

 

 

 

 

 

 

 

 

 

 

 

낙민루

 

 

동백나무

 

 

 

 

 

 

곽두형 가옥 담장 너머로 보이는 단풍나무가  멋드러지다.

 

우물이 2개가 있다더니 옛부터 내려오는 우물이 맞나?

 

대장금 세트장

중국 관광객이 한복을 입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난리법석이다. ㅎㅎㅎ

오른쪽으로 가니까 한복 빌려주는 집이 있다. 평상에 앉아 있는 할배는 옆에서 기념 사진 찍고 있는 중국 관광객 일행

 

 

대장금 세트장 왼쪽에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난간 없이 좁고 가파르니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

성곽에 올라가 본 성곽 길

왼쪽 대장금 세트장 앞 건물

저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아름다운 낙안읍성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올라가자. 헥헥

와 ~ 정말 예쁘다. 예전에 아이들과 왔을 때는 늦은 봄이었는데 둥글둥글 초가 지붕과 알록달록 넘 예쁘다.

 

남문 성 밖의 풍경

 

 

서문 쪽으로 간다.

 

서문엔 문이 없고 흔적만 남아 있다.

서문, 저 앞 성곽을 따라 가며 북문 쪽인데 이곳에서는 올라가는 길이 없고 공사 중이라 출입 제한 되어있다.

화장실

 

남문으로 가기 위해 다시 마을 안쪽으로 간다.

연자방아

관람 온 아짐에게 부탁해서 인증 샷하고 나도 그 일행 사진도 찍어줬다.

 

 

 

남문 쌍청루

 

남문 뒤로 나가니까 개울이 있다. 하늘이 개울 물에 얼굴을 비쳐보고 있네. 하늘아, 예쁘다. 예뻐. ㅎㅎㅎ

남문 안으로 들어와 쌍청루로 올라갔다가 이내 마을로 내려온다.

 

 

 

연지

물레방아도 있고

 

성곽 위의 아이들

 

 

옥사 체험장

 

죄인을 가두어 두는 곳. 고대 이집트와 중세 유럽 사회에 감옥 제도가 성행했으며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과 영국의 런던탑이 유명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1년 법률 제 858호에 의거하여 교도소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교도소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징역형이나 금고형 등을 선고받아 복역을 하는 장소를 말한다. 감옥이라고도 한다. 교도소라는 이름은 원래의 형무소가 구치소로 바뀐 뒤에 나온 이름이다.

형벌의 종류로는 참수형(머리를 베는 극형), 사사(사약), 물고(곤장), 능지처참이 있었다. 능지처참은 능지처사라고도 한다. 일단 죄인을 죽인 뒤 그 시체를 머리·왼팔·오른팔·왼다리·오른다리·몸통의 순서로 6개 부분으로 찢어 각지에 보내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는 형벌이다. 중국에서부터 전해진 형벌이며, 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이다. 그뒤 조선 초기에도 시행되었으며, 특히 연산군·광해군 때 많았다. 인조 때 엄히 막았으나 잘 지켜지지 않다가 1894년(고종 31) 완전히 폐지되었다

 

 

 

담장이 예쁜 옥사 체험장

옥사 체험장 옆 집

 

 

마을 구경을 하고 남문 쌍청루로 올라가 성곽 따라 걷는다.

성곽 위에서 본 연지

 

 

남문 밖 허수아비

 

 

 

동문 낙풍루

 

 

 

북문 쪽은 공사 중이라 출입이 안 되어 낙안객사 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낙안 객사 왼쪽 집 뒤의 나무가 예뻐서 한 번 찍고

똑같은 나무가 어찌 저리 정답게 서 있는지 밑둥이를 보니 세월이 느껴진다.

 

 

 

 

남문으로 나가기 전 우마차도 타보고 이제 순천으로 나가자.

 

 

 

 

아, 깜박 잊고 버스 시간을 확인 않고 돌아다니다 된서리 맞았다. 우째 이런 일이, 남문 쪽에서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데 얼레? 버스가 왔네. 설마 저 버스? 막 뛰어갔지만, 4시 30분 종점 출발하는 버스는 이내 출발해 버리고 11월 초 해질 무렵은 왜 그렇게 추운지 6시 종점 출발하는 다음 차가 올 때까지 1시간 반을 덜덜 떨면서 기다렸다. 항상 대중 교통을 이용해 여행을 하기 때문에 늘 차 시간을 확인하고 다니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래서 아까운 시간 허비하고 순천역으로 갔다. 순천 여행 때 묵은 순천역 근처에 있는 지오스파 찜질방에서 여독을 풀고 다음 날 국가 정원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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