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사람이라서 미안했던 날

智美 아줌마 2015. 11. 12. 21:06

오늘 날씨 맑음, 아니 쾌청

요즘 미세 먼지와 반가운 비에 연일 찌뿌둥한 날씨였는데

순천 여행 다녀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은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깨니 하늘이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돌던 둘레길을 이어 돌까?

화의군 묘역 앞의 아파트 주변을 맴돌며 지내는 버림받은 냥이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 냥이 밥 좀 주시라고 부탁 좀 하려고

우리 동네 길냥이들 주던 사료를 여러 날 먹을 수 있는 양을 챙기고 구파발로 향했다.

 

배낭에 들어가지 않아서 전해줄 양으로 손에 들고 갔는데

주변을 살펴봐도 냥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 녀석 어디로 갔지? 새끼들 보살피러 갔나? 하며 두리번거려도 냥이가 보이지 않았다.

 

"저, 아저씨 여기 살던 노란 고양이가 안 보이네요. 새끼도 세 마리 있다고 했는데요."

"새끼 세 마리 다 죽은 거로 아는데요. 어미는 요즘 안 보이더라고요."

"네? 고양이가 안 보인다고요? 누가 데리고 갔나요?"

"모르죠. 요즘 계속 안 보이네요." 그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서 말씀하신다.

 

아, 울컥 눈물이 난다. 그냥 울고 싶어진다.

진작 와 볼걸. 내가 너무 늦게 온 게 후회 되고 내가 사람인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바짓가랑이 옆에 기대앉아서 야옹야옹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행여 잘못되지나 않았는지, 아니 지난번에 같이 봤던 냥이 기른다는 부부가 데리고 갔나?

그럼 새끼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 . .

둘레길로 출발하는 발걸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려온다.

 

1년 전 그 아파트에 살던 주민이 이사하면서 버리고 간 냥이로

아이가 붙임성도 좋고 애교도 많다고 경비 아저씨께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길거리에 내팽개쳐진 신세가 되고는 벌써 두 번째 새끼를 낳은 거라고 했다.

 

사람의 손길로 보살핌을 받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길에 버려져서

새끼까지 낳고 얼마나 무섭고 먹고 사는 게 힘들었을까.

정말 마음 같아서는 냥이를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 심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도 강쥐가 네 마리가 있고

내가 데리고 가도 밴댕이가 다시 길로 내몰고 말 것이니 섣불리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온종일 냥이 줄 사료를 매고 다니면서 어깨가 무거운 것 같이 마음도 무거웠는데

10구간 내시 묘역 길을 걷는 중에 냥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냥아, 이리 와 봐. 맘마 줄 게. 이리 와.

배낭을 내리니까 멀리서 쳐다보고 있기에 얼른 사료 한 움큼 꺼내 철조망 사이로 넣어 주니까

멈칫멈칫하며 다가와 허겁지겁 눈치도 안 보며 먹는다.

 

에효 ~ 가여운 녀석, 너는 어쩌다 이렇게 길에서 살게 되었니?

배는 훌죽해서 먹는 걸 보고 지금 배 채우고 나중에도 와서 먹으라고 여러 번 넣어주고 왔는데

세간에는 냥이 밥 준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인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길냥이들이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얼마나 큰 피해를 주겠는가?

내가 보살피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지 남이 챙긴다고 돌은 던지지 마시라.

그 아이들을 길거리로 내몬 것이 사람이니까. 그 사람을 탓하시라.

 

전에 봤을 때 찍은 냥이, 어두운 시간에 찍은 사진이라 색이 검게 보이지만, 밝은 노랑색의 귀여우면서도 슬퍼 보였던 냥이였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