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발레 공연을 보러 충무 아트홀을 갔다.
여느 공연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공연장 로비에는 사람의 물결이 넘쳐난다.
학창 시절 무용 선생님께서 내가 서양인 체형이라 팔, 다리가 길어 발레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하셨는데
갑자기 사고로 아베가 돌아가셔서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내 욕심을 채울 수 없어 포기하였다.
그때 등록금의 1/2 기분의 가격 2천원 하던 분홍 발레 토슈즈를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니 잊을 수 없다.
엄니는 나의 예능 소질을 키워주시려고 그림이든 무용이든 음악 공부든 하라고 하시며
뒷바라지를 해주시겠다고 하셨지만, 내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마음을 접고 말았다.
내가 발레를 배우면 작품 할 때마다 의상을 사야 하고
그림을 배우려면 에노구(당시 사용했던 그림물감의 일본말)를 푹푹 짜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럼 우리 엄마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텐데, 하는 마음에 하나, 둘 꿈을 접고 말았다.
살면서 늘 아쉬운 부분이고 왜 포기하였나 후회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때는 지금같이 학생이 알바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시절이기도 하였지만,
나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더라면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포기한 것이지 환경 탓만은 아니었다고.
지금은 그런 욕망도 바람도 체념하고 살다 보니 나약해져 열정도 사라졌지만,
그 후 결혼해 살면서 가끔 한 번씩 무언가 손을 움직이고 싶어 가슴이 방망이질하곤 했는데
그럴 때는 밤새워 바느질하든 뭐를 만들든 그려야 했고
이런 배움의 욕망을 알 턱이 없는 밴댕이는 그런 나를 보고 병적이라고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밴댕이에게 그림 공부 다시 하고 싶다고 말을 했더니
여자가 결혼했으면 살림이나 하며 사는 거지, 새삼 무슨 그림 공부냐고 잘난 여자 싫다고 했다.
자격지심에 내가 더 잘난 여자가 되는 게 싫었겠지만, 그래도 많이 서운했고
그 후로는 한 번도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는 스스로 꿈을 찾아 그 길을 갈 수 있게 다방면으로 기회를 많이 주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게 했고 발레를 배우게 했고 바이올린, 피아노 등의 악기도 배우게 했고
수영, 스케이트, 스키 등등 많은 것을 접해보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더라는 것.
싸가지가 저학년일 때 바이올린을 배우는 중에 동급생보다 뛰어난 것을
바이올린 지도 선생님과 합주부 선생님께서 알아보시고 고학년과 함께 공부하게 하셨고
바이올린 지도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키워 보겠다고 욕심을 내셔서 몇 년을 개인 랫슨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바이올린 지도 선생님 어머니께서도 아이를 탐내 하시며 아낌없이 도와주시곤 하셨는데
우리 집이 내가 보증 서준 게 잘못되어 풍비박산되었고
더는 바이올린 개인 랫슨을 받을 수 없게 되어 딸에게도 꿈을 접게 하고 말았다.
설령 그런 여건이 되었더라도 부모가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더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끼니를 걸러서라도 가르쳤을 텐데 밴댕이는 현실적인 사람이기에
아이들에 대한 뒷바라지를 포기하고 한 학년 남은 시점에서 짱구도 전학을 시켜버렸다.
그렇게 꿈을 접어야 했어도 싸가지는 멀티미디어 분야를 전공하여 지금 컴퓨터 일을 하고 있지만,
짱구는 어린 나이에 파란만장(?)하게 여러 분야를 들락거리며 지내다가
이제 대학을 가겠다고 수시 등록을 하고 있다.
참으로 세상사는 게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
본인의 의지만으로 안 되고 부모 의지만으로도 안 된다는 것.
요즘 현실에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으니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놈 비싼 돈 들여 가르칠 필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르치려고 애를 쓰면 아예 학교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은 다음에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나이 조금 더 들어 깨닫게 되면 나중에라도 스스로 하고자 할 날이 오고
그때 그 길을 갈 수 있게 기회는 남겨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훗날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면 이어서 공부할 수 있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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