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태조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

智美 아줌마 2015. 4. 21. 12:00

조선 실록을 뒤적거리다가 눈에 띈 신덕왕후 강씨 능이 정릉이라는 것을 보고 오래 전 싸가지 초딩이 때 현장 학습으로 가 본 적이 있어 다시 찾아가 보았다. 돈암역 6번 출구 아리랑고개 방면에서 1162번을 타고 교수단지 앞에 하차, 주택가로 300m 정도 내려가면 정릉이 있다. 예전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소풍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까 산책로와 곳곳에 쉼터를 만들어 놓아 주민들이 많이 와 있었다.

 

정릉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주택의 꽃들이 참 예쁘다. 뉘집인지는 모르지만 쥔네 가족이 보면 어라? 우리 집이잖아, 하겠지? ㅎㅎㅎ

탑이 오래 된 것 같은데 가정 집에 이런 탑이 있다니 . . .

겹 홍매화

 

자목련

햇빛이 비춰 색이 뿌옇지만 나름대로 묘하게 은은하니 예쁘네.

흰색 수수꽃다리

복사꽃

 

 

정릉은 조선 태조(재위 1392∼1398)의 현비로 방번, 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은 신덕왕후(?~1396) 강씨의 무덤이다. 신덕왕후 강씨는 신의왕후 한씨 사후 정비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신덕왕후에 대한 감정이 좋지않았던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시켰고 능은 묘로 격하되어 일반 무덤과 비슷해졌다. 또한 정릉의 일부 석조물들을 홍수로 유실된 광통교를 다시 세우는 데 갖다 쓰고, 정자각도 없애버렸다.

 

하지만 약 200년 후 1669년(현종 10)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었고,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되었다. 원래 지금의 서울시 중구 정동(주한영국대사관 자리 추정)에 능역이 조성되었으나 다른 왕릉과는 달리 정릉만이 도성 안에 있고, 너무 크고 넓다 하여 도성 밖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이는 태조가 신덕왕후 소생인 여덟째 왕자 방석을 세자로 정한 것에 대한 태종의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처음 능지를 정한 곳은 안암동이었으나 산역을 시작할 때 물이 솟아나와 지금의 정동에 자리를 정하게 되었다. 능이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진 것은 1409년(태종 9)이며, 이것은 오로지 태조가 제8왕자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데 대한 태종의 감정에서였다. 태종은 능을 옮긴 지 한달이 지나자 정자각을 헐고 석물을 모두 묻어 없애고, 광교에 있던 흙다리가 무너지자 십이신상 등의 석물을 실어다 돌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능을 옮긴 뒤 수백 년간 정릉은 왕후의 능이라기보다 주인 없는 무덤에 불과하였다. 1669년(현종 10) 송시열의 계청으로 비로소 종묘에 배향하고 능묘로 봉심하기로 하였으며, 이경석 등의 계청으로 능을 수리하고, 재실을 중건하여 수호군을 정해주기에 이르렀다. 능 관리를 위하여 영 1원과 참봉 1원을 두었다.

 

 

 

 

 

금천교

홍살문

신도(좌)와 어도(우)가 다른 능과 달리 ㄱ자 형태로 꺾어져 있는데 이는 지형적인 요건으로 그리한 것 같다. 왼쪽이 지대가 높은 구릉지이다.

수라간이라고 되어있는데 2014년에 복원된 것 이라고 한다. 아마 재실 복원 때 함께 지은 것 같다.

정자각, 신좌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정자

 

서계, 축관이 축문을 태우기 위해 오르내리는 계단

소전대, 제사가 끝난 후 축문을 태우는 석물

왕은 정자각에서 제사를 지낼 뿐 능에 오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신계와 어계, 신계는 혼령이 오르내리는 계단, 어계는 왕이나 제관 등이 오르내리는 계단

수복방, 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능참봉)

비각

왕비의 일대기가 새겨진 비석

 

 

 

능침 출입 제한 안내 표지판이 설치 되어있다. 다른 능도 마찮가지로 능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데 관람을 원할 경우 문화재청에 신청하든지 관리 사무소에 신청하면 능침으로 올라가서 볼 수 있다. 관람 방법이 바뀌었는지 정릉에는 문화재청 직원과 동행, 관람을 해야 한다.

 

에고 ~ 저 직원 따라 오르려니 숨이 차게 따라 올라간다. 아저씨, 좀 천천히 가요. 헥헥 . . .

계단을 따라 오르니 잉에 도착,곡장 옆으로  능상이 있는 앞으로 간다.

 

신덕왕후는 상산부원군에 추증된 강윤성의 딸로 태어났다. 친가는 고려의 권문세가로서 이성계의 권력 형성과 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고향에서 결혼한 부인인 향처와 서울에서 얻는 새 부인인 경처를 두는 것이 풍습이었다. 신덕왕후는 태조의 경처였는데, 향처인 한씨 부인이 태조가 즉위하기 전인 1391년 세상을 떠났으므로 조선이 개국된 1392년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되었다. 신덕왕후는 태조와의 사이에 방번, 방석 두 아들과 경순공주를 두었으며, 태조가 그녀를 극진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왕자의 난과 함흥차사 등 조선 건국 초기 비극과 연결되는 인물,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의 어느 날,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매우 말라 우물을 찾았다고 한다. 마침 우물가에 있던 아리따운 그 고을의 처자에게 물을 청하였는데, 그녀는 바가지에 물을 뜨더니 버들잎을 띄워 그에게 건네주었다. 태조가 버들잎을 띄운 이유를 묻자 뒷날의 신덕왕후가 된 그 처녀는 “갈증이 심하여 급히 물을 마시다 체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그리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대답을 들은 이성계는 그녀의 갸륵한 마음 씀씀이에 반하여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되었다.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현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에서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도 높다고 하는데 다른 능의 장명등보다 훨씬 크고 문인석 높이는 될 것 같았다.  옆에 서서 사진을 찍어 올 걸 하는 생각이 사진 정리하면서 들었다.

 

 

혼유석, 혼령이 나와서 쉬는 곳인데 다른 능의 혼유석에는 아래 받침 돌 고석이 4개, 또는 5개인데 정릉의 혼유석에는 2개가 받쳐있다. 장명등과 혼유석은 원래 정릉에 있던 것이고 다른 석물들은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다.

 

석마와 문인석, 그리고 망주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는 능릉 보호하는 의미로 설치하고 외부  침입을 경계하 듯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잉 부분의 곡장

 

 

복원 전의 재실 터, 폐허처럼 방치됐다가 1669년에 정비됐고 1900년에 재실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초석만 남기고 1960년대 멸실됐다.

올 3월 복원된 재실,

재실 오른쪽의 소나무

수령 360년 느티나무(2007년 기준)

보는 방향에 따라 나무 품새가 다르다.  오른쪽 소나무 앞에서 보는 느티나무가 너무 멋있고 아름답다.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능제복원 차원에서 2012년 재실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를 통해 1788년에 발간된 춘관통고(春官通考)의 기록과 일치하는 6칸 규모의 재실터와 건물 배치 등 양호한 형태의 유구를 확인했다. 이같은 발굴조사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2012년부터 3년간 정릉 재실의 본채, 제기고, 행랑, 협문(3개소)과 담장 등을 복원했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던 공간으로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제기고, 행랑 등으로 구성 되어있다. 2012년 발굴 조사하여 2014년에 복원하였다.

 

 

 

행랑

 

재실, 제사를 준비하고 왕릉을 관리하는 영과 참봉이 쓰던 건물

 

제기고, 제기를 보관하는 건물

 

병꽃, 잎겨드랑이에 깔때기 모양의 연한 노란색 꽃이 1~2개씩 피는데 적색으로 변한다.

산철쭉

 

능 앞의 바위 언덕

능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는 산책로와 쉼터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능 관람을 마치고 나도 산책로 한 바퀴 돌아본다.

 

 

 

 

나무 뿌리를 울타리 삼아 자라고 있는 철쭉

 

 

 

산책로를 돌다가 정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 앞에 길이 이어져 있어 가보니까 막다른 길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바위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북한산이 조망 되고  산책 나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어 바로 되돌아 나와 정문으로 내려간다.

 

북한산

정문으로 내려 간다.

키가 큰 벚나무들이 여러 나무가 있는데 꽃잎이 거의 다떨어져 바닥에서 누워있다.

커다란 바위 아래 돌단풍이 옹기종기 모여 햇빛을 쪼이고 있다. 어떻게 이곳까지 왔니? 바람 타고 왔니?

 

 

 

와 ~ 예뻐라. 벚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모여있다.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꽃잎이 깨끗하고 분홍빛이 예쁘다.

벚꽃잎을 배경으로 그림자 샷!!하고 이제 신덕왕후 정릉의 능침 사찰 흥천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