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전주 치명자산 성지

智美 아줌마 2014. 12. 27. 15:00

승암사에서 길따라 5분 정도 더 가면 치명자산 성지 입구가 나온다.

 

 치명자산 성지 입구 오른쪽에 몽마르뜨 광장과 쉼터

 

몽마르뜨는 불란서 파리 북동쪽에 있는 표고 130m의 작은 언덕으로 순교의 언덕(mons martyrum)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파리의 초대 주교였던 성인 디오니시오가 이산에서 순교하여 「순교자의 산」이란 뜻으로 「몽 데 마르뜨르」라고 불려 오다가 후에 「몽마르뜨」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1870년 독일과 교전으로 시련을 겪게 된 프랑스 국민들이 거국적으로 성금을 모아 건립(1910년)한 거대한 백악의 아름다운 예수성심 대성당이 정상에 세워져 파리의 명소가 되었지만, 실을 유서깊은 천주교 순교성지요, 파리를 지켜주는 축복인 언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치명자산」또한 「전주의 몽마르뜨」라 부르는 것이리고 한다.

 

 

치명자(순교자)산 성지는 예전에 승암산이라고 불렸던 치명자산은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천주교 순례지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1784년 호남 지역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하고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요한)과 아내 이순이(루갈다)가 신유박해 때 순교하여 산 정상에 묻혀 있는데, 이들 부부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위해 4년 동안 동정을 지키다 순교한 것으로 유명하며 부인 이순이의 세례명을 따 루갈다산이라고도 불린다.

벼랑 끝 십자가를 세운 성지 아래에는 화강암으로 지은 산상성당이 있으며 산비탈을 따라 오르는 골고다 십자가의 길은 최고의 성지 순례길로 꼽힌다.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의미의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야외 음악회와 소풍지로도 사랑 받는 몽마르트르 광장과 신도들이 손수 조성한 기도 꽃길은 조용히 명상하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도 즐겨 찾고 있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서는 전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계단 길로 보통 사람이면 30분 정도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나는 사진 찍으며 올라가다 보니 50분 정도 걸렸다.

 

 

예수님 상, 예수는 B.C. 4경 로마 제국의 식민지 팔레스타인 지방의 갈릴리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예수라는 이름은 헤브라이어로 '하느님(야훼)은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구세주'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은, 예수 탄생 이래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물음이다. 그리스도교도에게는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다.

 

예수가 사용하던 언어인 아람어로 예수는 '예수아(Yeshua)'였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수아(Joshua)를 변형시킨 이름이다. 그리스어로 되어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는 예수의 이름을 'Iesous'로 표기했다. 그리스도교를 불신하는 사람이라도 예수가 역사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으므로 예수에게는 수많은 호칭들이 따라다녔다. 그리스도(메시아), 하나님, 구주, 신의 아들, 선지자, 신의 어린 양, 말씀, 대속자(代贖者), 신의 종 등이 모두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 자신이 스스로를 지칭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도 있다.

치명자산으로 오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과, 성직자 묘지가 있는 길이 있지만 난 십자가의 길로 올라간다.

 

이른 봄에 오면 올라가는 내내 동백 꽃길 따라 올라가게 될 것 같다. 동백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성질 급한 녀석은 벌써 피었다 진 꽃도 있다.

 

피에타 상,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작품 가운데 하나로 원작은 산피에트로 대성당 입구에 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원작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인 25세 때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하였다고 하는데 이곳 치명자산 성지에도 피에타 상을 만들어 놓았다.

 

피에타 상 아래의 바위 구멍은 샘이였던 것 같다. 사진 정리를 바로 하지 않아서 기억이 가물가물 . . .

 

어렸을 때 우리 집 종교가 카톨릭은 아니었는데 우리 집에 이와 비슷하게 생긴 큰 마리아 상이 있었다. 어떻게 우리 집에 있게 되었는지는 너무 어려서 잘 모르지만 내가 예쁘다며 이리 저리 들고 다녔던 게 기억난다.

 

제1처 :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

제2처 : 예수, 십자가 지심

제3처 : 예수, 기진하시어 넘어지심

제4처 : 예수와 성모 서로 만나심

 

제5처 :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

제6처 :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씻어 드림

제7처 : 기력이 쇠하신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심

제8처 : 예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제9처 :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심

 

제10처 : 악당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하였음

제11처 : 악당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

제12처 :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제13처: 제자들이 예수의 성시(聖屍)를 내림

제14처 : 예수, 무덤에 묻히심

 

 

 

 

 

 

 

 

 

치명자산 성지 산상성당은 1987년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6년 2개월만에 합장묘 바로 밑에 완성된 동굴식 성당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큰 아들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상

이순이 루갈다의 옥중서한 문구

 

 

성탄절이 지나고 방문 했더니 아기 예수 인형이 놓여 있다. 이 높은 곳까지 미사 드리러 오는 신도들 정말 대단하다. 하긴 설악산 소청봉에 있는 봉정암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사람에 비하면 높은 것도 아니지만 . . .

 

 

대개 성당에는 십자가의 예수 상이 걸려 있지만, 이곳 성당에는 성 가정 모자와 동정부부로 칭하는 유중철과  그의 아내 이순이가 모자이크 되어있는데 이 모자이크는 유중철 후손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성 가정 모자 상

이순이(루갈다)

유중철(요한)

 

방명록을 쓰는 곳, 난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 패스 ~

 

이런 마리아 상을 보면 어릴 때가 생각이 난다. 우리 집에 있었던 마리아 상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성당이 있었다. 그 성당에는 아주 커다란 고목 나무가 있는데 지금도 큰 가지를 뻗은 채로 잘 살고 있다.

 

오른쪽 계단으로 성당 위로 올라가 본다.

 

 

유항검과 그의 가족 합장묘

벼랑 위의 십자가와 겟세마네의 예수 바위(기적의 바위), 뒤에서 보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라는데 . . .

 묘 뒤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올라가 보니까 동고사로 내려 가는 길이 있고 십자가와 겟세마네 예수 바위 있는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동고사에서 올라오는 길

 

 

시야가 좋지 않지만, 가운데 네모난 건축물이 무형문화유산당, 그 오른쪽 대각선으로 흐르는 전주천과 그 옆에 전주 한옥 마을이 보이고 한옥마을 오른쪽 검은 숲에 오목대가 있다. 그리고무형문화유산전당 아래로 뻗어있는 한벽교 오른쪽에 물길이 꺾이는 곳에 한벽당이 있다.

 

여행 당시, 그곳에 온 주민이 있어 전주 시내 위치를 알려줬는데 생각이 안 난다. 이제 치명자산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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