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봉화 청량산의 청량사

智美 아줌마 2014. 10. 29. 11:31

전날 월영교를 다녀와 안동역 근처에 있는 안동 온천 찜질방에서 여독을 풀고  5시 50분 버스 청량산행 첫차를 타기 위해 5시 30분 조금 넘어 나왔더니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가 왔는데 시골이라서 그런지 첫차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서울엔 첫차에 사람이 가득하여 늘 만원인데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이기도 하지만 기온이 생각보다 낮아 더 썰렁하였다.

 

그렇게 텅 빈 버스를 타고 서너 사람이 타고 내리더니 나중엔 나 혼자 타고 가게 되었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주변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감고 가다 말다 하다 보니 오잉? 저게 뭐야? 안개 속에서도 계곡에 둥근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데 얼른 스마트폰으로 몇 것 찍었지만, 새벽 시간인 데다가 손님도 없으니까 버스가 워낙 빨리 달려서 쓸만한 사진이 없다. 다른 때엔 버스 안에서 찍어도 괜찮은 게 있는데 . . .

 

 맑은 날에는 산행을 하지 않고 이 계곡을 끼고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은 낙동강 줄기로 안동호로 흘러간다.

 

이 바위 봉우리들이 학소대라고 하는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축융봉 산행과 맑은 날의 풍경을 다시 보고 싶다.

 

 

안동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1시간 소요된다고 했는데 새벽 시간이라 50분 정도 걸려 6시 40분쯤 도착했더니 안개는 자욱하지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없지요. 춥기는 왜 그렇게 서러울 정도로 추운지 덜덜덜 떨면서 문 열은 식당이 있나 찾아다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불은 켜졌지만, 문을 연 가게는 보이지 않고 혼자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다니는데 오잉? 문을 연 식당이 있네. "식사 돼요? " 하고 물으니 8시에 산악회 단체 손님 예약이 돼서 그 전에 식사 마치셔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한다. 당근 괜찮지. 아직 1시간은 남았는데, 얼른 된장찌개를 시켜 먹고 몸도 녹였으니 쥔장께서 일러주시는 방향으로  출발한다.

 

버스 종점이 이곳이라 더 가지 않아 여기서부터 입석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버스 노선을 연장하여 입석까지는 운행해야 하지 않을까 쉽다.

공원 주차장과 식당이 있는 이곳에는  청량산 박물관과 농경문화전시관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볼록 거울에서 셀카!!

청량교를 건너서부터 산행 코스를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청량사부터 갔다가 산행을 하기로 일정을 세워서 청량사로 먼저 간다.

청량교 왼쪽 금강대 방향 풍경

청량교 오른쪽 학소대 방향 풍경

다리 끝에 문이 있네. 청량사 일주문이야? 뭐야? 일주문 같지는 않은데 . . .

청량지문과 탐방안내소

 

김생이 경일봉 아래 바위굴에서 글씨공부에 전념한 지 9년 만에 명필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려 하였다. 그 때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길쌈 솜씨와 글씨 솜씨를 겨루어 보자고 제의하였다. 그 처녀는 바로 청량봉녀였다. 김생은 처녀의 제의에 수락하여 굴속에서 불을 끄고 서로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이윽고 불을 켠 뒤 비교해보니 처녀가 짠 천은 한 올도 흐트러짐없이 가지런 하였는데, 김생의 글씨는 그만큼 고르지 못하였다. 이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이 1 년을 더 연마하여 10년을 채운 뒤 명필이되어 세상으로 나갔다고 한다.

 

 

학소대는 청량산 축융봉(845m)에 있다. 청량사 서편 입구인 낙동강변에 자리한다. 도산구곡 중 제 9곡인 청량곡을 일컫는다. 예로부터 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깃들어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강대는 청량산 장인봉(870m)에 있다. 청량산 동구인 낙동강변에 자리한다. 학소대와 더불어 또 하나의 비경이 되고 있다. 금강대 바로 뒤쪽에는 금강굴과 금강암으로 추정되는 암자터가 남아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축융봉으로 바로 간다는데 축융봉에서 청량사와 청량산의 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안개가 낀 날씨지만 그래도 단풍 색이 너무 곱다. 청량산 단풍을 보니까 내장사 단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장사 단풍은 열두 가지 색이고 설악산 단풍은 다섯 가지 색이라고 하더니 이곳 청량사 단풍도 내장사 단풍같이  색이 참 다양하고 빛깔이 넘 곱다.

 

퇴계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청향산 입구에 세운 퇴계선생의 시비,

청량산 단풍 구경하기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 . . 노랫말이 생각나는 돌담 옆의 물레방아

쉼터도 있고 . . .

 

장승네와 물레방아, 장승네와 물레방아 투박한 듯 온유하며 무심한 듯 다정한 봉화 촌사람 투박과 무심은 빼고 온유와 다정만 닮고 접아 집사람 데불고 봉화 땅 청량에 왔네. 요샌 방앗거리도 영 없다며 늘 을씨년스런 물방아 친구도 데불고 왔네. 쫓기는 듯 세상에 지친 길손들에게 여유와 웃음이랑 넘치도록 드리고 인생살이 이야기는 쉬엄 둥글 노래로 하리. 우리 세시 멀어지면 너무 멀어질까 잠결에도 걱정하고 가까이 오면 너무 가까워질까 볼 붉히는 은은한 사랑 이야기도 눈빛으로 들려 들리리. 청량 육육봉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벗하여 세세영영 청량에 살리.

 

 

청량교 탐방 안내소 앞에서 이 길 따라 3km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버스 운행이 안 되서 이 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진이 다 빠진다고들 한다.

단풍 색이 볼 수록 예쁘다. 단풍 구경하며 살방살방 걸어올라 간다.

 

 

푸른 단풍도 예쁘다. 살짝 살짝 붉은 색이 섞인 게 산뜻하다.

 

 

 

 

 

 

 

 

아, 길이 정말 예뻐 멀다 생각 안 하고 올라간다. 그런데 어떤 차가 멈칫멈칫하다가 올라가네. 왜지? 등산로 입구까지 태워주려고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이 길이 그렇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지, 진을 빼는 길인지. 그럴 줄 알았으면 태워 달라고 할걸, ㅎㅎㅎ

 

그것도 잠시 이내 또 단풍에 취해 걷고 또 걷는다.

가끔씩 흐르는 물소리도 들으며 물이 떨어지는 계곡도 보며 . . .

 

 

 

나뭇가지에 거미가 여기 저기 집 한 채씩 만들고 누구를 기다리나? 야, 숨어 있지 말고 나와.

 

 

청량 폭포, 청량 폭포에서 산행을 할 수 있다던데 입구가 어디지? 폭포 건너 쉼터에 여러 사람이 쉬고 있다. 나는 갈 길이 바쁘니 계속 올라간다.

쉼터 앞에서 올라가면 선학봉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장인봉, 오쪽엔 하늘다리와 자란봉, 자소봉, 청량사, 경일봉 등으로 이어진다.

 

 

 

쑥부쟁이

 

청량 폭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가 다시 지도를 보니까 어째 반대 방향으로 온 것 같다. 대부분 지도를 보면 산길은 위쪽으로 올라가게 되어있는데 옆으로 약간 아래 방향으로 치우친 길을 내가 가고 있다. 얼레? 내가 들머리를 잘못 잡고 올라왔나? 아고 ~ 어쩌냐? 1시간 가까이  엉뚱한 길로 왔나 봐. 급한 마음에 내려가는 차를 얻어 타고는 청량사를 가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들은 것 같다고 하니까 우리가 청량사에서 내려오는 길인데요? 이 길 따라 계속 올라가면 청량사예요. 한다.

 

뭐시라고? 이 길이 맞다고? 청량교 탐방 안내소에 내려 들여다 보니까 직원이 나와 있서 상황 설명을 하고 여쭈어 보니 이런 ~ 가던 길이 맞다는 것이었다. 에구 ~ 망했다. 다시 또 올라가야 한다고? 잉잉 관리소 직원 분이 올라가는 차를 얻어 타고 가라시며 손수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태워주셨는다. 창원에서 왔다는 부부 차였는데 두 해 전에 청량사를 다녀갔다고 하기에 청량사 입구에 도착해 같이 내리면 되겠다 생각했더니 그 사람들도 청량사 입구를 그만 지나치고 오마도 터널을 지나 가며 "이상하다. 터널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너무 올라왔나?"

 

뭐냐고? 나만 착각하고 헤매는 것도 모자라 이 사람들까지 헤매는 게 아닌가. "좀 전에 등산로 이정표 있는 곳을 지나쳤는데요. 청량사 다녀 가셨다고 해서 아무 말 안 했는데 아마 그곳이 아닐까 싶네요." 하니 "그래요? 우린 못봤는데요." 한다. 그렇게 차를 돌려 펜션 앞에 서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아까 내가 본 이정표 있는 곳에 입석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거기가 입구라고 알려준다. 아이구야 ~ 오늘 왜들 이러냐? ㅎㅎㅎ

 

 

입석이라는 바위가 길 가운데 우뚝 서있다.

좁은 왕복 1차선 길인데 입석 앞에 차를 세워두면 한 차선을 점령하게 되는 걸 뻔히 알면서 나만 아는 이기주의자들이 주차를 잘 하나 보다.

청량산 산행 시 이곳을 입석 코스라고 한다. 이곳에서 청량사도 가고 산행도 하고 . . .

 

우선 나는 청량사부터 간다.

좁은 산길이지만 노약자도 능히 갈 수 있는 경사도가 아주 낮은 평지 같은 길이다. 1.3km지만 높은 산의 1.3km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 상대 말고 속으로 욕 한 번 하고 치우라는 말이 양심을 찌르게 하는 글이지만, 그래도 양심 불량한 사람 꽤 있지?

이곳 청량사에는 기와에 손수 글을 써서 안내 표지판으로 설치되어있는데 참 좋은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시는 분이야 손품 많이 팔아야겠지만 자연 친화적이고 철 구조물로 설치 하는 것보다 미관상 보기도 좋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 것 같다.

 

왼쪽은 청량사로 가는 길, 오른쪽 윗길은 응진전, 산행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로 나뉘어진다.

이렇게 나무 테크 계단 길도 있고 . . .

 

이런 숲길도 있고 . . .

가끔 바위가 있는 길도 있지만 노약자가 걸어가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왼쪽이 청량사를 품고 있는 연화봉

 

연화봉 왼쪽 중간에 까맣게 보이는 게 나무인가? 멀리서 보니까 갓을 쓴 선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꾼의 집, "약차를 그냥  먹는 집" 이라고 입구에 써있다. 쥔장께서는 달마도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는데 청량산을 찾은 등산객에게 쉼터로 개방해주시며 손수 다린 약차를 먹을 수 있게 준비해 주시고 아기자기한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잠시 머물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오고 가고 아픈 다리 약차 한 잔 그냥 들고 쉬었다 가시구려. " 그래서 나도 들어가 봤다.

 

오래 전에 쓰던 물건들이 많았는데 어떤 방문객이 다음에 다시 와서 자기가 살테니까 팔라고, 가끔 팔라는 사람이 있지만 판매도 안 할뿐더러 다음에 와서 사겠다는 사람치고 다시 와서 사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시는데 그 사람, 그렇게 말씀 하시는데도 같은 말을 또 한디.

 

 

이 보온통에서 약차를 따라 먹으면 되고 먹은 찻잔은 씻어서 아래 사진과 같이 엎어 놓으면 된다.  더 먹어도 된다고 하시며 내가 찻잔을 씻을 때 다른 분의 찻잔도 내가 씻어주니까 남의 것 대신 씻어주는 사람 없었다면서 마음 씀씀이가 고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내 손에 물 묻었으니 그냥 씻어준 것인데, 그래도 그렇지가 않다고 하신다. 나 칭찬 들은 겨? ㅎㅎㅎ

 

약초 잔

 

산꾼의 집 바로 옆에 담 하나 사이를 두고 청량정사가 있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을 건립하기 위해 안동과 봉화의 청량산 두 곳을 염두에 두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청량산을 아끼셨다고 한다. 그의 후학들이 퇴계가 수학하던 곳에 청량정사를 지어 퇴계의 학문을 기렸다고 한다.

 

 

청량정사는 1991년 5월 14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4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에 안동부사를 지낸, 이황의 숙부 송재 이우가 청량산에 건립하였으며 조카인 온계 이해, 이황을 비롯하여 조효연, 오언의를 가르치던 곳이다. 오산당 중건기에 따르면, 이황이 공부하던 곳에 사림들의 합의로 1832년(순조32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정사는 일명 ‘오산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오산’은 중국 송 주자의 시 구절 ‘명명직조오가로’에서 따온 것으로 ‘우리집 산’이라는 뜻이면서 ‘유가의 산’이란 뜻도 내포하는 것이다.

 

왼쪽 해우소와 설선당

 

알록달록 단풍 빛깔에 질세라 국화가 노랗게 피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래, 너도 보고 갈게.

손 씻을 때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씻어라. 설마 혼자 물 항아리에 손 넣고 씻는 사람이 있는 겨? 청량산 장승할배가 사람같지도 않다고 하실 걸.

설선당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로 법당은 지방유형문화재 47호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보존되어 있다. 이 청량사는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이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이다. 본시 매우 큰 절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절은 유리보전(경북유형문화재 47)과 응진전만 남은 채 피폐했다.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다.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 지불이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이나 지금은 금칠을 했다.

 

 

 연화봉

 

청량사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뿔이 셋 달린 소의 무덤이 전하여 온다. 옛날, 청량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남민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에서 기르던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뿔이 셋 달렸으며, 차차 자라남에 따라서 크기가 낙타만 하고, 힘이 세며 사나워서 부려먹을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량사 주지가 남민의 집을 찾아가서 절에 시주하도록 권하여 승낙을 받았다.

 

크고 힘세며 고집이 많은 이 뿔이 셋 달린 소는 절에 온 후 차츰 고분고분해져 연대사와 암자의 석축을 쌓는 데 소요되는 돌을 운반하거나 절에서 소비하는 나무를 운반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준공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뿔이 셋 달린 이 소가 죽었으므로 이를 불쌍히 여겨 절 앞에다 묻고 묘를 만들어 주니 그 자리 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나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묘는 현재 청량사 법당의 축대 아래에 있다고 한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란 뜻인데, 약사여래불은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 주는 의왕이다. 유리보전이라는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이 곳의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이다. 이 불상은 협시불인 문수, 지장보살과는 달리 단 한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개금불사를 다시하여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유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에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성취하는 영험이 있다고도 한다.

 

 

 

맨 위 산신각, 아래 심검당,

 

 

범종각은 2층 누각으로 1998년 완공하여 1500만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 등이 있다. 범종은 재료에 따라 금종, 금동종, 동종, 석종, 철종, 토종 등 다양하게 나누고 있으나,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의 고통을 멈추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법고는 부처의 설법을 법고에 비유하는데, 북소리가 널리 퍼지는 것과 같이 설법이 널리 퍼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목어는 수중 중생의 고통을 쉬게하기 위해 씌여지는 의미도 있지만, 물고기가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정진하는 사람들은 잠에 취해서는 안된다는 경종을 알리기 위함의 뜻도 있다. 운판은 청동에 구름처럼 새긴 것을 매달고 조석예불 때 치는 것인데 이것은 허공 세계에 사는 중생의 힘든 꿈을 쉬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 이 네가지를 불교에서는 '사물'이라하여 불가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불구이다.

 

금탑봉은 탑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응진전이 있다.

 

지현스님(주지스님)이 이곳에 왔을 때 불상이 비를 맞고 있었다고 한다. 비 맞던 불상 안에서 “훗날 인연 있는 승려가 제 자리에 모셔라”라는 글귀와 사리 5과가 나왔다고 한다. 지현스님의 정성으로 폐사 직전이었던 사찰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이세택이라는 사람이 쓴 “청량지”에 따라 사리는 모든 봉우리의 기가 모이는 본전 앞 사자목에 5층탑을 세우고 밤이면 불을 밝혀 사람에게 길을 안내 해준다고 한다.

 

5층 석탑

 

 

 

 

이제 산꾼의 집 옆에 나있는 길로 올라가 응진전으로 간다.

 

 

 

 

왼쪽 연화봉, 오른쪽 정상에 뽀족 올라온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연화봉

 

어풍대에서 본 청량사, 금탑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어풍대는 내청량과 외청량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청량지'의 기록에 따르면, 열어구 (고대 중국의 인물)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금탑봉 중층에는 어풍대와 함께 치원대, 풍혈대, 요초대, 경유대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 대에서는 기암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연꽃 같은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듯한 청량사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어풍대에서 조망을 하고 응진전으로 간다.

 

 

 

금탑봉 중층에는 신라 말 대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에 관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와 관련한 유적으로는 치원암, 총명수, 풍혈대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신 뒤 더욱 총명하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길 절벽이 상하로 우뚝 솟은 곳에서 물이 일정하게 솟아나는데, 가뭄이나 장마에 상관없이 그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이 물을 마시면 지혜와 총명이 충만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과거 준비를 하던 선비들은 물론,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총명수 바로 옆은 최치원의 이름을 딴 치원암이 있던 곳이다.

 

아정표 방향으로 올라가면 바위 구멍이 있다는데 올라가는 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올라가지 않았다.

 

 

 

응진전은 금탑봉 중간 절벽 동풍석 아래에 위치한 청량사의 부속 건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맞배 기와집으로 내부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16나한과 더불어 법당 내부에 공민황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의 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공민왕의 청량산 몽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앞뒤가 모두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뒤쪽 절벽 위에는 동풍석이, 요사체 옆의 절벽 사이에는 감로수가 흘러 나온다. 또한 법당 앞에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주세붕(1455∼1554)은 자신의 자를 따서 경유대라 이름하였다.

 

 

 

어느 스님이 좋은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자리를 찾았지만 바위 하나를 치워야했다. 그래서 힘센 스님이 절벽 아래로 그 바위를 밀어버렸는데, 다음날 보니 떨어진 바위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절을 짓지 않았다. 현재 응진전 뒤 높은 절벽 위에 바위가 버티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세게 밀어도 건들거리지만, 한 사람이 밀어도 건들거리고 바람이 불어도 건들거릴 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동풍석'이라 부른다.

 

 

 

수국

응진전 옆 이 문으로 들어가면 감로수나오는 샘이 있는 깊지 않은 굴이 있다.

감로수가 나오는 샘

응진전 옆의 요사채

 응진전 앞에서 본 축융봉 줄기, 어라? 건너 가운데 평평한 곳에 정자가 보이네. 당겨서 보니까 정자가 맞다.

 

밀성대, 공민왕산성 동문지 우측을 따라 올라가며 양벽이 끊어지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와서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 명령을 어긴 죄인을 절벽 끝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전설이있으며 밀성대 주위로는 성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건너 축융봉에서 본 청량사와 오른쪽 응진전(가져온 자료 사진)

응진전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간다.

고운대에서 본 청량사

 

 

 

범종각에서 안심당으로 내려가는 길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고개 숙인 얼굴의 뺨에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대어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의 반가사유상이다.

이러한 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러한 상을 태자사유상이라고 하였다. 반가사유상은 이 상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형식으로도 만들어졌다.


입가에 머금은 생기있는 미소, 살아 숨쉬는 듯한 얼굴 표정, 부드럽고 유려한 옷주름, 상체와 하체의 완벽한 조화, 손과 발의 섬세하고

미묘한 움직임 등 모든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된 동양불교 조각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원래의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7세기 전반)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고 있으며, 국보 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량사를 오르면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안심당이 있다. 안심당은 사찰 내의 전통 다원으로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추어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호 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 청량산인"

 

 

어린 잎이 연꽃을 닮았다 하여 연화바위솔

기와와 쑥부쟁이

 

이제 청량사에서  선학정 입구로 내려가는 길

내려가면서 돌아 본 길

 

선학정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가파르게 포장된 길이다. 산꾼의 집 쥔장께서 사찰 순례 오는 사람들을 힘들게 이 길로 안내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더니 이 길은 가파르지만 포장되어 있고 거리도 800m로 짧다. 그런데 입석에서 청량사로 오게 되면 포장 도로에 비해 다소 거친 길을 걸어와야 하고 거리도 1.3km라 더 길다. 게다가 입석에는 대형 버스를 주차하기 어렵지만, 이곳 선학정에는 주차 공간이 더 넓다. 선택은 알아서 . . .

 

 

 

단풍 길이 예뻐서 산행하지 않는 사람은 걸어 볼만도 하다.

 

 

 

어라? 일주문이 이곳에 있네.

청량산 청량사 일주문

 

선학정,

 

 

어둡기 전에 무사히 잘 내려왔는데 버스 종점까지 또 걸어갈 생각을 하니까 아득하다.  걸어내려가는데 점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안동 나가는 버스가 6시 40분이 막차인데 벌써 6시가 되가고 있으니 계속 걸어내려가게 되면 막차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려가는 차를 얻어 타기로 하고 어떤 차를 세웠더니 흔쾌히 태워주셨는데 아래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 일행 만나는 곳까지밖에 못 태워줄 것 같다고 했지만, 다행히 일행들이 청량교 탐방 안내소 못 미쳐 모여있어서 덕분에 여유가 있게 내려올 수 있었다.

 

안개는 걷혔지만 어둠이 찾아오고 있어 학소대 사진을 찍기에는 어둡다.

학소대

금강대 방향

학소대, 공원 주차장 방향

 

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6시가 약간 넘고 있었고 다른 산객들 서너 분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점점 까만 밤으로 가니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안동 나가야 저녁 먹고 찜질방에 갈 일밖에 없지만 타지의 길에서 어둠을 맞으니 심리적으로 약간 불안해져서 그런 것 같다. 그럼 빨리 안동 밝은 동네로 나가야지, 하고 히치하이킹을 할까 하고 청량교 쪽으로 약간 올라가 지나가는 차를 세웠을 때 태워주면 타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 올 때까지 기다리자 했는데 마침 영양 본가에서 안동 집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그 차에 오르니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 가끔 여행 중에 차를 얻어 타면 쥔장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차는 거의 없다. 쥔장이 좋아한다는 외국 소프라노 성악가의 노래였는데  이름이 귀에 익지 않아 잊어버렸지만, 나도 학창 시절 클래식 음악 공부를 조금 한 터라 서로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가다 보니 안동 시내로 들어가게 되었다.

 

모처럼 대화가 되는 사람을 만났다며 다른 일정이 없으면 안동 별미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초면에 차 얻어 타고 온 건만으로도 고마운데 저녁 대접까지라니? 괜찮다고 사양하고 안동 구시장에 있는 맘모스 빵집에 들렀다 찜질방에 간다고 했더니 식사하고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안동 식혜와 안동 간고등어가 나오는 헛제삿밥을 사줘서 먹고 맘모스 빵집에 가서 답례로 내 빵을 사면서 그분께도 빵 좀 사드리려고 했더니 이런 ~ 빵이 대부분이 다 팔리고 없다.

 

그래서 남아 있는 빵 중에서 내일 청송 주산지 가서 먹을 빵 두 개를 사고  그분께는 여러 개씩 들어있는 제품 두 개를 사드리고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니 다음에 또 안동 여행 오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 준다. 공연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며 안동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면 시간을 내서 가이드 해주시겠단다. 나는 동행인이 있으면 불편해서 늘 혼자 다니는 편인데 미리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도 신경 쓰여 하는 성격이라 예의 상 알았다고 하고 나는 직선 거리에 있는 어제 묵었던 찜질방으로 가고 그분은 주차된 곳으로 가고 그렇게 여행 중에 만남이 스쳐 간 인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