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닭실마을 석천정사 석천 계곡

智美 아줌마 2014. 10. 28. 13:30

청암정과 충재 박물관을 둘러 보고 석천정사, 석천 계곡으로 간다. 마을로 들어올 때 어떤 친절한 분이 위치를 가르쳐주며 꼭 가보라고 했다.

석천정사까지 500m, 살방살방 호젓한 길을 걸어간다. 조용하니 넘 좋다. 청암정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와서 한바탕 북새통을 치고 간 후다.

오예 ~ 나무들이 거울 안에 제대로 담겼네. 셀카 놀이도 하고 . . .ㅎㅎㅎ

 

길 가운데 나무가 참 예쁘다. 농사 일 하다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석천 계곡

왼쪽 길로 쭉 들어가면 되는데 나무들이 참 예쁘다.

그래서 당겨서 한 컷 더 찍고 . . .

조금 더 들어가니까 이런 숲길이 나오는데 위험 하니까 여자 혼자 다니지 말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럼 나는 어쩌라고?

 

총재 공께서는 평소에 깊은 뜻을 품었으나 좋고 나쁜 운수가 번개처럼 지나가 버렸네. 지금 정자가 기이한 바위 위에 서 있는데 못에서 피고 있는 연꽃은 옛 모습일세. 가득하게 보이는 경치는 본래의 즐거움이요. 뜰에 자란 아름다운 난초가 남긴 바람이 향기로와 나 같은 사람은 공의 거두어줌에 힘입어서 흰머리 날리며 글을 읊으니 그 회포 한이 없어라.  청암정 제영시 2수 중 1수 / 퇴계 이황

 

 

머나먼 국경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새해에는 변방의 사막에서 봄에 또 근심하네. 눈 쌓인 산을 서로 보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형 생각과 동생 생각에 흘린 눈물 수건에 가득하네. 삭주영회 / 총재 권벌

 

 

작은 가마가 지날 수 있는 시내가 길가에 글 읽는 정사가 물과 구름 사이에 보이네. 깊은 가을밤에 내린 비바람과 뿌연 서리에 시월의 공기는 차갑구나. 나뭇잎은 떨어져 바위틈에 빽빽하고 이끼는 바위틈에 두껍게 끼여 아롱졌다. 백세토록 조상께서 거니시던 이곳에 친한 벗들 얼마나 오갔던고. 제석천정가 / 청암 권동보

 

주의 문구를 봐서인지 오고 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까 조금은 긴장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유로움에 마음은 행복 만땅이다.

드디어 계곡이 나왔다. 내성천으로 가는 석천 계곡이다.

어라? 스님 두 분이 나가시네. 스님의 뒷모습을 담으면 참 좋다. 저 스님들을 뵈니 울진 불영사 계곡에서 뵌 스님 뒷 모습이 생각나네.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인지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문이 잠궈져 있어 아쉽게도 겉만 보고 간다.

 

석천정사는 1526년 건립된 정사로 권벌 선생의 큰아들 권동보가 지었는데 난간이 있는 넓은 마루는 대략 100여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서, 과거에는 여름철 학문이나 모임에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전해져 온다.  권동보는 1547년(명종 2) 양재역벽서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아버지가 삭주로 귀양가 1년 만에 죽자, 관직을 버리고 20년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 돌아와 전원의 계곡 위에 선조의 뜻을 계승한 석천정사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앞에 작은 건물이 산수료,  뒤에 건물이 수명루, 산수료는 방 2개와 부엌이 딸린 살림집이다.

 

 

정자와 정사의 차이는 정자는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  되어 있는 집이고 정사는 부엌이 딸려 거처할 수 있는 별서와 같은 집이다.

 

석천정사(石泉精舍) 현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송재 송일중의 글씨이며, 수명루(水明樓 :물맑은 행실과 덕행을 후대에 퍼트림)와 계산함휘(溪山含輝 : 시내와 산이 빛을 머금음), 장구파복(杖屨播馥 : 지팡이와 짚신 즉 자취가 후대에 향기를 퍼트림)은 철종때 경상도 관찰사와 공조판서를 지낸 송벽의 글씨이다.

 

 

 

 

 

석천 계곡에는 비룡폭(飛龍 瀑), 백석량(白石 梁), 사자석(寫字 石), 청하굴(靑霞 窟), 권충정공 산수구장(權忠定公 山水舊庄), 청하동천(靑霞 洞天), 팔자암 (八字 巖)등이 새겨져있고 정사 안에는 석천정(石泉亭)이란 암각이 새겨져 있다는데 제대로 살펴 안 본 것이 아쉽다.

 

 

'청하동천'(靑霞洞天)이라는 붉은 초서체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도깨비들이 너무 설쳐 선비들이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자 권두웅 명필이 이 글씨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해 쫓아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신기하게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징검다리도 건너 볼 걸 그랬다.

오른쪽에 봉화 건국 운동 기념비, 은행나무 길이 참 예쁘다. 바람이 불면 마구 휘날리는데 그만 떨어져라.

 

 

저 정자에 올라가서 간식도 먹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내가 선비인양 잠시 쉬었다 간다.

 

 

아, 진짜 예쁘다. 무슨 나무일까?

뭐니? 뭐니?  이 가을에 진달래야? 철쭉이야?

 

사람도 없고 조용하니 산책하기 넘 좋다. 석천 계곡이 나만의 계곡이 되었다.

 

1380년 충재 권벌 선생의 선조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마을 모양아 풍수지리상 금계포란형의 지세라 닭실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왼쪽에 삼계 서원이 있어 들리려고 했는데 119 안전센터 직원이 볼 거 없을 거라고 해서 들리지 않았는데 가볼 걸 그랬다. 기회가 되면 달실마을에  또 가서 들려 봐야겠다. 생각보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