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신의 계시로 창건된 설악산 신흥사

智美 아줌마 2014. 10. 9. 14:30

비룡폭포와 육담폭포 출렁다리를 보고 비룡교 앞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신흥사로 간다. 나는 신흥사를 여러번 둘러봤지만 딸은 어렸을 때 가족 여행에서 가봤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가보기로 한다.

 

설악산 신흥사 일주문

 

신흥사 통일대불은 1987년 착공하여 10년 공사 끝에 완성 청동좌불로 높이는 14.6m, 높이만도 4.3m에 달하는 좌대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16나한상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또 높이 17.5m, 폭 14m의 광배는 4백89개의 인조큐빅으로 장식돼 있다.

 

 

통일대불 뒤로 가면 지하에 법당이 만들어져 있는데 내원 법당으로 천수 천안 관세음 보살이 모셔져 있다.

통일대불 좌대

통일대불 좌대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법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내원 법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내원법당의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

 

이제 신흥사 전각을 보러 간다.

 

신흥사는 653년(신라 진덕여왕 7) 자장 율사가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사리탑을 세워 향성사라고 불렀다. 자장이 637년(선덕여왕 6) 왕명으로 당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하여 건립한 사찰이라고도 전한다. 이 향성사는 701년(효소왕 10) 수천칸의 대사찰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후 의상 대사가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 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라고 하였다. 선정사는 1000년간 번창했는데, 조선 중기 1644년(인조 22)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선정사가 불타자 많은 승려가 떠났으나 운서, 연옥, 혜원 세 승려만은 유서 깊은 절이 폐허가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재건을 논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향성사 옛터 뒤의 소림암으로부터 신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삼재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은 선정사 때 봉안된 것으로 의상이 직접 조성한 3불상의 하나이다. 당시 지은 법당·대웅전·명부전·보제루·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한다.

 

향성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43호), 향성사는 절터 모습을 알아볼 수 없지만 이를 입증하는 탑이 하나 남아 있는데 바로 향성사지 삼층석탑이다.

 

 

 

사천왕문은 1811년(순조 11)에 주운 스님과, 철수 스님이 처음 세웠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사천왕문은 1972년 성준 스님이 중건한 것이다

용을 잡고 있는 남방증장천, 탑을 받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

비파를 연주하는 서방 광목천, 칼을 든 동방 지국천

스님께서 수행을 하시는 법검당

 

보제루는1985년 9월 13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신흥사의 본전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직사각형의 큰 누각으로, 조선 후기 1770년(영조 46)에 세워졌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장대석으로 쌓은 2단의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하층 중앙 칸은 신흥사의 본전인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가 되고, 상층은 다락으로 되어 있다. 본래 사찰의 본전 앞에 세우는 누각은 각종 법회를 거행하던 곳이었으며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현재는 그 기능이 사라졌으며 세살의 분합문을 달았다. 건물 앞에는 직경 6척의 비자나무로 만든 통에 법고와 목어가 보존되어 있다.

 

극락보전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신흥사의 본전으로 1648년(인조 25)에 창건하였으며 1750년(영조 26)과 1821년(순조 21)에 중수하였고, 1977년에 보수하였다. 전면 계단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양끝에 용두를 새겼고, 옆면에 귀면상을 조각하였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조선시대 18세기의 건축물로 2011년 12월 16일 강원도의 유형문화재 제166호로 지정되었다.

산신각

조사전

적묵당

 

부도

신흥사를 둘러봤으니 이제 마지막 코스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으로 간다.

 

조선 인조 22년(1644)에 신흥사가 중건된 이후 역대 고승들의 부도를 단일 장소에 조성한 전형적인 부도군으로, 19개의 부도가 있다. 대원당탑 등 3개가 원당 모양의 부도이며, 성곡당탑 등 16개가 석종 모양인데,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이 12개이다. 부도와 함께 신흥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신흥사사적비를 비롯하여 강세황이 쓴 용암당대선사비 등 6개의 비석이 있는데, 1764년부터 182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매표소 건너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