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귀빠진날이다.
점점 나이 듦에 생일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아베가 마지막으로 생일을 챙겨 주시고 먼 여행을 떠나셨을 때
그 후로 난, 아베가 없는 생일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 생일 없는 아이로 살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이맘때, 학교 갔다 집에 오니까 맛있는 음식 냄새가 집안에 가득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계시는 엄니한테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
"오늘이 우리 딸 귀빠진날이지. 그런데 생일인 것 몰랐어? "
"엄마, 오늘이 내 생일이야? 내 생일이라서 맛있는 음식 많이 만드는 거야? "
"그래, 아버지가 우리 작은 딸 생일이라고 맛있는 것 많이 해주라고 하셨지. "
그렇게 생일을 챙겨 주시고 몇 달 지나 아베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고
그 후부터 돌아오는 생일이면 엄니는 미역국을 끓여 주시며 꼭꼭 챙겨 주셨지만
난 내 생일을 챙기거나 기억하지 않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의 생일을 챙기며 살았지만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우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내 생일을 챙기지 않아서인지
가족들도 생일을 꼭꼭 챙겨 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성장해 나이를 먹으니
아이들 스스로 기억해뒀다가 엄마 생일을 챙겨 준다.
그래, 내 생일을 챙기지 않고 살아왔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예의를 가르치는 의미에서도
아이들에게 부모 생일 정도는 챙기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정이 많으셨던 우리 부모님, 감기 몸살이라도 걸리면 입 짧은 내가 더 먹지 못한다고
울 아베께서 손수 과일 통조림 사다 먹여주시고 라면도 끓여 주시곤 하셨다.
자상하셨던 울 아베, 자전거 태우고 과자 사러 가고, 낚시도 자주 데리고 가시고,
영화도 가끔 보여주시고, 미대 보내 훌륭한 화가 만드시겠다고 하셨는데
아베와 함께 내 꿈도 사라지고 그리움만 가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흔히 엄마에게는 아들보다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도 살아보니까 내가 울 엄니한테 마음 쓰던 것과 내 딸이 이 엄마한테 마음 쓰는 것을 보면서
그 말에 대해 정말 공감하며 살지만 그렇다고 딸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더라.
딸이라고 아들이라고 다 그렇거나 그렇지 않다기보다 됨됨이나 성격 차이로
부모 마음 더 잘 헤아려 주는 자식이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이 우리 생일을 챙겨 주셨듯이 우리 아이들이 우리 생일을 챙겨 주는 것 같이
우리도 우리 부모님의 생신 챙기는 것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부모님 입장이 세월 더 지난 후엔 우리의 입장이 되는 것이고
지금의 우리 입장이 내 아이들의 입장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부모님은 언제 우리 곁을 떠나실지 모르고 가신 후에는 살아실제 잘 해드리지 못해
후회하지 않는 자식이 없으니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떠나신 후에 그 울타리가 없어졌을 때에서야 우리는 후회하고 가슴을 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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