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부여 구드래 조각 공원

智美 아줌마 2013. 7. 18. 11:43

부여에서 세번째 여행지는 구드래 조각공원이다. 정림사지에서 도보로 두리번 거리며 쉬엄쉬엄 걸어가니 20분 정도 걸려 구드래 조각공원에 도착했다. 궁남지에서도 정림사지에서도 여유만만 너무 헤작거렸는지 벌써 5시가 되었다. 얼른 둘러 보고 다시 부여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7시 20분 막차 타고 남부 터미널로 올라가야 한다. 구드래 조각 공원 길로 진입하기 전 보건소 사거리에는 성왕의 동상이 있다.

 

 

성왕의 동상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왕이 의자에 앉아있다는 극히 단순한 사실만 가지고 의자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동상은 백제의 26대 국왕인 성왕의 동상이다. 수많은 백제의 왕중에서 굳이 성왕을 세운 이유는 바로 성왕이 백제의 도읍을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했기 때문이다.   

 

성왕은 538년 봄에 수도를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다. 불교를 진흥했으며 중국의 남조와 활발하게 교류하여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고구려의 내정이 불안한 틈을 타서 한강 유역을 부분적으로 수복, 나중에 신라에게 다시 뺏기긴 했지만 이러한 업적을 가진 성왕을 부여 로터리에 세워 백제인의 긍지를 갖도록 하고자 성왕의 동상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부소산 서쪽 기슭을 흐르는 백마강에 이웃해 있다. 백마강과 어우러진 자연공원으로, 1983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1996~1997년에 조각예술품을 설치하여 조각공원으로 새단장하였다.

구드래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고유지명이다. 공원 아래 나루터는 삼국시대에 외국 사신들이 부소산성을 드나들던 유서깊은 포구로 지금은 유람선이 다니고 있다. 입장료는 없고 하루 24시간 문을 열며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되고 공원 옆 부소산 기슭에 낙화암·고란사가 있다.

사랑의 대화 . 김지택作

갈등의 史 . 양현조作

백가제해 . 김영학作

 

인간의 지평 . 김석우作

백가제해 . 김영학作

愛 . 윤영자作

가상 . 이장림作

저 높은 곳 . 정찬국作

모정 . 최국병作

 

평화의 문 . 페트리코 부록(Federco Brook)

 

영겁회귀 . 김윤화作

 

여심 . 고응곤作

 

만남과 사랑과 영원의 만다라 . Alberto Carneiro알베르토 카르네이루作

백팔번뇌 . 윤황식作

 

 

아리랑-해는 동에서 뜬다 . 박찬갑作 

두개의 기둥과 꿈 . Julia Farjat줄리아 파쟈트作

아시아의 연합 . Chu Ko作

거북이들이 말해 주었다 . Mark Brusse마르크 브뤼서作

 

 

섭리 . 황교영作

부여팔경 승람비

 

호석

 

흰색의 터 . 임동식作 

역사의 문 . 김용남作

Mauro Stacciouli-Unity 마로우 스타치올리-유니티

삼정유스호스텔이 원 안으로 보인다. 이곳에 유스호스텔이 있네.

 

구드래 조각공원 둘러 보고 안으로 쭉 들어가 이 뚝방 계단으로 올라가면  구드래 나루, 배 타는데는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되는데 배를 타고 낙화암, 고란사를 들려 부소산성까지 갈 수 있지만 난  예전에 들려 본 곳으로 그냥 구드래 조각공원을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로 간다.

 

구드래라는 이름은 '큰 나라'라는 말이라는 설도 있으며 백제에서 왕이나 왕족을 칭하던 말인 '어라하'라는 말에 큰 이라는 뜻인 '구'가 결합하여 만들어 졌다는 설도 있다. 백제의 사비성의 나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에서 백제를 부르는 말이 '구다라' 인데 이 구드래 나루의 이름에서 유래 했다는 설도 있다.

 

멀리 빨간 지붕의 금강 살리기 5공구(부여지구) 사업 안내판이 보인다.

 

 

도라지 꽃

다 둘러 보는데 1시간이면 된다. 이제 부여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서울로 go go go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