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개별꽃아, 미안해.

智美 아줌마 2014. 6. 5. 11:39
봄이다. 겨우내 몸 상태가 안 좋아 방콕 칩거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기지개를 켜고 산행을 했다.
무리하지 말고 몸풀기 정도로 다녀오자 하고 
우이동  방학 능선으로 도봉산 원통사까지 다녀오고
두번째로 우이동에서 출발하는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서
대동문까지 올라갔다가 소귀천 계곡으로 내려왔다.
이른 봄? 아니지. 나한테는 이른 봄이지만 봄은 벌써 가운데 와 있는데
나는 자꾸 겨울의 발목을 잡고 있어 봄이 언제 왔는지도 모르고
아직 겨울이야, 겨울일 걸?
그런데 북한산에는 연둣빛 옷을 갈아 입고 산철쭉도 벌써 지고 있는 게 아닌가?
뭐여? 이 맘때 쯤이면 철쭉이 만개 되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을텐데
벌써 지고 있다니 . . .
지구의 온난화로 계절도 뒤죽박죽 나무들도 갈팡질팡
꽃들도 눈치 보며 따라 피고 지고 . . .
그런 것도 모르고 난 봄꽃들이 피었을까? 했으니
참 세월에 뒷걸음을 치며 지냈다.
그렇게 산행을 하며 대동문에서 잠시 쉬고 소귀천으로 내려 오면서
앙증맞게 핀 개별꽃이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나무 그루터기 옆에 핀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해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작아 콩알만하다고나 할까?
너는 왜 혼자 있니? 귀여운 녀석 . . .
우리 집으로 갈래? 그래, 같이 가자. 하고는
녀석을 한 움큼 흙과 함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마, 그 아인 내가 듣지 못했어도 싫다고 했을텐데 . . .
아이들이 보더니 "엄마, 너무 신기해. 이쁘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꽃이라 신기해 했고
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잘 데리고 왔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날이 갈 수록 녀석은 꽃방울을 맺어도
꽃을 피우지 않고 몸살을 앓는 것 같아
괜히 널 데리고 와서 아프게 하는구나. 정말 미안하다. 
다시 너 있던 곳으로 데려다 줄까? 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그 후 북한산을 가지 않아서 그냥 열심히 물 주며 보살폈다.
다행히 몸 앓이는 이겨내고 가끔 작고 귀여운 꽃을 맺더니
어느 날 자세히 들여다 보니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었던 봉오리에 씨앗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아, 놀라워라. 위대한 탄생이다.
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니 미안했는데
이렇게 잘 견디어내고 씨앗까지 품어주다니 고맙고 미안하다.
내 욕심에 한 행동이 작고 보잘 것 없는 풀일지도 모르지만
자연의 것을 탐내면 안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였고
다시는 이런 못된 짓을 하지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화분을 볼 때마다 두고두고 마음이 불편하다.

행여 씨앗이 다른 곳으로 떨어질까봐 비닐로 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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