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릉에서 제향을 보고 내려오면서 만난 젊은 부부 덕분에 시간 절감하고 편히 안압지 앞에 도착했다. 옛 이름 안압지인 동궁과 월지는 2천 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낮 풍경 사진을 찍고 나와서 월성 발굴지와 석빙고를 둘러 보고 다시 밤 풍경 사진 찍으러 들어갈까 했더니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면 입장료를 또 내야 한다며 먼저 석빙고 쪽을 다녀오라고 한다. 지금 시각이 2시 45분이니까 월성 발굴지와 석빙고를 둘러 보고 와도 괜찮을 것 같아 먼저 석빙고를 찾아간다. 동궁과 월지의 오른쪽 대각선 위치에 있어 이동하기 수월하다.
월성 동쪽 입구에 신라 왕궁 영상관이 있다. 월과 석빙고를 둘러 보고 와서 들어가 보기로 하고 월성과 석빙고부터 보러 가자.
월성 발굴지 입구에는 선덕여왕 촬영지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신라 왕이었으니까 신라 땅 경주에서 촬영을 많이 했겠지.
발굴 복원한 해자,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만든 연못으로 굴강, 외호, 성호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이 언덕을 넘으면 바로 월성 발굴지가 나온다.
월성 발굴지다. 조선시대에는 왕궁과 사찰 외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든 노역으로 인해 가공석을 사용하지 못해서 관청이나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나 개인의 집을 지을 때도 이곳 월성에서 필요한 석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한다. 신라 멸망으로 인해 월성은 이렇게 파괴되어 어느 건물, 누구 집의 주춧돌과 장식돌이 되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아, 슬프다.
이렇게 사각으로 땅을 파서 발굴 조사하는 기법을 시굴갱, 트랜치 기법이라고 하는데 유적이 넓게 분포할 때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올라가서 둘러볼 수 있는 관람대가 있다.
월성은 101년(파사왕 이사금 22)에 축조된 신라의 왕성으로 반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반월성, 신월성이라고도 한다. 둘레 2,400m의 토석 혼축으로 남쪽은 남천을 끼고 자연지세를 이용해서 반월형으로 쌓았다. 475(자비마립간 18)~487년(소지마립간 9)에 궁성을 명활성으로 옮긴 시기를 제외하면 줄곧 신라의 왕들이 거처하던 곳이었다. 사적 제16호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월성을 중심으로 한 궁성의 문은 남문,귀정문, 북문, 인화문, 현덕문, 무평문, 준례문, 임해문 등이 있었고, 누각으로는 월산루, 망덕루, 명학루, 고루 등이 있었다. 또 관청으로는 남당, 조원전, 숭례전, 평의전, 좌사록관, 우사록관, 영각성, 월정당 등이 있었고 왕궁으로는 내성, 임해전, 안압지, 동궁, 동궁만수방, 영창궁, 영명궁, 월지궁,·내황전, 내전, 내정 등이 있었다. 영명궁은 태후의 궁이었고 월지궁은 왕태자의 궁이었다. 천존고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전설과 관계가 있는 만파식적이 보관되어 있었다. 삼국유사를 보면 월성터는 원래 충신인 호공의 거주지였는데, BC 19년(박혁거세 39) 석탈해가 금성의 지리를 살펴본 뒤에 가장 좋은 길지로 호공의 집터를 지목하여 거짓 꾀를 부려 호공의 집을 빼앗아 월성을 쌓았다. 이 공으로 석탈해는 남해왕의 맏사위가 되었고, 그 후에 신라 제4대 왕위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입구 방향
저게 뭐지? 하고 갔더니 석빙고였다.
경주 월성 석빙고는 신라 지증왕 6년(505년)에 얼음을 저장했다는 기록에 의해 신라 때의 빙고로 알아왔으나, 현재의 석빙고는 조선 영조 14년(1738년)에 축조한것으로 밝혀졌다. 이 빙고는 입구가 월성 안쪽으로 나 있으며,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성의 경사를 따라 안이 깊어지며, 내부는 길이 12.27m, 폭 5.76m, 높이 5.21m 규모로 모두 가공된 석재로 되어 있고, 굴은 다섯개의 아치형 기둥 사이에 장대석이 걸쳐 있다. 이 장대석을 친 위치 세 군데에 외부와 통하는 환기공이 뚫려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을 경사지게 하여 물이 밖으로 배출되도록 바닥 중앙에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다는데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
석빙고에서 거림 방향으로 가다 보니 오른쪽에 길이 있어 그쪽으로 가본다.
월성곽의 흔적들이 나뒹굴어져 있고
이 너머에도 발굴지가 있다. 정말 엄청난 규모다.
이 길로 다시 되돌아 나와 이제 앞에 있는 신라 왕궁 영상관으로 간다.
신라 왕궁 영상관에 들어가 잠시 쉬었다 동궁과 월지로 가자. 정말 물집 생긴 발이 너무 아프다. 들어가니까 앉아서 영상을 볼 수 있게 긴 의자가 놓여 있어 유리 벽 쪽에 기대앉으니 해설사께서 쉬는 동안 영상을 보라며 틀어준다. 영상을 보면 볼 수록 이렇게 훌륭한 시설들이 폐허가 되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하다. 약소국의 비애는 백성에게도 고통을 주었지만, 문화재 또한 소실되어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되었다.
경주 박물관에 있는 1,300년 전의 왕경과 월성의 모형이라고 하는데 영상을 보며 사진으로 찍었고 가운데 큰 건물이 정전인 조원전이라고 한다.
경주 월정교, 원효대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 들어갔다,고 전하는 경주의 월정교지는 통일신라시대 월정교 옛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60년 (경덕왕19) 때에 “궁궐 남쪽 문천 위에 일정교, 월정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춘양교라고도 불리었던 일정교는 월정교의 동쪽으로 약 700m 상류에 위치해 있었다. 월정교는 조선시대에 와서 월정교(月精橋, 淨->精)로 표기되었다. 발굴조사에 의하면, 길이 60.57m의 월정교 아래 교각 사이에서 불탄 목재와 기와편이 출토되어, 교각윗면이 누각과 지붕으로 구성된 누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센 물살에 견디도록 교각을 배모양으로 쌓았다. 현재 월정교를 복원 중인데 2017년 말까지는 문루 복원을 포함한 모든 사업을 마무리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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