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담양 명옥헌 원림

智美 아줌마 2016. 8. 25. 12:54

전날 죽녹원, 관방제림을 온종일 걸어 다니다 대나무랜드 찜질방에 어둠이 깔린 밤 8시가 넘어서 들어가게 되었다. 아침에 8시 안 되어 나갔으니까 12시간 넘게 길 위에 있었네. 중간에 쉬기도 하였지만, 한 달 넘게 방콕 생활하다가 걷게 되니 가운뎃발가락과 새끼발가락이 아파 물집 방지 패드와 반창고를 붙이고 오늘은 명옥헌으로 간다. 어제 가려던 곳인데 착각한 일정으로 인해 오늘 가게 되었다.

 

명옥헌은 7월 말에서 8월 초, 8월 중순 전에 가야 배롱나무꽃이 핀 아름다운 명옥헌을 볼 수 있는데, 연일 불볕 폭염에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에 가게 되어 다소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늘 마음속에 명옥헌을 그리고 있으니 늦었어도 그냥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담양 터미널에서 명옥헌을 가려면 창평, 고서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첫차가 6시 30분, 그다음 차가 7시 40분이라서 관람객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가려고 첫차를 타고 갈까 하다가 대부분 문화재 관람은 9시부터 가능해서 두 번째 7시 40분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 전 교통편을 알아본 바로는 3-1번 버스가 창평, 고서행으로 간다고 되어있었는데 막상 담양 터미널에는 3-1번이라는 버스가 없었다. 우째 이런 일이? 대부분 군내 버스 번호가 300번대로 되어있고 창평, 고서 가는 버스는 303번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 부근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도 303번이라는 것, 그래서 지방 군내버스를 탈 때는 버스 번호보다 가는 노선표를 보고 타는 게 더 정확하다. 조금 여유 있게 터미널로 나가 버스 시간을 기다리면서 간단하게 군계란과 빵, 배지밀로 아침을 때우고 드디어 명옥헌으로 출발한다.

 

 

담양 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40분 가까이 달려 연동에 내렸다. 명옥헌을 가려면 연동에서 내려 700m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되어있어 일단 연동에 내렸는데 얼레? 명옥헌에 관한 이정표가 한 개도 없다. 뭐여? 설마 잘못 내린 건 아니겠지? 마침 길 건너에 할배 한 분이 보이시기에 얼른 쫓아가 여쭈어 보니 한 정거장 더 가서 교산에 내리면 명옥헌 이정표가 있는데 그리 가는 것보다 여기서 가는 게 더 가깝다며 그쪽으로 밭에 가는 길이니 길 안내를 해주시겠다며 따라오라고 하셨다. 오늘도 뜻하지 않은 귀인(?)을 만나 수월하게 명옥헌을 찾아가게 되었다.

 

할배 따라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

뉘댁의 담장 너머로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명옥헌에도 이렇게 예쁘게 피어있으면 좋으련만, 늦은 것을 알지만, 그래도 쬐끔 기대하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고목을 자주 보게 되는데 멋들어진 나무가 마을 어귀에 있는 것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내가 사진 찍느라 바로 안 따라가니까 뒤돌아보시고는 사진 찍는 것을 보곤 이내 걸음을 재촉하여 앞서 걸어가신다. 할배 ~ 같이 가요.

 

마을 어귀에서 계속 직진하다가 이제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간다.

 

 

여기서 할배께서는 오른쪽으로 가신다며 명옥헌은 왼쪽으로 쭉 들어가면 있다고 알려주셨다. 소쇄원도 여기서 멀지 않아 걸어가도 되니까 가보라고 하시면서 가는 방향을 알려주셨는데 가사문학관도 여쭈어 보니 거기는 더 멀어 걸어가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길이 교산에서 내려 명옥헌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는데 나중에 나갈 때는 고산으로 가니까 할배 따라 온 이 길이 더 가까웠고 같은 길을 가지 않아서 더 좋았다.

 

이제 나 혼자 명옥헌을 찾아 간다.

명옥헌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저수지가 명옥헌 못지 않게 아름답다.

 

 

 

오른쪽 길은 명옥헌, 왼쪽 길은 후산리 은행나무가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명옥헌을 둘러 보고 은행나무도 보러 가야지.

명옥헌을 오니까 겁나게 반겨주네. 반겨줘서 고맙소. ㅎㅎㅎ

이렇게 명옥헌 가는 길에는 아기자기 예쁜 벽화로 길 안내를 해주기 때문에 찾아가기도 쉽고 눈이 즐겁다.

 

 

 

하늘타리

이 녀석들 봐라. 나란히 일렬로 줄 서서 있네.

백일홍도 있고

 

야 ~ 명옥헌까지 커피 배달도 된다네.

 

 

 

이 길을 돌아가면 명옥헌이다.

 

짠 ~ 드디어 명옥헌에 도착,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다. 얼른 둘러 보며 사진 찍어야지. 담양 문화관광 해설사께서 올 여름은 워낙 더워 꽃이 예쁘지 않다고 했지만, 그보다 대부분 꽃은 지고 흐드러지게 핀 명옥헌을 볼 수 없었고, 가지 끝에 늦게 핀 꽃들이 피어 있어 조금 아쉬웠다.

 

 

명옥헌을 먼저 왔다 가고 죽녹원을 갔더라면 시가문화촌에 복원해 놓은 명옥헌과 연못을 제대로 찍어왔을 텐데 . . .

 

 

 

 

 

명곡 오선생 유적비, 오선생은

 

상사화, 대충 사진 다 찍어 놓고 정자에서 쉬고 있는데 광주에서 왔다는 아짐 예닐곱이 몰려와 난리 부르스를 치는데 행여 이 꽃을 밟을까 노심초사했다. 한 아짐이 팔뚝만한 카메라를 들고 와서 친목회 친구들 사진 찍어주러 온 것 같은데 이곳에서 뽕짝을 크게 틀어 놓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라며 주책을 떨어대는 통에 기분 좋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가 그 여편네들 꼴 보기 싫어 더 있고 싶었지만, 일찍 나왔다. 아무리 상식이 없는 아짐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곳에서 뽕짝을 틀어 놓고 너 나할 것 없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출 생각을 하는지, 정말 팔뚝만한 카메라 들고 있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그래서 아줌마들이 욕을 먹는 것이다.

 

 

명옥헌원림은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안쪽에 위치한다. 별뫼(성산 식영정 원림)의 원림들보다 한세대 뒤인 1625년, 명곡 오희도(1583~1623)를 기리기 위해 그의 넷째 아들인 오이정(1619~1655)이 도장곡에 창건하였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로 교육을 하기 위한 적절한 형태의 건물 모양을 갖추고 있다. 건물 뒤의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가 있으며 오른편에는 소나무 군락이 있다.

 

사각형의 작은 위 연못과 사다리꼴 모양의 아래 연못으로 이루어졌고, 그 사이에 정자를 세웠다. 계곡사이로 수량이 풍부했을 때에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하여 명옥헌의 이름을 얻었다. 위 연못은 인공적인 석축을 쌓지 않고 땅을 파내어 큰 우물같이 보이고 아래 연못은 동서 20m, 남북 40m 크기로 자연 암반의 경사지를 골라서 주변에만 둑을 쌓아 연못을 만들었다.

 

명옥헌 가까이에 사시는 할매 두 분이 하루씩 돌아가며 청소를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이 깔끔하니 깨끗하게 정돈이 잘 되어있다.

 

 

기둥에 걸린 주련의 뜻은 百川逝意慾歸海(백천서의욕귀해) - 모든 냇물이 흐르는 뜻은 바다에 돌아가고자 함이고. 萬樹生心畢境花(만수생심필경화) - 모든나무가 살아 가는 것은 꽃 피우고자 함이다. 萬古消磨應是夢(만고소마응시몽) - 만고의 지난 일은 응당 사라지는 꿈 같은 것이니. 人生老在不知中(인생노재부지중) - 인생이란 모르는 사이에 절로 늙고 있었구나.

 

이제 여러 방향에서 명옥헌을 살펴 보자.

 

 

 

 

도장사 터에서 본 명옥헌의 뒤태

개방이 되어있어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할매께서 쓸고 닦고 해두셔서 어디에 앉아도 쾌적하게 쉴 수 있다.

3칸 중 가운데는 방으로 되어있어 방 안에서 연못을 찍고

마루에서도 연못을 찍어 보고, 저 앞의 나무들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으면, 좀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자꾸 남는다.

 

 명옥헌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전각 뒷편 바위에 새긴 글씨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을 모각해 만들었다고 한다.

 

정면에 명옥헌 계축 현판 왼쪽 뒤에 삼고(三顧)라는 편액이 또 걸려 있다. 조선 중기 광해군 재위 시절 능양군(훗날 인조)이 광해군을 축출하기 위한 세력을 규합해 가는 과정에서 이곳에 낙향해 있던 오희도(1584∼1624)를 찾아왔던 사실을 상징하는 글귀라고 전한다.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 지내던 도장사道藏祠의 터

정자 뒤로 올라가면 네모난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 주변에도 배롱나무가 심어져 잇다.

 

 

 

 

 

위 연못에서 계곡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암각문이 있다. 명옥헌 계축(鳴玉軒癸丑)은 명옥헌의 편액 삼고(三顧)와 함께 송시열의 글씨로 우암 계축(癸丑)이라 하면 1673년(현종14년)으로 송시열이 좌의정으로 있던 우암의 전성기다.

 

 

 

 

 

사진 찍으러 온 아짐들 때문에 시끄러워 더 있지 못하고 내려간다. 일찍 가서 깔끔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래 연못 바로 앞에 사시는 할매께서 오늘 청소 당번을 하셔서 나오면서 빵 하나를 드리고 인사하고 내려왔다.

 

 

박주가리

나오면서 은행나무도 보고 가야지 했는데 깜박 잊고 그냥 내려가서 그냥 갈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가서 보고 와야지.

겹 흰색 무궁화

은행나무를 찾아가는데 집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런 촌에 이런 집이 이 주변에 여러 채가 있는데 다른 농가와 너무 비교가 된다.

 

 

명옥헌의 북쪽 정원에는 은행나무가 있고 명옥헌 뒤에는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전국을 돌아보다가 오희도를 찾아 이곳에 왔을 때 이들 나무 밑에 인조가 타고 온 말을 맸다고 하여 이 나무를 일명 ‘인조대왕 계마행( )’ 또는 ‘인조대왕 계마상 ( )’이라고 부른다. 현재 오동나무는 고사하여 없어졌고 300년이 넘은 은행나무만 남아있다. 

 

이곳에도 명옥헌의 북쪽 정원이었구나. 그래서 명옥헌 원림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데 주변이 너무  협소하고 어수선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은행나무를 보고 소쇄원을 갈까 하고  할배께서 일러주신대로 길을 따라 나간다. 소쇄원도 여행사 여행 때 다녀와서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다.

볼록 거울이 있으니까 셀카 놀이도 하고 가야지? ㅎㅎㅎ

 

길 따라 나가다가 왼쪽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저 가운데 있는 나무 방향으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찍어 주셨다.

왼쪽으로 가면 소쇄원, 오른쪽으로 가면 교산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는 길이다.

 

워매 ~ 소쇄원까지 6.4km나 돼? 어이구야 ~ 저기를 어떻게 걸어가. 빨리 가도 족히 두 시간은 더 걸어가야 할 텐데, 소쇄원은 다음에 식영정, 가사문학관과 함께 둘러 보기로 하고  다음 일정대로 이제 담양으로 나가 메타 프로방스와 메타세쿼이아 길로 간다.

 

소쇄원으로 가는 길

교산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엔 배롱나무 꽃이 아직 많이 피어있어 길이 참 예쁘다. 그래서 이 길로 명옥헌을 가라고 안내해 놓았나 보다.

 

 

 

연동에서 교산으로 오는 차도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교산리에서 내리면 이곳에서 명옥헌으로 간다.

여기서는 명옥헌까지 1km, 연동에서는 700m라고 했으니 300m 더 가깝구나.

아까 올 때 할배 따라 가느라 연동 마을 입구 사진을 못 찍어서 다시 연동으로 갈어가는 길

 

아, 그런데 연동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길 건너 가서 사진 찍어야지 하는데 버스가 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또 못 찍고 그냥 버스를 타고 담양 터미널로 가게 되었고 다음 일정은 메타 프로방스와 메타세쿼이아 길을 간다. 이 버스는 10시 50분 고서 출발인데 연동에 11시 20분쯤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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