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배려석의 불편한 진실

智美 아줌마 2016. 9. 2. 19:52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보고 집으로 올 때는 광화문 사거리 쪽에서 한 번 타고 올 수 있는 버스가 있지만,

난 늘 광화문 KT 앞에서 109번 버스를 타고 혜화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온다.

오늘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지하철로 갈아탔는데 늦은 시간이지만, 빈자리가 없다.

 

다른 날에는 배려석이 비어 있으면 앉아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배려석에 빈자리가 한 자리가 있었지만,

할배 한 분께서 비스듬하게 두 자리에 걸쳐 앉아 계셨고

체격이 크고 인상이 넉넉한 품성은 아닌 것 같아서 같이 앉아 가자고 말했다간 봉변당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

그냥 서서 가는데 앞에 앉아 계신 할배께서 건너 빈자리를 가리키며 가서 앉으라고 하셨다.

 

나야 발이 아파 불편하니까 앉아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조금 편하게 앉아 가려다 재수 없게 괜히 언짢은 소리라도 들으면 좋은 기분 상하게 되니까 그냥 서서 가는 것인데

서서 가는 날 보고 앞에 앉아 계신 할배께서 자꾸 가서 앉으라고 권하시며 왜 빈자리가 있는데 서서 가느냐고 하시기에

건너편에 앉으신 할배께서 비스듬하게 앉아 계셔서 가서 앉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리니

그럼 당신이 건너가 앉을 테니까 이 자리에 앉아 가라며 일어나시려고 하시기에

극구 사양하며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으신지 당신 자리에 나를 앉게 하고 건너가 앉으셨다.

 

배려석이라는 게 참 마음 불편할 때가 있다.

젊은 사람이 행여 앉기라도 하면 버럭 질까지 하는 노인네도 있지만,

나중에 양보하더라도 비어 있으니까 젊은 사람한테 앉아가라고 권하는 분들도 계신다.

배려석이 경로석으로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니고 몸이 불편하거나 계속 비어갈 때는 젊은 사람도 앉아 갈 수도 있는 것인데

늙은 게 무슨 높은 벼슬이나 되는 양, 특권 행사하려는 노인들이 있어 젊은 사람의 공분을 사기도 하지 않은가.

 

임산부가 앉았다고 손찌검을 하는 노인네가 있을 정도니 노인들이, 변하는 세상에 따라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고리타분하게 옛날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윗사람 대접만 받으려고 하면 안 되지 않은가.

나 또한, 점점 노인의 대열로 접어들고 있는 나이다 보니 노인의 입장과 젊은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보게 된다.

 

되먹지 않은 젊은 사람도 있지만, 진짜 나잇값 못하는 어른도 있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생각이 바뀌어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배려해주는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점점 흉포해지는 우리 사회가 가슴 따뜻한 마음으로 사는 세상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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