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연 나들이

국립 발레 스파르타쿠스

智美 아줌마 2016. 8. 26. 13:18

월요일 밤 야간열차를 타고 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다음 날인 오늘 저녁, 발레 스파르타쿠스를 보러 국립극장에 갔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 푸석푸석 팅팅 부은 채로 나갔지만, 다행히 하루아침에 날씨가 선선해져서 덜 힘들게 다녀오게 되었다. 섬세하고 강인한 근육미가 돋보이는 발레, 짐승남 발레, 발레의 '남성혁명' 등등의 타이틀로 언론사마다 스파르타쿠스를 표현한 것 같이 정말 멋진 공연이었다.

 

주역을 맡은 두 발레니노의 춤사위는 정말 힘이 넘치고 박력 있어 보는 내내 아, 정말 멋지다. 탄성을 자아내게 했으며 군무 또한 주역 못지않게 멋진 춤을 보여줘서 환상적인 무대가 되었다. 멋진 공연을 보면서 저렇게 춤을 추자면 얼마나 힘들까, 체력 소모가 아주 많이 될 텐데, 하는 생각에 이재우 발레니노의 흐르는 땀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였다.

 

갈 때 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장충단 공원의 숲, 3호선 동국대 입구 역에서 국립극장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한 컷!!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안의 벽화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니 기념 사진을 찍느라 붐비지 않아 사람들 밀려오기 전에 얼른 한 컷 찍고

부탁해서 인증 샷도 하고

무대 쪽에서 본 2, 3층 객석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만 보던 국립발레단의 로고 커튼

 

스파르타쿠스 1, 2, 3막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촬영, 앞에서  세 번째 줄 좌석에 앉았더니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다.

프리기아 역의 김지영 발레리나, 스파르타쿠스 역의 이재우 발레니노, 예기나 역의 김리회 발레리나, 크랏수스 역의 박종석 발레니노

프리기아 역의 김지영 발레리나, 스파르타쿠스 역의 이재우 발레니노

예기나 역의 김리회 발레리나, 크랏수스 역의 박종석 발레니노

유리 그리고로비치(가운데) 안무가의 연세가 90세가 넘었다. 직접 내한해 단원들을 지도하셨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열정이시다.

 

 

목숨을 건 혁명과 아름다운 사랑, 로마 시대를 풍미한 노예 영웅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 로마시대 불후의 영웅 '스파르타쿠스'는 1960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시작으로 2006년 대 히트를 기록한 영화 ‘300’, 최근의 TV 시리즈물 ‘스파르타쿠스’까지 여러 형태로 이 이야기는 만들어져 왔다. 발레 작품으로서의 스파르타쿠스’는 이러한 미디어 매체보다 앞선 1956년(레오니드 야콥슨안무의 초연)부터 만들어 지기 시작해 1968년에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연출한 작품이 현재까지 공연되고 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는 대거의 남성 무용수들을 기용,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파격적 안무를 통해 역동성, 웅장함, 비장미를 배가 하였으며, 주인공에만 비중을 두는 단순한 줄거리 나열이 아닌 주변인물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내면적인 고뇌와 안무자의 철학을 부여해 주제 의식, 빠른 전개, 관객을 압도하는 연출법으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는 신체적, 체력적 조건으로 소화하기 힘든 고난이도 안무로 아시아에서는 그 라이센스를 받은 국가나 단체가 없었으나 2001년 아시아 최초로 ‘국립발레단’이 국내에 소개 했고, 2007년에는 노보시비르스크와의 합동 공연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2012년 이후 4년만에 올려지는 이번 공연은 더욱 탄탄한 실력과 좋아진 체격으로 인정받고 있는 국립발레단의 군무들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솔리스트들이 최고의 라인업으로 완벽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기사 발췌)

 

 

문헌에 나타난 스파르타쿠스의 생애는 자세하지 않고 문헌마다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은데, 트라키아 출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워드 패스트의 소설이나 그 소설을 기본으로 해서 1960년에 만들어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는 스파르타쿠스를 대대로 노예였으며 광산에서 일하다가 검투사로 뽑힌 것으로 그렸지만, 문헌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군에 소속되었다가 탈영하고, 그 때문에 노예의 신분이 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무예가 뛰어났기에 검투사가 되어, 카푸아 근교에 바티아투스가 소유한 검투사 양성소에서 지내게 된다. 그가 본래는 트라키아의 왕족이었다는 문헌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플루타르코스는 스파르타쿠스가 여느 노예들과는 달리 유식했으며, 냉철하고 신중했다고 전한다. 중부 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 양성소에 소속된 검투사였는데, BC 73년 70여 명의 동료 노예와 함께 양성소를 탈출, 목자, 농노, 빈농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에서 보낸 진압군 2개 군단을 차례로 격파하고 남부 이탈리아를 지배, 전성기에는 군세가 12만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남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섬으로 건너가려다가 실패하고, BC 71년 원로원에서 파견된 크라수스의 군단에게 루카니아에서 패사하였다. 이 반란은 로마의 지배계급을 전율시켰으며, 후에 그에 관한 갖가지 전설이 생겨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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