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노랗게 물든 띠띠미 마을

智美 아줌마 2016. 4. 8. 12:30

이맘때가 되면 봄꽃들로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봉화 띠띠미 마을 산수유를 보러 가야지 하면서도 늘 때를 놓치게 되었는데 이번엔 일정표에 날짜를 정해 놓고 기다렸다가 다녀오게 되었다. 산수유로 유명한 의성 사곡 마을이나 구례 산동 마을은 오래전이지만, 다녀와서 이름도 특이한 띠띠미 마을을 가고 싶어 검색해 보니까 교통 편이 썩 좋지 않아 당일 다녀오려면 부득이 택시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봉화행 7시 40분 첫차를 타고 간다. 기차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당일 다녀오려면 빠른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못 느꼈으나 한강 변을 지날 때 보니까 안개가 잔뜩 끼어있었다. 안개 낀 날은 대체로 날씨가 맑아 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봉화 터미널로 가기 전에 있는 내성천

7시 40분 서울을 출발해서 2시간 40분 소요, 봉화 터미널에 내리지마자 바로 택시를 타고 띠띠미 마을로 갔다.

하얀 민들레

광대나물

벚꽃도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흐드러진 꽃은 화사하지만, 이렇게 몇 송이만 피었을 때는 귀엽고 앙증맞다.

 

아, 이 씨방 누구 것인지 기억이 날듯 말듯 생각이 안 나니 답답하다. 에이 ~ 포기다.

먼저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자락으로 올라간다.

하얀 냉이 꽃과 노란 꽃다지가 밭을 이루고 있다. 꽃다지의 꽃받침과 잎에는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다. 볼 수록 닮은 꽃이다.

냉이꽃

꽃다지

산수유

 

자두나무 같은데 과일나무 꽃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요렇게 산자락으로 올라와서 마을을 보면 산수유 꽃 속에 파묻힌 듯 집들이 있다. 한옥 기와 지붕이라 더 아름답다.

옆으로 조금씩 이동하며 담아본다.

 

 

젊은 아낙이 밭일을 하는데 뭘 심고 있지? 인삼 밭인 것 같은데 . . .

마을을 배경으로 찍으려니까 카메라 올려놓을 데가 마땅찮아서 밭을 배경으로 한 컷!!

야 ~ 냉이 밭이다. 과실수가 있어서 땅에는 다른 작물을 심지 않나?

 

 

복사꽃

명자꽃

 

꽃잔디

명자꽃

무스카리

할미꽃

 

성건재 고택(국회의원 홍의락 家) 해마다 이 고택에서 시낭송회가 열린다고 한다. 솟을대문이 굳게 닫혀있어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까 어라? 안에 사람이 있네. 왼쪽으로 돌아가니까 쪽문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둘러 볼 수 있었다.

 

 

 

안에서 본 솟을대문

 

장독대 너머로 보이는 목련

 

 

 

성건재 고택

유채

정자 쪽으로 가는데 도중에 아짐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뭐여? 조용한 마을에서 갑자기 웬 비명? 말소리를 들으니 뱀이 출몰했나 보다.

 

쥔장께서 잔디에 물을 주고 계셨지만, 슬쩍 비켜 한 컷 담았는데 집 주변을 예쁘게 가꾸어 놓았다.

자목련이 생생하니 예쁘다. 이곳의 목련은 도시의 목련보다 더 생기있고 예쁜 것 같다.

 

 

벅쫓

 

 

 

 

띠띠미 마을에는 5천 그루가 넘는 산수유 나무가 있는데 100년 이상 된 산수유 나무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400여년 전 병자호란 때. 개절공 두곡 홍우정 선생은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던 삼전도의 치욕을 참지 못해 은둔을 택했고, 온통 다래 덤불로 뒤덮여 있던 이 골짜기로 들어와 산수유를 심고는 ‘우리 자손은 벼슬하지 말고 이 열매만 따서 먹어라’ 했다 한다. 그 후 그의 자손이 대대로 뿌리를 내렸고, 지금도 두 집 가운데 한 집은 남양홍씨로 홍우정 선생이 처음 심은 산수유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마을 서쪽을 흐르는 개울 옆에 살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의성의 산수유 나무도 이곳에서 분양 받아 나간 것이라고 하고 영화 워낭소리에서 노인이 젊은 소를 길들이는 장면을 이 마을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꽉 막힌 산으로 에워싸여 있다 해서 뒷듬, 혹은 마을 뒤에서 물이 흐른다고 해서 뒤뜨물이라 불리던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뒷듬마, 뒷드물, 뒤뜨미, 디뜨미 등으로 변해 띠띠미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띠띠미 마을에는 산수유도 많지만, 금강송도 많이 눈에 띄었다.

 

 

 

사철나무 어린잎 사진을 찍고 있는데 화단 정리를 하시던 이 댁 쥔네께서 시원한 매실차 한잔 먹고 가라고 부르신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서울에서 왔다니까 더 반갑다며 올라오라고 권하시기에 마당 한쪽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하시더니 안에서 매실차 만들어 놓은 것을 가지고 나오셔서 한 잔 따라 주시고 다니면서 먹으라고 작은 페트병에 가득 담아 주신다. 몇 해 전 서울에서 살다가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서울이 그리워서 서울 차 번호만 눈에 띄면 달려가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불러 세우곤 하셨다고 한다. 요즘에는 지역 구분을 할 수 없게 차 번호가 등록되어있지만, 오죽 서울 생활이 그리웠으면 그리 했을까. 이젠 이 마을에 정착해서 살다 보니 이곳이 편하고 좋다고 하셨다.

 

사철나무 새순이 꼭 꽃같이 생겼네. 어린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도 다 예쁘다.

 

자두나무

 

 

산수유 구경을 하면서 마을 입구로 내려간다.

나무마다 세월의 오래됨이 느껴져 자꾸 나무를 살피게 된다. 나무야, 오래오래 살아라.

개나리의 샛노란색이 산수유 노란 빛을 기죽게 하고 산수유 무리 속에서 당당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그래, 세상 살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계속 내리막길이다.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왔으면 숨깨나 차게 생겼다. 택시 기사 아저씨께서 밑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면 힘드니까 마을 맨 위까지 올라가서 구경하면서 내려오라고 마을 위까지 데려다주셨는데 아저씨가 괜찮은 분 같아서 명함 한 장 챙기고 나중에 터미널 갈 때 아저씨 차를 불러 또 이용하게 되었고 다음 봉화 여행 때 필요할까 싶어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터미널에서 이곳까지 만 5천원 나왔다.

 

 

 

 

 

홍우정 선생의 비각

 

홍우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이며 자는 정이, 호는 두곡, 또는 계곡이다. 한성부윤과 형조판서를 지낸 가신의 손자이며 한성서윤을 지낸 영의 아들이다. 1616년(광해군 8)에 병진 증광시에 급제하였으나 1616년 장인인 최기가 해주옥사의 괴수로 몰려 처형될 때 연루되어 중도부처의 형을 받았다가 병으로 석방되었다. 후에 무고임이 드러나 명예를 회복했으나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수모를 당하자 태백산에 은거하였고 병자년(1636년 인조 14년) 대령 남쪽에서 피난하여 봉화현 문수산 아래에다 집터를 정하고 두곡이라 자호한 것은 지명을 따른 것이라 한다

 

 

350년 된 느티나무

 

버스를 타려면 이 길을 따라 나가 동양이라는 곳까지 가야한다.

 

 

산괴불주머니

돌양지 꽃

호제비꽃

 

볼록거울에 셀카!! 차도 가운데서 뭔 짓이냐고? 두동마을 다니는 차가 많지 않아서 괜찮아요. ㅎㅎㅎ

 

 

 

띠띠미 마을(두동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면 봉화 터미널에서 덕촌, 금봉 가는 버스를 타고 동양, 와란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도보 거리가 대략 3km 정도 되는 것 같다. (봉화터미널 → 덕촌행 06:30, 13:30, 18:30)

 

 

덕촌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봉화 터미널에서 1시 30분 출발, 이곳까지 와서 덕촌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려면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봉화 도착해서 택시 타고 들어가고 띠띠미 마을이 그다지 넓지 않아서 달실마을을 다시 가보려고 하는데 1시간을 길에서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덕촌 쪽에서 나오는 차가 있어 봉화 방향으로 가시면 유곡리 달실마을 입구까지 태워줄 것을 부탁드리니 흔쾌히 그러마 하셨는데 봉화로 농기구 사러 가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동양리 버스 정거장에서 달실 마을까지 10분 조금 더 걸렸나?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달실마을에서는 봉화 터미널 가는 버스가 자주 있고 석천 계곡으로 나가면 터미널까지 걸어갈 만한 거리라 괜찮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원재와 충재 권벌 묘역  (0) 2016.04.08
봉화 닭실마을의 봄  (0) 2016.04.08
남산 벚꽃 길 걷기  (0) 2016.04.04
거제도 옥포 해안 트레킹  (0) 2016.03.29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기록 전시관  (0) 2016.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