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제천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

智美 아줌마 2015. 12. 5. 22:00

우연히 관란정에 관한 자료를 보고 제천 여행을 계획하였다. 제천에도 벽화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 여느 벽화 마을의 그림과는 달리 민화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민화가 그려진 교동 민화 벽화 마을도 겸사겸사 둘러 보고 마침 제천 향교도 벽화 마을 앞에 있어 이동하기 수월했다. 06시 40분 청량리발 무궁화호를 타고 제천으로 간다. 새벽 찬 기운 느끼며 길을 나서는 것은 추위보다 상쾌함이 느껴져 좋다.

 

새벽 6시 10분경 청량리역

기차를 타고 가는 중 차창 밖의 풍경

 

머지않아 기차 카페가 없어진다고 한다. 여행 중에 한 번은 이용하게 되는 카페인데 사라진다고 하니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어 카페 칸이 없어지기 전에 카페 연인(?)을 사진으로 남겨두고자 한 컷 찍었다. 앞으로 카페 칸은 내일러의 공간으로 개조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주역 주변의 벽화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들

 

 

08시 30분 제천역 도착

 

우리 나라 철도의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간의 경인선 33.2㎞를 개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때 경인선이 지나친 역은 모두 7개였고, 119명의 철도인력과 증기기관차 4대, 객차 6량, 화차 28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1899년 5월 4일 동대문과 서대문 사이에는 전기철도인 전차가 개통되었는데, 이는 우리 나라 대중교통의 일대 혁명으로 우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당시 상황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개통식을 마친 전차는 시민에게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고다 공원에서 어린이를 치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여 시민들의 즉각적인 폭동으로 운행이 한시적으로 중단되는 사태를 빚기도 하였다.

 

개통 당시의 전차는 일정한 정거장이 없었다. 승객은 골목어귀에서 전차를 기다리다가 손을 들어 승·하차해야 했고, 요금은 승차한 뒤에 현금을 지불하면 차장이 그때마다 목에 달고 있던 레지스터의 끈을 당겨 숫자로 표기했다. 그러다가 그 해 8월 이후부터 매표소가 설치되어 승차권제도가 실시되었다. 현대적인 철도의 모습을 갖춘 시기는 디젤기관차 시대를 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4월 UN군이 사용하던 디젤기관차를 인수하면서 디젤기관차 시대의 막이 올랐다. 한국전쟁당시 UN군은 디젤기관차 50량을 운용하였는데, 1953년 휴전과 더불어 UN군이 철수하면서 기관차 4량을 우리 철도에 기증한 것이다.

 

 

초창기의 열차 이름은 현재와 같이 등급별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제각기 시대적인 의미를 부여한 이름들을 사용하였는데, 그 당시 열차 이름은 우리 민족의 애환과 시대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구한말인 1906년 4월 순종임금의 연호를 딴 ‘융회호’가 경부선을 누빈 것을 시작으로 일본 강점기에 부산에서 중국 봉천간을 운행한 ‘히까리(光)호’, 부산-서울 간 특별급행인 ‘아까스끼(曉)호’ 등 일본식 이름으로도 명명되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면서 1946년에는 ‘해방자호’, 1962년에 재건호, 맹호호, 청룡호, 갈매기호, 충무호, 증산호 등 노선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오다가 1984년 1월 1일 전 선의 열차명을 계급별로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로 통일하여 사용해 오다 지금은 KTX, ITX새마을호, 무궁화호와 여러 상품의 관광 열차가 있다.

 

열차 속도의 변천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1899년 경인선에서 운행되던 모갈형 증기기관차는 최고 시속 60㎞, 평균 20㎞의 속도로 노량진∼제물포역 간을 1시간 30분에 달렸다. 한편 서울∼부산역 간을 기준으로 각 열차의 최고 속도와 소요된 시간을 살펴보면 1906년 4월 「융회호」가 최고 70㎞의 속도로 석탄과 물을 이용하여 11시간에 달린 것을 비롯하여 1946년 5월 「해방자호」가 최고 80㎞의 속도로 9시간에, 1960년 2월에 등장한 무궁화호(디젤기관차)는 95㎞의 최고속도로 6시간 40분에 주파하는 속도의 발전을 보였다.

 

또한, 1969년 6월에는 초특급 관광호가 최고 110㎞로 경부 간을 4시간 50분에 주파하여 일일생활권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이후 1985년 새마을호가 등장하여 최고 140㎞대(평균 107㎞)의 속도로 4시간 10분에 경부간을 주파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1C에는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세계 최고 수준인 시속 300㎞대의 KTX가 달리고 있고 앞으로 430km의 초고속 철이 개발 중이라고 한다.

 

 

08시 45분 종점 출발하는 540번 버스를 타고 20분 소요, 장곡 하차 후 도보 900m

관란정 가는 버스 안에서 본 풍경

 

어? 저 큰 돌은 뭐지? 버스 안이라 스쳐지나간다.

 

 

 

버스 기사 아저씨께서 관란정에 간다고 하니까 장곡에서 내려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관란정 앞에 내려주셨는데 장곡에 내려 걸어왔다면 다리품 좀 팔고 걸어 올라왔어야 헸다. 네이버 길 찾기에서는 512m라고 나왔지만, 버스 타고 올라오는데도 한참을 구불구불 올라와서 족히 1km는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길 찾기에서는 8.91m로 나오는 게 아마 다음 길 찾기의 거리가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네이버 길 찾기에서나 다음 길 찾기에서 버스 이동 소요 시간이 1시간 걸린다고 했으나 제천역에서 2,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관란정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 뉘댁의 묘가 있다. 관란정에서 만난 아랫 마을 할배께서 얘기해 주셨는데 잊어버렸다.

 

 

조금 더 올라오니까 또 묘가 있는데 여기도 말씀해 주셨는데 잊어버렸다는 . . . ㅎㅎㅎ

드디어 관란정이 보인다. 저 정자를 보겠다고 이곳까지 왔으니, 그런데 관란정을 품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워 관란정을 찾아왔다.

 

관란정과 원호 유허비각

 

 

 

 

관란정은 영월과 제천의 접경인 평창강 절벽 위에 있으며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묻히게 되자,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원호(생몰년 미상)가 단종을 그리면서 서강가에 단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또한 그가 의복과 음식을 단종에게 보낼 때는 먼저 풀잎에 글을 지어 함지에 담아 청령포로 띄워 보내고 그것이 닿을 무렵에 친히 가 뵈었다고 한다. 원호가 죽은 뒤, 그의 후손과 유학자들이 원호의 충의를 기리고자 1845년(헌종 11년)에 비석과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에 따라 ‘관란정’이라 하였는데, 유허비도 함께 세웠다. 관란정은 1941년에 개축하였으며, 1970년과 1987년에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른다.

 

 

 

 

 

 

 

 

유허비는 영·정조때 대학자 이계 홍양호(1724∼1802)가 세웠는데, 일반적인 비문과 달리 붉은색 글씨로 새겨있으며 기초석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자연석 위에 비석을 조성하여 세웠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평창강은 길이 220km. 강원 평창군 북부 오대산 남쪽에서 발원, 속사천이라는 이름으로 남서로 흐르다가 봉평면에서 흥정천과 합류하여 평창강을 이룬다. 대화천, 계촌천 등의 지류를 합치며 남쪽으로 심하게 곡류, 평창읍을 지나 영월군 한반도면에서 주천강과 합류하고 물길을 동쪽으로 바꾸어 계속 곡류한다. 영월읍 서쪽에서 서강이란 이름으로 흐른 뒤 읍의 남쪽에서 동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직선 거리는 60km밖에 되지 않는데 유로연장은 220km가 될 만큼 심하게 곡류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이다.

 

 

 

 

가운데 위에 소나무가 있는 바위가 원호가 단종의 승하를 애통해하며 곡을 했다는 아이고 바위, 아래 물가에 있는 바위가 단종에게 과실과 산나물을 채취해 글월과 함께 함지박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냈다던 함지박 바위, 함지박에 넣어 강물에 흘려보내면 청령포의 노산대 밑에 머물러 있어 단종이 받아보고 빈 함지박이 다시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 원호가 받았다고 한다.

 

예전엔 여러 집이 살았는데 다 떠나고 그나마 저 집도 농사철에 쥔네가 돌아와 지내다가 겨울이 되면 도시로 나간다고 한다.

서강이 되어 청령포로 흘러가는 평창강

관란정 주변의 소나무

 

 

 

관란정과 평창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으니 이제 나무 테크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간다.

 

벼랑 중턱까지 계단을 만들고 전망대 쉼터를 만들어 놓았는데 나무가 가려 힘들게 오르내린 것에 비해 볼거리는 약했다.

 

 

옆의 다른 계단으로 내려가 본다. 이곳은 어떨까?

 

이곳에서는 주천강 줄기가 보인다.

 

 

오른쪽에 철망 울타리가 있어 그곳으로 넘어가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월담할까 하다가 되돌아 올라갔는데 아랫마을 할배 한 분이 산책 나오셨다며 관란정에 올라오셔서 이곳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내려오는데 할배께서 밭에 들려 내려가신다고 해서 동행을 하였다. 관란정과 평창강, 주천강, 서강, 동강에 관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지금 기억하려니 생각이 안 난다. 울타리 너머에 대해 여쭈어 보니까 옛날엔 그곳으로 오르내렸는데 지금은 길의 흔적이 없어져 갈 수 없다고 하셨다.

 

 

 

관란정을 내려와 한반도 마을 방향으로 올라간다. 한반도 마을 종점에서 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면 2시간 반을 기다려야 해서 차가 내려오는 방향으로 계속 걷기로 했다. 아랫마을 할배께서 고개를 넘으면 영월이라고 일려주셨는데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두 지역의 경제선이 되는 지점, 제천에서 영월로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 충청북도와 강원도를 한 걸음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길이다. 이곳은 제천!!

 

노박덩굴 열매

 

지금 걷고 있는 곳은 영월군 서면 장터길, 영월에는 장터들이라는 곳이 있는데 현대시멘트 공장이 있는 곳이 장터들이다. 강줄기의 변동으로 넓은 들녘이 새로이 생긴 새내들이 있다. 남면 북쌍리가 서면 행정구역이었을 당시인 1906년에 북쌍리에 있던 면사무소를 신천리의 새내들로 옮겼고 이때부터 시장이 형성되어 '장터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936년에 있었던 병자년 가력이라는 큰 홍수는 옛날의 물길이었던 장터들과 서면 면사무 일대의 마을 전체를 휩쓸어 버렸다. 서면 면사무소는 다음해인 1937년10월 15일에 현재의 위치인 우래실로 옮겨졌으며 이에 따라 새내의 중심도 우래실로 옮겨졌고 그후 장터들은 현대에서 매입하여 논을 만들려고 베리네 밑에 신천보를 만들기도 하였으나 실패하고 현대목장을 운영하다가 1992년에 현대시멘트 공장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관란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 보았는데 나무가 막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천강

 

이 겨울에 파란 얜 뭐니?

 

 

 

 

 

솔미산 등산로 왕복 2km라고 해서 갔다 올까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인지 잡초가 많이 자라 길이 좋지 않고 외져서 되돌아 나왔다.

 

 

 

새내들이라는 비석이 있다. 이 마을 이름이 새내들인가? 했는데 새내들은 주천강과 평창강이 합치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들이므로 사잇내들, 즉 새내들이라고 하는데 모래가 많이 쌓였으므로 일명 사평이라고 한다. 안새내에 있는 넓은 들녘은 안새내들, 바깥새내에 있는 것을 바깥새내들이라 부른다.

버스 올 시간도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고 마을 안내도를 보니까 마을 안에 뭔가 있을 것 같아 마을로 들어가 본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 동네 개들이 환영 인사를 하느라 난리다. 그런데 어째 사람은 볼 수가 없다. 이곳 주민들도 겨울에는 시내 나가서 사나?

어라? 저게 뭐지? 밑으로 내려가 보려 하니까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안으로 계속 들어가니 습지 관찰로 안내도가 있다.

 

영월의 한반도 습지는 영월군 한반도면 신천리,옹정리,후탄리 일원(1.9㎢)에 위치한 하천형 내륙습지로 2009년 환경부 국가습지사업단의 정밀조사 용역결과 보전가치가 있는 습지로 확인돼, 지난 2012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한반도습지는 수달, 돌상어, 층층둥굴레 등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및 어름치,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이 서식해 생물다양성이 우수하고, 한반도지형, 석회암지대 지형 발달 등 생태경관이 우수한 습지로 2015년 5월 우리나라의 21번째 람사르습지로 공식 등록 되었다.

 

 

19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채택되어 1975년에 발효된 람사르협약은 국경을 초월해 이동하는 물새를 국제자원으로 규정하여 가입국의 습지를 보전하는 정책을 이행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습지를 바닷물 또는 민물의 간조 시 수심이 6m를 초과하지 않는 늪과 못 등의 소택지와 갯벌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7월 28일 국내에서 람사르협약이 발효되면서 세계에서 101번째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하였다.

 

2008년 10월 말 경남 창원에서 제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 바 있다. 2011년 12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습지, 순천만ㆍ보성갯벌, 제주 물영아리오름, 충남 태안 두웅습지와 서천갯벌, 울주 무제치늪, 전남 무안갯벌, 인천 강화도 매화마름군락지, 오대산국립공원습지, 제주 물장오리습지, 한라산 1100고지 습지, 전북 고창ㆍ부안갯벌, 제주 동백동산습지, 전북 고창 운곡습지, 전남 신안증도갯벌 등이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어 있다. ​

 

 

관찰로를 따라 걸어가며 사진을 찍는데 어떤 아짐이 오기에 운동 나왔나? 했더니 습지 관리소에 근무한다며 내가 이곳으로 들어가기에 확인 차 왔다고 한다. 이 지역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곳이라 낚시를 한다든가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와 있다고 잠시 얘기 나누고 돌아갔다.

 

 

 

걷다보니 보기보다 관찰로가 꽤 길었는데 푸른 숲일 때 오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입구에서 본 정자가 이곳이구나. 잠시 머물다 버스 올 시간을 생각하고 되돌아 나간다.

 

 

 

오른쪽 봉우리에 관란정이 보이는데 역광 사진이라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육안으로는 잘 보였다.

 

전깃줄에도 참새가

나뭇가지에도 참새가 무지 많다.

 

 

 

승용차가 있는 곳이 습지 관리소

 

 

버스 올 시간이 되서 정거장에 나가니까 한반도 마을 종점으로 버스가 들어간다. 아마 그 버스가 되돌아 나오겠지?

버스를 기다리면서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셀카!!

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나가면서 본 풍경, 이제 제천 향교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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