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여행

창덕궁의 나무 이야기

智美 아줌마 2015. 10. 22. 13:05

창덕궁과 창경궁에 있는 나무에 대해 해설사께서 동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나무 이야기를 들으러 창덕궁으로 갔다. 돈화문 옆 만남의 광장에서 해설사 장현주 님과의 미팅을 위해 기다리는데 와글와글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만나기로 한 10시가 되어가는데 기웃기웃 둘러 봐도 해설사로 보이는 분이 눈에 안 들어온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어떤 할배께서 다가오셔서 "나무 이야기" 들으러 왔느냐고? 물으시기에 가슴에 단 명찰을 보니까 장현주 님이셨다. 아, 남자 분이셨구나. 이름이 여자 이름이라 여자 해설사분을 찾고 있었는데 장현주 님께서 대부분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며 웃으셨다. 이제 열 명 안팎의 인원과 해설사님과 동행한 창덕궁 나무 여행을 떠난다.

 

궁 관람을 해도 전각의 이름이나 겨우 알아보며 둘러 보고 아름드리 멋진 나무가 있어도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와 ~ 이 나무 정말 예쁘다고 감탄만 하고 오는데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나무를 관찰하니까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였다. 그래서 창경궁도 같이 예약을 해뒀는데 아쉽게도 신청 인원이 적어 취소를 거듭하더니 끝내 11월부로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말았다. 진작에 신청할 걸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어 많이 아쉬웠다.

 

창덕궁과 창경원을 그린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으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을 했고 가로 576cm 세로 273cm 이며 국보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많은 건물과 함께 대략 3~4천 그루의 나무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제작연대는 순조 26년에 지어져 순조 30년에 불타버린 환경전이 그려져 있고, 순조 31년에 착공하여 순조 34년에 중건된 통명전과 경복전은 건물이 없고 그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1826년~1828년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궁 안에 실재하던 모든 전당과 누정, 다리, 담장은 물론 연못, 괴석 등의 조경과 궁궐외곽의 경관까지 정밀하게 그렸다. 창덕궁은 160여 종의 희귀하고 다양한 수종을 보유한 후원 등 수려한 자연풍광을 자랑하며, 4대 궁궐 중 역사경관림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궁궐이라고 한다.

 

창덕궁 안내소 옆의 은행나무

회나무, 창덕궁의 회나무는 수령이 3, 400년 된 10여 그루가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학자의 기개를 닮아 학자수 나무라고도 한다.

느티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 우리나라 고목 중에서 느티나무가 가장 많고 창덕궁에도 느티나무 고목이 30 여 그루가 있다고 한다. 나무의 황제라고 한다.

 

 

700년된 향나무, 왼쪽에 뻗은 나무 가지가 원숭이 모양이라고, 그렇게 보이던가? 향나무는 속을 긁어 향을 피우기 위해 키웠다는데 얼마전 태풍에 꺽인 모습이 오히려 동궐도에 있는 그림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고 향나무는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성스러운 나무라고 한다.

 

은행나무

측백나무

느티나무

반송

 

양쪽에 작은 앵두나무, 봄에 가장 먼저 열리는 열매가 앵두라고 한다. 세종대왕께서 앵두화채를 좋아하셔서 아들 문종이 아버지를 위해 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살구나무

만첩홍매화, 명나라 군인이 심었다는 나무의 그 후손 나무인 듯 하다고 한다.

소나무

소나무

반송

자두나무(오얏나무)

매화나무

매화나무

 

창덕궁의 뽕나무는 2006년 4월 6일 천연기념물 제471호로 지정된 창덕궁의 후원에 있는 뽕나무 1그루로, 조선시대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심은 나무 중 하나로 수령은 400년 정도이며, 나무높이 12m·가슴높이 줄기둘레 2.4m(지름 73㎝)로 뽕나무로서는 보기 드문 노거수일 뿐만 아니라 창덕궁 내 뽕나무 중 가장 크고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라는데 다음에 후원 관람 예약하고 가봐야겠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와 함께 누에를 쳐서 그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짜는 일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1409년(태종 9)에 나라에서는 중국 주나라 성왕 때 실시한 공상제도를 본따 궁궐 후원에 뽕나무를 심게 하고 백성들에게도 양잠을 권하였다고 ≪태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는 창덕궁에 1,000여 주·경복궁에 3,590주·밤섬에 8,280주의 뽕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성종실록≫에도 왕이 후원에 뽕나무를 심게 하고, 왕비가 친히 누에를 쳤으며, 인간에게 처음으로 누에 치는 법을 가르쳤다는 양잠의 신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친잠례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예로부터 양잠은 나라의 중요한 산업이었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뽕나무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1911년 창덕궁 서향각에서 친잠례를 거행하였으며, 주합루에서도 1939년까지 친잠례 행사가 있었다. 창덕궁의 뽕나무는 조선시대 양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왕비가 키우던 수많은 뽕나무 중의 하나로, 양잠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목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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