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부근에서 내려와 깔딱 고개에서 불암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초행이라 길이 어떠한지 모르니 조금은 염려되었지만, 천보사 쪽도 당고개 쪽에서 올라오는 길도 무난하였으니 이 길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내려갔는데 위험한 구간 없이 길이 좋았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 있다. 누가 살던 곳인가? 철거라도 하지 으슥해 보이는 게 흉물스럽다.
석천암 길림길
와 ~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거대한 바위가 용케 버티고 있어 지나가는데 불안하다. 저 아짐도 신기한 듯 쳐다 보며 지나간다.
장마철에는 물이 흘러내릴까? 워낙 가물어 계곡에도 물이 말라 물줄기가 잘 안 보인다.
예쁘다. 초록이 있어 빨간 단풍이 더 돋보인다고나 할까?
드디어 불암사에 도착하였나 보다. 너무 오래전에 다녀왔던 터라 절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저 가는 줄기가 커다란 호박을 매달고 있다. 호박이 예쁘게 잘 생겼네. ㅎㅎㅎ
절 마당에는 뜻하지 않게 국화가 가득하다. 국화 축제라도 하나? 불자들이 꽃 공양을 하여 불암사 국화 향기 나눔 전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약사전
부처 佛
대웅전 앞
대웅전
본존불인 석가모니불 좌우에 협시불로 오른쪽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왼쪽에는 부처의 덕을 상장하는 보현보살
포대화상은 중국의 승려로 본명은 계차, 몸집이 뚱뚱하며,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양을 하였으며, 말이 일정치 않고,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하였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길흉 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한다. 916년 3월에 명주 악림사 동쪽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미륵진미륵 분신백천억 시시시시인 시인자불식(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이라는 게송을 남기고 사망. 그 때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칠성각
지장전
지장전은 명부전 또는 시왕전이라고도 하는 전각으로 명부란 염마왕이 다스리는 유명계 또는 명토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낛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이다.
부처의 가슴에 있는 길상의 표시 卍
마애삼존불
석가 사리탑
불암사에서 절 일을 하시는 처사께서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다고 하셔서 한 컷 인중 샷!!
관음전
제월루
제월루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
불암사 사적비는 1731년에 세워진 것으로 불암사에 남아있는 유적 중에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이 사적비를 통해 불암사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불암사는 신라 824(헌강왕 16년)에 지증국사(824-882)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어 신라 말 도선국사(827-898)가 한차례 중건하였으며 다시 고려 말 조선 초 무학대사(1327-1405)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창기의 기록을 증명할 만한 아무런 유적은 남아 있찌 않다. 또 이후 18세기까지의 연혁을 알 수 있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 없다.
이제 어둠이 점점 내리고 있어 발걸음을 재촉며여 내려간다.
주차장에 도착
천보산 불암사 일주문, 불암산이라 하지 않고 또 다른 이름 천보산이라고 되어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다. 어둠이 짙어가고 사람의 발길도 끊어지고 있지만, 산을 다 내려온 후라 다행이다. 어서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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