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어학 사전에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이라고 되어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
약속은 지켜야 된다고 인식이 되어있지만,
때로는 피치 못해서 지키지 못할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약속을 너무 쉽게 하고 너무 쉽게 저버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도 살아오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나는 내가 지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개중에 사람은 지키기 어려울 걸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약속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순간 모면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존심에 그렇게 약속을 하는지
아니면 약속의 중요성을 모르고 약속을 난발하는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개념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 판단은 자신의 몫이 아닐까.
며칠 전 그다지 중요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 약속을 하면서 가슴 설레 한 날이 있었다.
그동안 지내오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로 말미암아 이런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이라
어이없고 황당하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애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을까?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일까?
그래서 오래 지내봐야 사람 속을 알 수 있다고 했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나?
나하고 애해 관계가 걸려 불편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 신뢰하며 너무 잘 지내왔는데
어떻게 약속을 그렇게 하고 저버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후, 친구들이 생일 축하금을 챙겨줘서
그동안 친구들에게 가끔 내가 사진을 찍어서 뽑아준 사진이 제법 있기에
고마움의 답례로 앨범을 사서 나눠줬는데
농담으로 택배비 아끼자며 그 친구는 겸사 겸사 만나서 주기로 하였다.
일을 보고 지방에서 올라올 때 3시쯤 전화해서 도착 시간과 장소를 정하자고 했고
나는 그 친구 만날 생각에 설레어 그 친구 줄 물건들을 챙겼다.
아는 언니가 담가 준 간장 게장도 반 덜어서 통에 담고
청양 내려가서 뜯어 온 말린 고사리와 머위대도 데쳐서 챙기고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3시, 4시, 5시 . . .
그 날이 다 지나가도 전화든 문자든 감감무소식이었다.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다음으로 미루자든 어쩌자든 할 텐데
왜 연락이 없지? 그럴 친구가 아닌데 . . .
내가 전화를 해볼까도 했지만, 일이 끝나면 하겠지 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하루가 저물고 연락이 없자, 우리 싸가지
"엄마, 나간다더니 왜 연락이 없어?"
"일이 바빠서 일찍 못 올라오나 봐."
"그럼 전화 연락이라도 해줘야지, 연락도 안 하는 건 뭐야?"
"그러게 . . ."
그런데 그 날도 아니고 그 다음 날 아침도 아니고 낮도 아닌
밤 10시 가까이 돼서야 전화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늦게 올라왔다며 다음 날 만나자고,
연일 꽉 찬 일정이 있는 것을 아는지라 다음에 보자고 몇 번을 말했건만, 미안해서인지
굳이 내일 보자고, 내가 안 나겠다고 하는데도 우리 집 근처로 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약속 아닌 약속을 한 다음 날
나는 또 그 친구 줄 물건들을 챙겨 담고 연락이 오면 나갈 준비를 하고 기다렸는데
그 다음 날에도, 그 친구 집 쪽으로 오라든지 우리 집 쪽으로 오겠다던 연락이 없다.
첫 번째 약속에서는 내가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그 친구 일정을 알기에 올라오면 전화하겠지.
괜히 바쁜데 내가 전화해서 신경 쓰이게 하면 어떻게 하나 그냥 기다리지, 했고
두 번째 약속한 날에는 전날 실망스러움에 전화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연락 올 것으로 믿고 기다렸다.
정말 그동안 내가 봐 온 대로의 친구라면
전날 산행하고 다음 날엔 동네 어른들 모시고 관광 다녀온 후라 피곤하겠지만,
적어도 전날 연락도 없이 약속을 저버렸으니 두 번째 약속은 지켜야 했다.
아니, 애초에 두 번째의 그런 약속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연이틀 산행에 관광에 피곤할 테니까 다음에 만나자 했으면 그렇게 해야 했다.
그랬다면 나한테 실망을 안겨주지도 않았고, 그 친구는 믿음을 깨게 되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나라면 직접 그 친구 동네로 찾아가서 전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함에 해명과 사과를 했을 것이고
지키지 못할 상황이든지, 어려울 것 같으면 무리하게 그런 약속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 같은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섣부른 약속이 좋은 관계를 깨게 되었다.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고 그랬는데, 겪어 봐도 모르는 게 사람 속이라 했는데
나는 사람을 만나면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이용 당하고 상처를 잘 받는다.
앞으로 이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다른 친구들과 늘 함께 만나게 되는데 . . .
왜 그랬느냐고? 변명할 기회라도 줘야 하나? 하지만 묻고 싶지 않다. 변명은 변명일 뿐이니까.
내 성격에 이런 상황을 만든 그 친구가 용납이 안 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런 일을 겪은 나 자신이 용납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나는 용서라는 것에 인색하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을 알지만,
완벽을 추구하며 나 자신을 볶는 그런 성격이라, 나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용서는 인색하다.
그런 내게 이런 일이 생겼고 이렇게 연락도 없이 바람맞아보는 건 처음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연거푸 바람맞아보는 건 더더욱 내 평생에 처음 겪는 일이라서
별일도 아니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믿음과 신뢰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것에
황당하고 어이없는 현실, 배신감에 앞으로는 예전같이 좋은 낯으로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내게 보여준 모든 것이 가식이 아닌 진실이기를 믿고 싶다.
무참하게 짓밟힌 마지막 내 자존심을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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