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이번이 세 번째인가? 가족 여행 중에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렸으니 아, 네 번째구나.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전주와 인연을 맺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텐데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싫어서 좋은 일터를 마다하고 행여 이모부께서 붙잡을까?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듯 서울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때는 전주가 참 작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전주는 몰라보게 발전이 되어서인지 많이 커진 것 같다. 이번 전주 여행은 평택 아이가 안양에 있다가 갑자기 전주로 이감을 가게 되어서 그 아이 보러 갈 겸 겸사겸사 해서 여행 일정을 잡아 내려가게 되었다.
전주는 마한시대 이래 호남지방에서 규모가 큰 고을로 그 이름은 마한의 원산성에서 유래했다. 40여년간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던 고향이라는 이유로 완산유수부로 개칭되기도 했다. 전주 볼거리 중 덕진 공원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건지산, 가련산 사이에서 전주의 기맥이 북서쪽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든 인공호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는 전주천의 유로변동으로 생긴 전주천의 하적호로 보고 있다. 그래서 덕진 공원 호수는 고려시대부터 조성된 연못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고 덕진 연못은 전체 면적이 약 10만㎡정도 되는 큰 연못으로 전주팔경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여름이면 4만3천㎡정도의 연못 절반이 연꽃으로 뒤덮이며 장관을 이룬다. 평택 아이가 아직 1년 반을 더 수감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몇 번은 더 전주에 갈 예정이니 갈 때마다 전주 근처 여행을 겸해서 다녀와야겠다.
이곳은 정문인데 덕진 공원에는 정문, 남문, 중문, 동문, 후문 다섯 개의 출입문이 있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예쁜 새악시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손님맞이를 한다. 어디 보자. 누가 제일 예쁜고?
3층 석탑, 이 석탑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익산군 왕궁면에 있었으나 1922년에 전주객사인 풍패지관으로 옮겨졌다가 현재 이곳으로 다시 옮겨진 것이다. 높이는 277cm 내외이며 탑신과 옥개석은 원형 그대로이고 상륜부에는 노반을 얹었으나 하대석은 다른 돌로 만들어져 그 원형을 알 수 없다고 한다.
江 / 여기 서면 태고의 숨결이 강심에 흐려 어머니, 당신의 젖줄인양 정겹습니다. 푸른 설화가 달무늬로 천년을 누벼 오는데 기슭마다 아롱지는 옛님의 가락 달빛 안고 하얀 눈물로 가슴 벅차 웁니다. 목숨이야 어디 놓인들 끊이라마는 긴 세월 부여 안고 넋으로 밝혀 온 말간 강심 어머니, 당신의 주름인양 거룩하외다. 걷어 올리면 신화도 고여 올 것 같은 잔물결마다 바늘짜는 옛님의 고운 가락 구슬로 고여 옵니다. (신근 시비)
네 눈망울에서는 /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五月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롱 초롱한 별들의 이야기가 있다. 네 눈망울 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종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 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서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신석정 시비)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김개남 장군 추모비, 1853(철종 4년)∼1895(고종 32년). 조선 말기의 동학농민운동가
전봉준은 1855(철종 6)년∼1895(고종 32년).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로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지금의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겨울이라 공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썰렁한 느낌이 들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넓고 볼거리도 많다.
덕진 공원의 현수교에는 광섬유 조명이 가설돼 한여름밤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24시간 개방한다고 한다.
현수교를 중앙으로 한쪽은 연밭이고 한쪽은 오리 보트를 탈 수 있는 물놀이장이다.
현수교 가운데의 연화정은 편의 시설용 건물로 매점과 전시실이 있다. 겨울이라 매점만 운영하고 3층으로 올라가서 공원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연화정에서 본 현수교와 주변 풍경들
연화정 옆에 있는 섬(?)의 나무들
이제 현수교를 건너와서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자.
어라? 나무가 묘하게 꼬여있다. 얘들이 왜 이러고 있느냐?
평상도 있어서 소풍삼아 와서 하루 놀다가도 좋을 것 같다.
하늘의 구름이 참 묘하다. 빛갈라진 것 같이 길게 뻗어있다. 그런데 구름 맞는 겨?
연화교, 나무 태그 길을 따라 연밭으로 들어가 본다. 이쪽 저쪽으로 나무 다리 길을 만들어 놓아서 연꽃 필 때 걸어면 정말 환상적일 것 같다.
연화정
연지정
연지교를 돌아나와니 파고라 앞에 연꽃 그림으로 꾸며진 전기 시설물이 있다. 그냥 두면 눈에 거슬릴 것 같은데 이렇게 치장해 놓으니 예쁘다.
추산 김일두 기적비, 1907년 원주 민긍호 의진에 참여한 이래 만주 및 상해에서 의열투쟁, 군자금 모집 등에 노력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영희 장군 공덕비
공원 내에서 도박을 하지 마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런데 저 비닐 천막은 뭔가? 가까이 가보니 현수막 앞에서 버젓이 도박을 하고 있는 곳이다.
전주 시민의 자부심은 어디로 갔나? 남녀노소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인데 어찌 저럴 수가 . . .
손화중 장군 추모비 / 사람이 한 울이다. 손화중은 1861(철종 12년) ~1895(고종 32년), 정읍 출생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 남접 농민군 최고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동학농민전쟁 시 전봉준과 함께 농민군을 이끈 장군이다.
한 바퀴 돌아오니 취향정이 보인다.
취향정은 1917년 친일파 박기순이 자신이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덕진 연못 주변에 건립한 정자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사도 법관' 바오로 김홍섭 선생.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과 '검찰의 양심' 화강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전라북도가 배출한 이들 '법조 3성이다.
카톨릭 신자였던 '사도 법관' 김홍섭 선생은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양심을 바탕으로 재판을 했으며 교도소 수감자들을 사랑으로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로 법조계와 신앙계의 모범이 돼왔다.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가를 무료 변론한 김병로 선생은 광복 후에는 반민족특별법에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을 공개 비판하는 등 불의에 항거해 국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1949년 서울지검장 시절 최대교 선생은 사기·수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임영신 상공부장관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이 기소하지 말라며 법무부장관 등을 통해 수사에 대한 압력을 넣자, 이에 굴하지 않고 임 장관을 기소하는 등 검찰의 양심을 지킨 법조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화 - 김경일作
꿈, 희망 - 최용진
오리 토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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