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모를 때는 무모할 정도로 겁 없이 설악산에 올랐지만 이제 산을 알기에 두려운 마음에 겨울 설악산을 가지 못 하였다가 한 번 가보고 나니까 겨울 설악이 어떻게 변해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하얀 눈 산을 상상하며 갔는데 생각보다 눈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다시 가고 싶은 마음에 또 갈까? 하는 미련이 남아 눈도 왔다고 하니까 더 마음이 설악산을 향하고 있어 대피소 예약 현황을 열람하였다.
오잉? 자리가 있네. 갈까? 말까? 설 연휴인데 가자니 그렇고 안 가자니 마음이 자꾸 설악산에 가 있어 설악산 홈에 들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또 가게?" 우리 싸가지가 툭 던진 한 마디에 차마 또 가겠다는 말이 안 나와서 "아니, 그냥 본 거야. " 했다. 이제 이달 28일이 지나면 올
겨울 설악산은 마지막이될 텐데 내년 겨울은 그때 가서 가든말든 하고 마지막 날이 가기 전에 다시 가야겠다는 마음에 대피소 대기 신청해놨다.
대피소 예약이 되면 가고 안 되면 말고 설악산이 나를 오라 한다면 다시 가마 했는데 딩동 ~ 밤에 뜬금없는 메시지 들어오는 소리에 혹시나? 하고 봤더니 중청 대피소 예약 전환하라는 문자가 들어온 것이었다. 문자 보며 혼자 웃으며 설악산이 나를 오라고 하는데 내가 가줘야지. ㅎㅎㅎ
설 연휴에 눈이 많이 왔던데 그새 눈이 다 녹아 버리고 없네. 에효 ~
설 연휴 전후로 간 사람들 사진 보니까 이 길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던데 우째 다 녹아 버린 겨? 지난번에는 1.5km쯤 올라가서 아이젠을 착용했는데 이번에 더 녹아서 2km는 올라가서 아이젠을 착용했고 눈도 더 녹고 사람들의 발자국에 눈이 많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니까 봄이 오고 있는 것 처럼 들리고 뭔가 알 수 없지만 봄의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자, 또 대청봉을 향해 출발 ~
어이구야 ~ 낙엽이 쌓여있어 미끌했다. 어디 있던 낙엽이 여기로 다 모인 거여? 지난번엔 없었는데 . . .
사람의 발에 밟혀 너무 많이 훼손되어 복구공사 후 변화된 사진을 보니까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많이 훼손시키는지 새삼 또 깨닫게 한다.
이제 혼자 다니기에 내 건강이 염려되어 그동안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을 피해 다녔지만, 요즘엔 가능하면 주말에 산행하므로 함께 오르는 사람들이 사진 속에 자주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이 사진 속에 들어오는 걸 피해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 소모가 많았다.
이제 1km 올라왔다. 남들은 대청봉까지 보통 4시간, 조금 더 걸리는 사람은 5시간이면 올라간다는데 나는 죽었다 깨나도 그 시간은 안된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다 보면 건너편에 보이는 산들이 있다. 예전엔 점봉산이려니 했는데 어떤 분이 망대암산이라고 일러준다. 예전엔 망대암산을 오를 수 있었는데 요즘엔 점봉산과 함께 비법정 탐방 구역으로 가면 안 되지만 의외로 점봉산과 연계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전에 사용하던 로프나 보조물들을 다 철거해서 위험하다고 하는데 용케 관리소 직원 눈 피해 잘도 다니는 것 같다.
1.7km 지점, 지난번에 왔을 때는 눈이 하얗게 쌓여 버티고 올라왔던 사람들도 이곳에서 아이젠을 다 착용했는데 오늘은 그냥 올라간다.
다른 나무들은 대부분이 혼자 서있는데 이 나무는 모여있는지 무슨 나무일까? 지나가면서 늘 눈에 들어온다.
어라? 지난번보다 겨우살이가 더 많네. 내가 못 보고 지나쳤나? 이 앞에 나무에 있는 것은 카메라에 담아 갔는데 . . .
에구 ~ 이제 1/3 올라왔다. ㅎㅎㅎ
어라? 사람들이 쉼터에 모여있네. 왜 그럴까? 쉬는 건가? 하고 가보니까 다들 아이젠 착용을 하고 있었다. 쉼터 아래 계단을 내려가면 급경사로 여긴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한 사람씩 아이젠 착용 후 출발하고 나도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앞에 있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젊은이 중 한 사람은 그냥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썰만 풀고 있기에 "친구 분은 아이젠 안 신어요? " 하니 자기는 안 신어도 된다고, 어이없어 하니까 아이젠 착용 중인 친구가 "이 친구는 특전사 출신이라 괜찮대요." 한다.
특전사 출신이 걸어가면 눈길, 빙판길이 모래길이 되남? 아집이 강한 젊은이인 것 같다. 그러다 다치면 본인도 고생이지만 애궂은 사람들 고생 시킬 텐데 하며 나도 출발하니 계단 아래가 빙판이져 낙상하기 딱이여서 뒤따라 내려오는 젊은이한테 "특전사 친구 아이젠 착용하라고 해요." 하고 내려오는데 뒤에서 "야, 너 아이젠 신어야겠다. 여기 엄청 미끄러워."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잘난 친구도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왔다.
저 아저씨 우리들이 아이젠 착용하는데 그냥 내려가더니 되돌아 올라온다. 미끄러워 못간다며 . . . ㅎㅎㅎ
지난번에는 눈길이 깨끗하였는데 다녀온 후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흙 때가 많이 묻었다.
대청봉 2.7km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얼음이 눈에 살짝 덮어있어 뒤돌아서 위를 보니
우와 ~ 얼음 폭포다.
계곡 밑에서도 봄은 오고 있는지 눈을 헤치고 옹달샘같이 물이 흐르고 있다.
큰 바위가 반으로 쪼개져 있는데 그 사이로 눈이 쌓여있고 고드름까지 달려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한 번 읽어 보고 올라간다.
야호 ~ 2km 남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지, 아무리 거북이라지만 너무 하는 거 아냐?
내려오는 분께 부탁해서 인증 샷!!
산토끼가 내려갔나? 두 발을 모으고 깡총깡총 뛰어내려간 것 같은 발자국이 있다.
어떤 사람이 휘파람을 부니까 동고비들이 내려와 땅콩을 물고 간다. 신기해 하며 너도 나도 손에 땅콩을 놓아두니까 새들이 하나씩 물고 간다.
먼저 올라와서 올라오는 사람을 보고 있지만, 내 앞을 지나면 모두 나를 앞질러 간다. ㅎㅎㅎ
이 계단을 올라가면 중청봉이 보인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가면 중청봉이 잘 보인다. 다른 계절에는 바위가 날카롭고 좁고 벼랑이라 건너가기 위험해 시도해 보다가 포기한 곳인데 이번엔 눈이 덮어있어 발자국 따라 조심조심 들어가니까 중청의 공 안테나뿐만 아니라 중청대피소까지 보이는 게 아닌가.
처음엔 오른쪽 아래 저 게 뭐지? 집인가? 나무같은 것 쌓아 놓은 건가? 했는데 크게 확대해서 보니까 놀랍게도 중청 대피소였다. 아, 중청으로 올라갈 때 왼쪽 골짜기 넘어 산이 오색 길이구나. 오색 길을 여러 번 다녔지만 이번에서야 알게 되었다. 눈이 쌓여있는 덕이다.
중청봉의 공 안테나와 그 아래 중청 대피소
대피소 건물 뒷편 화장실 쪽이 보인다.
나무 가지가 요상하게 뻗어 있다. 밑에 눈이 쌓여 보이지 않아서 그리 보이나?
이 나무도 하늘을 향해 가지를 안 뻗고 옆으로 뻗어있네.
대청봉 500m, 남들은 날아가련만 나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ㅎㅎㅎ
정상이 가까워 오니까 주변 산들이 보이지만 운무에 가려 맑게 보이지 않는다. 내일 눈온다고 했는데 . . .
아, 이제 저 곳까지 올라가면 대청봉 정상이다.
올라온 길도 돌아 보고 . . .
대청봉 정상의 이정표
지난번 대청봉 칼바람에 사진도 못 찍고 내려가서 이번에 고글까지 다 챙겨 중무장하고 왔더니 웬 걸? 기세 등등하던 쌍칼 바람은 어디가고 봄바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순한 바람이 부는 것이였다. 뭐냐고? 그 고약하던 바람은 어디 간겨?
한 무리가 정상석을 차지하고 있어 기다리는 동안 주변 풍경을 담고 나도 대청봉 인증 샷 하러 올라간다.
사람들이 다 내려가고 구도를 잡아주고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니 찍고 나서 보고는 이렇게 찍으니까 더 좋다며 자신도 이렇게 찍어 달라고 하더니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찍으니까 좋다며 다 나처럼 찍어준다. 뭐냐고? 따라 하기야? ㅎㅎㅎ
인증 샷 하고 대피소로 내려 간다. 지난번에는 쌍칼 바람이 나를 술취한 사람같이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고 비틀거리게 하더니 오늘은 얌전하다.
아,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얼어서 발 딛기가 너무 조심스럽다. 하산할 때 만난 어떤 사람이 여기를 내려오다 미끄러져서 조금 다쳤다고 했다.
이제 다 내려왔다. 살방살방 여유있게 대피소로 go go . . .
대피소로 가면서 돌아 본 대청봉
또 돌아 본 대청봉
중청 대피소 앞에서 본 대청봉
중청 넘어로 해가 지려고 한다. 곧 어둠이 내리고 설악산에도 밤이 오겠지. 오늘 밤에 눈이 온다고 했는데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벽 시간 대에 오고 아침에 개인다고 했지만, 너무 많이 와서 하산 때 위험할까봐 걱정이다. 딱 좋을 만큼만 왔으면 . . .
중청봉으로 올라가는 저 사람들은 같이 오색으로 올라 온 어떤 산악회 회원들인데 이번엔 열다섯 명이 오게 되었지만, 중청 대피소 예약을 못해 소청 대피소로 간다고 했다. 내일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갈거라고 하고 한 아짐이 내게 호의적으로 다가와 나를 기다려주기도 하고 쉴 때는 붙임성있게 말을 건내곤 하였다. 중청 대피소 앞에서 헤여질 때도 내일도 안전 산행하라는 인사말도 해주고 갔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미리 양념해 볶아서 간 것에 물만 붓고 끓여 먹었는데 다른 반찬이 없어도 꿀맛이다. 이렇게 저녁 밥을 맛있게 먹고 대피소 침상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는 듯하다. 온몸의 피가 편하다는 듯 사르르 퍼져 흐르는 것 같다. ㅎㅎㅎ
이번엔 대피소에서는 지난번같이 술주정뱅이는 없었는데 꼴불견은 하나 있었다. 어느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인데 남자 회원 한 사람과 내 옆 자리에 배정 받은 여자 회원이 서로 필이 통했는지 남자 침상, 여자 침상 구분해서 배정을 하는데 여자 회원 앞에서 자기 자리로 가지도 않고 커피 한 잔 더 하자는 둥 어쩌고 저쩌고 한참 썰을 풀더니 미리 빈자리를 눈여겨 봐두고는 소등하니까 둘이 담요 들고 빈자리로 가서 같이 붙어 자더라는 것이지. 그 여자도 참 그렇다. 산에까지 와서 외간 남자와 그래야 하는지, 남자들 침상에 담요들고 가서 그렇게 붙어자야 하는 건지 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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