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 혹은 ‘꼭두머리’ 같은 말을 우리는 흔히 사용한다. ‘꼭두’란 낱말의 본뜻이 궁금해진다.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2층에 자리한 꼭두박물관을 방문하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꼭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꼭두를 통해 관람객들은 우리 전통 속에 숨겨진 색다른 문화를 재발견하게 된다. 최근에는 북촌한옥마을에도 분관이 들어섰다.
꼭두박물관 전시실 입구의 꼭두 그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꼭두
꼭두박물관의 상설전시장에서는 ‘조선 후기 꼭두전’이 열리고 있다. 꼭두란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사용되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각종 꼭두들이 장식된 상여가 하나 놓여 있다. 이는 여러 고증 자료와 박물관의 소장 유물을 활용해서 제작한 목상여다. 장정 24명이 멜 수 있는 이 상여는 춘양목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상여에는 박물관이 소장한 68개의 꼭두가 장식돼 있다. 이 나무 조각상들은 다양한 인물상과 동식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상여에 장식된 꼭두의 모습을 각각 살펴본 후 꼭두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한다.
‘꼭두’라는 말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사전적으로는 가장 빠른 시간이나 물체의 가장 윗부분을 뜻한다. 또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단어가 순수 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서양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만만치 않다. 그 유래야 어찌됐든 꼭두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이 세상이 아닌 초월적 세상을 연결하는 존재로 통한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서양의 종교에서 말하는 천사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꼭두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옛날부터 근대 초기까지 장례식 때 상여에 사용되던 꼭두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장례 행렬 모형
꽃상여 옆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한국의 전통적인 장례 행렬’도 눈길을 끈다. 지금은 참으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을 인형과 모형으로 실감나게 재현해 놓았다. “여기 먼 곳으로 떠나는 분과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행여 가시는 그분 안전에 누라도 끼칠 새라 방상이 쉴 틈 없이 길을 트고 있구나”로 설명문은 시작된다. 명정, 만장, 상여… 꼭두도 이 행렬의 어느 한 자리에 끼어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 모두를 위로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전통이었으나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상여를 메고 마을길을 흥겹게 지나가는 모습은 저 멀리 진도쯤에서나 겨우 만나볼 수 있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날갯짓하는 봉황과 꿈틀거리는 용
상여는 전통 장례식 때 망자를 운구하는 도구이다. 즉 돌아가신 분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상여는 두렵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예부터 상여를 보면 재수가 좋다거나 새로 만든 상여를 타면 오래 산다는 얘기가 전해오기도 했다. 상여를 장식한 꼭두들은 저마다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
(왼쪽) 불꽃의 새를 상징하는 봉황 / (오른쪽) 수호신의 상징인 용수판
꼭두의 종류는 크게 인물꼭두와 동물꼭두로 나뉜다. 동물꼭두의 대표적인 예로 봉황과 용을 들 수 있다. 봉황은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다. 봉황의 날개와 볏이 불꽃처럼 하늘로 날아가 영혼을 인도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신령스러운 봉황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나는 망자의 영혼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여기기도 했다. 봉황을 조각한 봉황꼭두는 상여의 앞뒤에 장식되었다.
그럼 용은 어떤 역할을 할까. 봉황과 마찬가지로 용도 신비한 힘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다. 용이 새겨진 용수판을 상여에 장식하면 나쁜 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상여의 앞뒷면을 장식하는 용수판에 조각된 용은 청룡과 황룡이 서로 뒤엉켜 있는 형상이다. 이 용들은 엄청난 생명력을 발산하는 듯하다.
떠나는 영혼을 인도하고 위로하는 존재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인물상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꼭두인물상은 사람을 닮았지만 실은 인간이 아닌 초월적 세계와 연관된 이미지이다. 인간 세상과 초월적 세계를 연결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상여에 장식된 꼭두인물상은 네 가지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첫째, 저승으로 건너가는 여행자를 안내하는 일을 한다. 둘째, 캄캄한 길을 갈 때 주위의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 셋째, 여행 중 거추장스러운 허드렛일을 믿음직스럽게 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는 영혼을 달래주고 즐겁게 해준다. 이러한 임무를 해내는 네 종류의 꼭두들은 저마다 독특한 몸짓이나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왼쪽) 길 안내를 하는 꼭두 / (오른쪽) 묘기를 부리는 꼭두
길 안내를 하는 꼭두들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길을 안내하기 위해 용이나 말을 타고 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주는 꼭두들은 초월적인 힘을 과시하기 위해 대부분 험악한 표정을 짓거나 무서운 무기를 들고 있다.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꼭두들은 힘든 일, 귀찮은 일도 마다않는다. 그들의 얼굴에는 늘 맑고 밝은 표정이 담겨 있다.
꼭두 중에서 가장 즐거운 형상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꼭두들이다. 이들은 여행자들의 마음으로부터 슬픔을 걷어내기 위해 묘기를 부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망자를 달래준다. 상여에 장식된 꼭두들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큼 따뜻함을 내비친다. 그 이유가 뭘까 살펴보면 꼭두들이 하나같이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풍기는 따뜻한 기운이 나무의 질감과 잘 어우러진다. 전시물과 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둘러보면서 이승과 저승,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는 꼭두를 창조해낸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청계천 골동품 가게에서 시작된 인연
우리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품은 꼭두박물관의 유물들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순회 전시를 다녀왔다. 전통 민속공예품인 꼭두와 상여가 현지인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2012년에 개최된 런던올림픽의 한국문화축제 기간 동안에 초대된 꼭두유물전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예술 감각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어떤 예술품에 견주어도 창조성과 예술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꼭두박물관 김옥랑 관장은 꼭두와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한다. “1970년대 후반의 일이죠. 올바른 삶의 방향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때 청계천5가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꼭두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버려지다시피 한 그 꼭두에서 제 삶을 이끄는 방향을 찾았어요. 그 후로 소박하면서고 익살스러운 꼭두에 마음을 빼앗겨 수집하기 시작했고, 되살리는 작업도 병행했습니다. 1984년에는 ‘낭랑’이라는 꼭두극단을 창단하기도 했지요.”
전시실 관람 후에는 봉황 마그넷, 꼭두 캔들, 호랑이와 꼭두, 하늘을 나는 용, 빛상자 수호등, 꼭두 애니북 만들기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비용은 5,000∼8,000원 선이다. 박물관 직원이 옆에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니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어린 유치원생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서울의 북촌한옥마을에 ‘꼭두랑한옥’(종로구 가회동 31-45)이라는 꼭두박물관 분관이 문을 열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꼭두의 세계와 한옥의 구조 등을 둘러본다. 동숭동의 꼭두박물관 본관을 관람한 후 낙산공원의 서울성곽을 산책하고, 꼭두랑한옥 관람 후에는 북촌한옥마을이나 삼청동길 산책을 추천한다.
갤러리
여행정보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 한남대교 → 동국대 입구 → 흥인지문 → 혜화역 → 동숭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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