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다. 미쳤어.
달밤에 체조 한 겨? 그것도 집 마당도 아니고 캄캄한 산속에서?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미치지 않고서야 멀쩡한 정신으로 어떻게 그 밤에 산엘 올라가?
그것도 여자 혼자서 . . .
그렇다. 내가 미쳤나 보다. 북한산 백운대 일출이 늘 보고 싶었다.
백운대 일출 보러 올라가야 하는데 언제 올라가 보나?
가끔 백운대를 생각하면 문득문득 일출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 가는데 내가 못 갈 이유 없지? 까짓것 죽기 아니면 살기지.
죽고 사는 것도 다 내 운명이고 내 팔자야. 정해진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래, 가자. 가는 거야. 라고 마음을 먹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오후에 미리 잠 한숨 자 두고 남들 자는 시간에 일어나 배낭을 꾸린다.
얼음물 땡땡하게 얼리고 아침 도시락도 싸고 몇 시간 산에 있으려면 먹거리도 챙기고
새벽 2시 반이 넘었는데 버스는 다닐 리 없으니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 도선사 가주세요." 하니
"도선사까지는 못 올라가는데요." 김새게끔 왜 못 올라간다는 거야?
"아저씨, 왜 못 올라가요? 다른 택시 다 올라가는데 아저씨는 왜 못 올라가요?" 하고 따지니
이 시간에 절에 가세요? 산에 가세요? 엉뚱한 소리를 한다.
엄숙(?)한 마음으로 백운대 야간 산행에 도전하느라 그렇잖아도 긴장 되는데
어차피 갈 것을 왜 심기 불편하게 헛소리를 해서 기분 상하게 하는지.
얄미워서 우수리 잔돈을 받지 않을 생각으로 탔는데 얄미워서 100원짜리까지 다 챙겨 받았다.
도선사에 도착하니까 2시 50분이 돼가고 있고 등산화 끈 단디 매고 스틱 뽑아 챙기고
자, 백운대를 향하여 출발 ~
그.런.데 칠흑같이 어두운 숲을 들여다보니 워매 ~ 뭐가 저렇게 시커먼 겨?
설악산은 어두워져도 하늘이 열려있어서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여긴 왜 이렇게 겁나게 깜깜 하다냐?
woo ~ c 괜히 왔나? 기다렸다가 사람들 오면 쫓아 올라갈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에이 ~ 그래도 그렇지.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는 안 되지.
아자 아자!! 죽기 아니면 살기다. 올라가자. 하고 성큼성큼 어둠으로 들어가는데
그렇잖아도 새가슴이 콩닥콩닥 두 근 반 세 근 반 벌렁벌렁.
그래, 두려워하면 무서운 거야. 두려워 하지 말자.
하늘에서 엄니가 보고 계실 거야. 우리 딸 장하다고 하시면서 보살펴 주실 거야.
그렇지. 엄마?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커먼 어둠뿐이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다 보니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와
어느새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니 잡념도 생기지 않았고
해 뜨는 시간, 5시 20분 전에 백운대 정상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과
다치지 않고 등산로 잘 찾아 안전하게 올라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올라갔다.
인수 대피소를 지나는데 산객 한 사람이 올라오더니 당근 나를 앞질러 가고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또 한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간다.
백운봉 암문에 도착, 이후부터는 암릉 구간이라 쇠줄을 잡고 올라가야 해서
스틱을 접어 배낭에 고정 시키고 있는데 산객 세 사람이 또 올라온다.
백운대 일출 보러 온양온천에서 1시에 출발해서 도선사에 도착
3시 20분쯤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를 앞질러 간 사람들도 도선사에서 3시 20분, 30분에 출발하였다고 하니
거북이인 나, 이지만 그렇게 많이 늦은 건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백운봉 암문에서 올라온 산객들과 잠시 쉬면서 초코바 한 개 주는 것도 챙기고
얘기 좀 나누다 보니 하늘 문이 열려서 푸른 빛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제 해드 랜턴과 밴딩이가 준 손전등 없이도 길이 훤히 보여 암릉 구간을 향해 다시 올라가니
주변 산새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정상에 다다르니까 하늘에 붉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5시 10분이 안 돼서 백운대 정상에 도착해서 나를 앞질러 올라간 산객들과 얘기 나누다 보니
서서히 빨간 입술같이 얇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니 산객들 입에서
보인다, 보인다. 나온다, 나온다. 여기저기서 즐거운 소리가 고요를 깨고
카메라든 스마트폰이든 셔터 누르기 경연 대회가 시작된다.
아, 그런데 뭔 심술(?)인고? 해가 떠올라 장관을 연출하기도 전에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지 삽시간에 운무가 휘몰아쳐 오더니
주변을 온통 하얗게 커튼을 쳐버리고 보여줄까? 말까? 살짝살짝 애간장 타게 심술을 부린다.
산봉우리들이 고개를 내밀면 얼른 한두 컷 찍고를 반복하다가
아예 운무가 짙게 가리고 보여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 널널한데 기다리지 뭐, 했는데 바람은 왜 그렇게 센지 바람막이 점퍼를 입어도 덜덜덜
1시간을 기다려도 보여주지 않아서 아침 도시락을 먹고 놀며 놀며 내려왔다.
드이어 하늘이 붉은빛을 뿌리기 시작한다.
사진 초보자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포인트를 잡을 줄도 모르고 그저 셔터만 누르고 있다.
인수봉이 불바다가 되는 것 같다. 멋져부러 ~
그런데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지 삽시간에 운무가 주변을 온통 다 뒤집어 씌우고 . . .
만경대도 겨우 자기 위치를 알려주고 . ..
염초봉도 목을 빼고 산머리를 보여준다.
에구 ~ 점점 더 운무가 몰려와 만경대를 집어 삼키고 있다.
또 산객 한 사람이 올라 오고 있다. 이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산을 찾는 사람들은 뭔가? ㅎㅎㅎ
다시 만경대가 운무 속에서 빠져나와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 또 운무가 장난질을 하네.
백운대 태극기 왼쪽 벼랑 쪽 풍경이다. 하늘은 반사되어 붉은빛을 살짝 머금고 . . .
염초봉 뒤에 노적봉인가?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만큼 맑아졌다.
태극기 오른쪽 바로 뒤의 풍경이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산들이 보이지 않아도 인증샷은 하고 가야지.
3.1운동 암각문은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봉 정상의 화강암 바위에 새겨져 있다. 기록문은 독립운동가인 정재용이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가로 150cm, 세로 270cm 정도의 평평한 바위 위에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네 글자를 새기고, 그 안에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은 기미년(己未年) 2월 10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월 1일 탑동공원에서 자신이 독립선언 만세를 도창했다.”는 내용이 정자체로 새겨져 있는데 몇 십 년 동안 산객들의 발에 많이 훼손이 되어 나무 울타를 만들어 놓았다.
다시 운무의 장난질을 구경하자.
이제 인수봉의 길게 늘어진 꼬리도 보인다.
공룡의 꼬리같이 생긴 게 갈기까지 있다. 우리 집에서 보면 인수봉은 독수리 머리 같이 뽀족하게 보이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사진은 어떤 3부자가 올라오면서 나를 찍은 사진이다. 백운대 정상에서 3부자 사진을 찍어줬는데 우연히 검색하다가 그 아빠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고 얼레? 저거 나 아니여? 하고 아래 사진들을 봤더니 진짜 내가 사진 찍어준 3부자가 있는 게 아닌가. 참으로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미스테리다. 그래서 내 사진이라 살짝 가져왔는데 그 아빠가 진사 한 분이 먼저 올라와 있다는 글과 함께 내 사진을 올려 놓은 것.
"아저씨 저 진사 아니예요." ㅎㅎㅎ
이 사진도 그 3부자 아빠가 찍어주신 사진이다.
바람이 어찌나 거세던지 맑아지길 기다리면서 바위 뒤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아침 밥을 먹으니 뜨거운 커피 한 잔이 간절하다. 백운대 정상의 온도는 18도, 19도를 가르키고 있으니 산 아래보다 10도 이상 낮다보니 한 여름이 아니라 늦가을같은 날씨랄까? 그런데 밥을 먹고 기다려도 운무는 걷힐 생각을 하지 않아 포기하고 내려간다.
바위채송화가 참 많이 눈에 띈다.
바위채송화는 전국의 산 바위 겉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에 분포한다.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바닥을 기면서 자라서 높이 7-9cm정도이다. 가뭄에 강하고, 바위 등에 붙어 자라는 특성을 이용하여 건물의 지붕이나 옥상에 식물을 자라게 하는 녹색 지붕을 만드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꿩의다리는 줄기는 속이 비어 있고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아시아 및 유럽의 온대에서 아한대에 걸쳐 분포한다.
백운대 정상 바로 아래 인수봉 꼬리 쪽에 빨간 꽃이 보여 담아왔는데 처음 보는 꽃이라 무슨 나무인지 궁금하다. 미역줄나무인데 하얀 곷잎은 떨어지고 씨방이 빨갛게 자라는 것이라고 . . .
까치수영은 까치수염, 꽃꼬리풀, 개꼬리풀이라고도 하는데 생육환경은 양지의 모래와 돌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고 종자가 결실되면 꽃대는 종자가 충분히 익을 수 있도록 간격이 더 넓어져 꽃대가 더 길어진다.
올라올 때 잘 보이지 않았던 길을 카메라에 담으며 내려간다.
싸가지 대여섯 살 때 밴딩이가 백운대를 데리고 가서 지금은 쇠줄 난간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난간이 없을 때 이 곳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어 온 게 있다. 오른쪽 바위에 딱 붙어서 찍었는데 그때만 해도 무서운 걸 잘 몰라 따라 다니더니 초등학교 다니면서는 무섭다고 안 간다고 했다.
가파른 철계단
산객들이 올라오는데 백운대 올라가도 아무 것도 안 보일텐데 어쩌나 . . .
내려온 길을 돌아보니 참 험하게도 생겼는데 저런 곳에 우리들이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오리바위, 저 바위에 앉아서 사진을 찍으면 오리 등에 타고 있는 것 같다는데 . . .
백운대는 높이 836m. 인수봉 810.5m, 만경대 787.0m와 함께 큰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북한산을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이 일대는 추가령지구대의 서남단에 해당되는 곳으로, 중생대 쥐라기 말에 있었던 조산운동 때 열선을 따라 화강암이 대상으로 분출한 대보화강암지역이다. 이 일대의 지형은 화강암의 풍화에 의하여 형성된 화강암돔 지형의 대표적인 것으로, 험한 암벽을 노출하고 있다. 화강암돔에는 인수봉과 같이 암탑상의 것도 있고, 백운대와 같이 거대한 암반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백운봉 몸통의 일부
만경대 왼쪽 뽀족한 봉우리에 진사 두 사람이 백운대와 인수봉을 담고 있는데 나도 만경대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만경대는 크라이머들이 장비 갖추고 올라가야 허용이 되는 곳으로 일반 산객들도 저 진사들같이 올라갈 수 있는 코스가 있다는데 길이 어떤지 나도 올라갈 수 있는지 다녀온 사람들의 포스팅을 찾아보는데 마땅한 자료가 없다. 누가 나 좀 만경대로 리딩해주실 분 없나요?
아짐 ~ 위험하게 서서 뭘 보는 겨? 뭐가 보이남?
저 아래 소나무가 멋스럽다. 일단 카메라에 담고 . . .
만경대가 살짝 모습을 보여주니 또 가리기 전에 얼른 찍어야 된다. ㅎㅎㅎ
일행 있는 산객들 사진 찍어줬더니 내려가려다 나도 한 장 찍어주고 가겠단다. 그런데 내가 앉은 바위 뒤가 벼랑이라 그 팀들은 서서 찍었지만 나는 새가슴이라 엉덩이만 살짝 걸쳐서 찍었다. 그래도 멋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나도 찍었다는 것. ㅎㅎㅎ
소나무 쪽에서 보니까 백운대 정상이 앞에 바위 뒤로 보인다. 태극기도 펄럭이고 있고 . . .
왼쪽이 넙적한 게 얼굴 바위라는 건가?
벼랑 쪽만 당겨 찍어 보고 . . .
까치수영과 꿩의 다리가 참 많이 피어 있다.
어라? 밤골로 가는 방향이라고 되어 있네. 밤골이 어디로 가는 건가? 하고 이쪽 길로 올라오는 산객이 있어 물어보니 효자 2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란다. 그럼 나도 안 가봤는데 가볼까나? 하고 내려 서며 다른 분들에게 또 물어보니 숨은벽 쪽으로 해서 효자 2동으로 내려가는 것이라고 혼자 가기에는 좀 조심스러운데요. 한다. 나도 숨은벽 코스가 좀 위험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니 전진할 수 없어 후퇴다. ㅎㅎㅎ
바위 너머로 오른쪽에 인수봉이 보이네. 크라이머들의 말 소리가 활기차게 들린다.
이 꽃은 싸리 종류인가 색도 선명하고 꽃모양도 다른 싸리보다 더 크고 예쁘다. 뭘까?
다시 백운봉 암문이 보인다.
저 빨간 배낭과 스틱은 내 ~ 꺼. 저 바위에 앉아서 한참 쉬면서 간식도 먹고 꽃도 찍고 올라오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 . .
성곽 바위 틈마다 바위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 있다. 아무리 바위 곁에 산다고 하지만 저 위는 어떻게 올라갔을까?
꿩의다리도 질세라 같이 올라가 피어있네.
노란 원추리가 산 기슭에 요염하게 피어 있네. 혼자 외롭지 않니?
배초향은 보통은 방아, 방애 등으로 부른다. 특유의 토종 허브로 오래전부터 약초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곽향이 바로 이 배초향을 말린 것이다
흰색 꿩의다리인가?
밤에 올라갈 때 크리스탈이 부딪히는 것 같이 맑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던 곳이다. 고요 속에서 어찌나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지 . .
솔이끼는 소나무를 닮은 모양이라 솔이끼다. 암그루와 수그루가 따로 있다.
연둣빛 숲 색이 참 예쁘다.
아, 저 짐 지고 올라가는 아저씨, 아직도 짐 나르는 일을 하시네. 2011년 백운대 갔다오면서 버스를 같이 타고 나오면서 잠시 얘기도 했는데 . . .
밤에 올라갈 때 서너번 길을 조금 이탈하기도 했는데 바로 이런 길을 만났을 때 계곡 쪽으로 접어들어 순간 어? 길이 어디지? 하곤 했다.
독일 병정 모자같기도 하고 꼭대기에 작은 오리가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한 인수봉의 또 다른 모습
산객들마다 기념 사진 찍느라 바쁘다. 나도 시간이 많은지라 기다렸다가 부탁해서 한 컷 찍고 내려왔다.
드디어 원점 회기, 무사히 백운대 야간 산행 무사히 마치게 되어 다행이였고 가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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