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고기 사줄까?"
"뭔 고기?"
"약국 아줌마가 매일 소고기 한 두 점씩 먹으면 빨리 피가 만들어진다고 했잖아."
"철분제 먹고 있으니까 안먹어도 돼."
"왜 고기 먹고싶어? 냉동실에 고기 있는데 해줄까?"
"아니, 엄마 먹게 하려고 . . ."
일요일에 꽃집 알바 가면서 싸가지가 하는 말이다.
요즘 뭐든 먹으면 소화가 안되서 별로 당기지는 않지만
꽃집 알바 끝나고 목욕탕 갔다가 고깃집에 갔다.
정작 고기보다 딸려나온 음식을 더 챙겨 먹으니까
"엄마, 고깃집에서 고기 먹어야지 왜 그런 것만 먹어?"
"아무거나 맛있게 먹으면 돼." 하고는 엉뚱하게 배만 채우고 왔더니
아이구야, 과식을 해서인지 속이 답답하니 울렁거리고 미치겠다.
집에 오자마자 자리 펴고 누워 속 답답한거 잊게 잠들게 해야지 하고는
깜박깜박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하며 자는데 핸폰이 울린다.
이 시간에 누구야? 하고 보니까 부산 사는 친구다.
"우짠 일이고? 잠 안자고?"
"니 생각나서 전화 했다."
"그래, 잘 지냈나? 별 일 없고?"
"나야 잘 지내지. 니도 잘 지냈나?"
"오래 살고 볼 일이데이, 니가 먼저 전화를 다하고 . . ."
"아이고 ~ 니가 몇 번이나 먼저 전화했다고 그래샀노?
내가 전화 안해도 니는 언제나 내 가슴에 있다."하며
가스나가 울먹울먹 거리며 운다.
"니 무슨 일 있나?"
"어데, 아무 일 없다. 니 목소리 들으니까 보고싶어서 그런다."
"진짜 아무 일 없는기제?"
"그래, 아무 일 없다. 너무 잘 지낸다."
서로 그간 안부를 물으며 작년부터 건강이 안좋아져
요즘 방콕 신세라 답답하게 지낸다고 하니까
"언제든지 내려온나,
아니, 우리 집으로 요양하러 내려온나."
"아이고 참말로 느그 집으로 요양하러 내려오라고? ㅎㅎㅎ"
"그래, 내가 니 병수발 들어줄게. 니 병수발 내가 해줄 수 있다."
"말이라도 고맙다. 날 잡아 함 내려갈게."
"니가 언제 날 잡아 왔나?
어느 날 갑자기 기차 타고 내려가는 중이다. 하고 왔지."
"그래, 니 생각나면 그 날로 내려갈게."
30여 분 통화를 하고나니 잠이 확 달아나고 시간을 보니 자정이 되고 있었다.
고3 짝꿍이였던 친구다.
멀리 떨어져 살지만 그 친구 말대로 우린 늘 가슴 속에 있는 친구다.
힘들었던 시절, 어렵게들 학교를 다녀야만 했던 시절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
그런 시절에 학교를 다니며 졸업을 하였다.
나도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학교를 다녔지만
그 친구는 형편이 더 어려워 등록금 미납으로 정학 처분을 받게 되었을 때
내가 가깝게 지내던 선생님들을 찾아 다니며
등록금을 빌려 그 친구 고3 마지막 등록금을 내주어 정학처분을 면하게 해주었다.
나중에 그 친구가 등록금을 가지고 학교에 다시 나오게 되었지만
정말 그때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깝게 지내던 선생님들을 찾아 다니며 돈을 빌려달라고 떼를 쓰며 다녔지만
그 시절에는 학교 선생님들 형편이 넉넉한 분이 별로 없었다.
그 중 어떤 선생님의 형편이 가장 나은 분이셨지만
당시 그 선생님과 자존심에 기싸움(?)을 하며 냉랭하게 지내는 터라
아쉬운 소리 하고싶지 않았지만 긴박한 상황이라
자존심 구기며 찾아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었다.
그때 그 선생님께서 가진 돈이 없다시며 가불증을 써주셔서
가불증을 가지고 서무과에 가서 돈을 찾아 그 친구 등록금을 내게 되었는데
그 후 그 선생님 앞에서는 내 자존심은 꼬랑지를 들 수 없게 되었고
살면서 그 친구한테 내가 언제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친구이겠지만
나한테도 그 친구와 그 선생님이 내 가슴에 남아있는 사람으로
늘 감사하고 감사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들리는 밤
그 친구의 반가운 전화에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
친구야, 잘 자라.
지난번에 갔을 때 잠을 깊이 못자고 자주 깨던데
오늘 밤엔 어려웠지만 그래도 꿈이 있었던 여고 시절 꿈을 꾸면서
깊게 편히 아침이 올 때까지 잘 자라
2013년 11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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