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 대청봉 일출을 보고 다시 중청 대피소로 내려 왔다.
대청봉에 오를 때 봉정암에서 새벽 2시 30분에 출발해서 혼자 왔다는 수원댁을 만났는데
일출 감상을 하고 같이 대피소로 내려와 매점에서 햇반 하나씩 사서
조리장으로 내려가니 김치찌개 냄새가 회를 동하게 한다.
"와 ~ 김치찌개 냄새가 너무 좋아요." 하니
양이 많으니까 같이 먹자며 한 그릇을 덜어 주니
생각지도 않은 선심에 부실하게 먹을 아침 식사가 푸짐해졌다.
그렇게 수원댁과 같이 아침을 먹고 중청대피소를 나선다
수원댁은 왔던 길로 다시 백담사로 가겠다는 것을
내가 가고자 하는 희운각 대피소에서 양폭포를 거쳐 천불동으로 내려가자 하고
가면서 수원으로 가는 버스는 자주 없는 것 같아
같이 내려가다 수원댁 페이스에 맞게 먼저 내려가라 하고 난 천천히 내려간다.
희운각 대피소까지, 아니 조금 더 아래까지는 가파른 돌계단 길을 내려가야 되는데
1.3km지만 보통 1시간 정도 내려 간다는데 난 1시간 40분 정도 걸려 내려 간 것 같다.
아, 그런데 희운각 대피소 아래로 내려갈 수록 기암절벽의 산세가 마음을 사로 잡고
힘들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천당 폭포부터는 환상적이다.
겨울에 쌓였던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아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고
높은 산 봉우리들, 그 아래 깊은 계곡들
길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고
여러 분들이 이 길을 만드느라 희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아, 그런데 내려갈 수록 발가락이 아파서
한 걸음 딛을 때마다 고통이 말이 아니였다.
출발 전에 항상 발톱 관리를 하고 오는데
이번에도 휙 ~ 보니까 괜찮을 것 같아 그냥 왔더니
이런 ~ 며느리발톱은 잘라내고 왔어야 되는데
다른 발톱만 살펴보고 깜박하고 온 것이였다.
이 산 중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냥 산길을 내려오는데
다리도 천근만근인데 발가락까지 아프니
한걸음 한걸음 걷는 것이 고통 그 자체였다.
아고 ~ 아파라.
그래도 멋진 풍경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잠시 고통은 잊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빠져 행복감에 젖는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내려오길 어언 8시간이 되어 비선대에 도착하였다.
대청봉에서 비선대까지 8km 6시간 소요된다고 하였지만
역시나 난 2시간 이상 초과 되어 내려 왔는데
아직 비선대에서 설악동 소공원까지 3km가 남아 있다.
비선대에서 소공원까지는 거의 평짓길이나 마찮가지여서
작년 마등령을 오를 때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1시간 정도 걸렸으니까
이제 다 내려 온거나 진배 없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고 발가락이 아파 걸음을 걸을 수가 없어
1시간 정도 걸려 올라가던 길을
내려오는데 2시간이 걸렸으니
내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상상이 가는가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산행을 마치고
소공원 탐방센터에 들려 "쓰레지 되가져오기" 그린 포인트까지 받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설악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발가락부터 챙겼는데
양쪽 며느리발톱을 잘라내니 진물이 폭 쏟아져 나온다.
잉잉잉 ~ 이렇게 발톱 속에 물집이 잡혔으니 얼마나 아팠겠는가.
이제 출발 전에 발톱, 특히 며느리발톱은 꼭 관리하고 가자.
이렇게 고통 속의 하산 길이였지만
또 다시 가고싶은 생각이 드니 나 설악산 사랑에 푹 빠졌나보다.
설악산아, 기다려라.
내 또 니보러 가겠노라.
2012년 5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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