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智美 아줌마 2011. 7. 7. 22:56
지난 주 짱구가 3일 유격 훈련 받으러 들어가 있던 중에 편지 한통이 왔다
수신자가 짱구 이름이였지만 발신자가 평택 사서함 번호로 왔기에
평택까지 가서 훈련을 받나?
그냥 생각없이 짱구가 훈련 받으면서 집으로 보낸 편지인가보다 하고
뜯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편지를 보니까 짱구 친구가 짱구한테 보낸 편지였다.
아고 ~ 어쩐다냐, 내가 실수를 했네.
짱구 편지인데 내가 뜯어봤으니 이 녀석 오면 한 소리 하겠다. 했지만
뜯은걸 어쩌겠냐, 이왕 뜯었는데 읽어봐야지.
그런데 편지를 읽는데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아, 이게 뭔 일이냐, 무슨 일인겨?
내가 짱구 편지를 실수로 뜯어보는바람에
차라리 모르고 있어도 될 것을 알아버렸으니
마음 약한 내 성격에 걱정도 되고 어찌 해야될지 생각이 들어 안절부절하였다.

그 편지는 그 친구가 구치소에 수감 중이면서 보낸 편지였던 것이다.
너한테 부끄러운 친구가 되서 미안하다고 . . .
많은걸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다고 . . .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되겠다고 . . .

내 자식이 전과자 친구를 두게 될지 상상이라도 해봤는가
무슨 잘못을 해서 구속까지 되어있는 것일까?
 절도? 폭행? 무슨 죄목으로 들어가 있는걸까
그렇게 그 아이가 내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데
다음 날 짱구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조심스럽게 "짱구, 엄마가 실수를 했는데 어쩌지?
"뭔데요?"
"엄마가 너한테 온 편지를 너가 부대에서 집으로 보낸 편지인줄 알고 뜯어 봤어.
발신지가 사서함이라서 부대에서 보낸건줄 알고 . . ."
"엄마는 왜 남의 편지를 뜯어봐요."
"그러게, 엄마가 실수했다고 하잖아, 미안해." 하며 편지를 건냈다.

"화내지말고  걔 왜 거기 가있는거야?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지만 잘못을 했어도 나오게 해야잖아.
공부하는 앤데 . . ."
"자세한 건 몰라요.  싸웠데요."

"폭행?"
"네 . . ."
"그럼 폭행은 합의를 보든 선처를 바라든 뭐든 해봐야지 그냥 두면 어떻게?
"모르겠어요. 자세한 말을 안하니까 . . ."

짱구가 유격 훈련 받으로 부대 들어가기 전 주말에
아침 일찍 친구 면회간다며 나갔었다.
"면회 간다고? 어딘데? "
"어디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동서울 터미널에서 만나 같이 가기로 했어요." 하기에
"그럼 카메라 가져가서 사진 찍어와. 남는 건 사진 뿐이잖아." 하니까
부대 내에서는 사진 못찍잖아요." 하며 갔었는데
그날 그 아이한테 면회를 간 것이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카메라 가져가라했으니 . . .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되나
"짱구, 앞으로 그 애 만나지 마라. 전과자 친구를 어떻게 둬.
그런 친구, 옆에 둬봤자 이득될 것 하나도 없어."
그렇게 말을 해야겠지?
내 자식만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되는게 맞을거다.

그런데 난 왜 그렇게 안될까
내 자식한테 피해가 될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 왜?
사람이 살면서 잘못 안하고 실수 안하고 사는 사람있는가?
있으면 나와봐, 하늘을 보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봐.
어린 아이들 아니면 다 부끄럽게 살지 않는가

내 자식 잘 키우려고 금이야 옥이야 흙 한점 안묻이고 키울 수 있겠는가
연꽃같이 그렇게 키울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는가
주변이 진흙 투성인데 내 자식이 나가면 진흙 밟지 않고 살 수 있는가말이다.

나도 내 자식 잘 키우고싶다.
그런데 그렇게 독야청청으로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진흙 묻은 친구가 있으면 진흙을 털어내줘야지
더럽다고 인연을 끊게한다고 끊고 지낼 아이들인가

친구의 인연은 12만 겁의 인연으로 맺어진다고 했거늘
그렇게 친구의 연을 맺은 아이들인데
잘못을 했다고 어떻게 인연을 끊겠는가
내 자식도 살면서 무슨 잘못을 할지도 모르는데 . . .

그 아이는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가 없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아이다.
전라도 어느 섬에서 아버지는 뱃일을 하시며 그리 넉넉치 않게 살고 있고
서울 와서 이것 저것 알바하면서 대학교를 다녔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의 고약한 쓴맛을 알아버렸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벗어나지지 않는 어려운 환경이 아이를 분노하게 하곤했었다.
그랬다. 그 아이는 . . .

그래서 고시원에서 자치할 때 가끔 밑반찬해서 보내주곤 했는데
그 아이를 생각하면 늘 안쓰러웠는데
순간을 참지 못하고 범법자가 되버렸으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되는지 난감할 뿐이다.

편지 내용에 그 아이 동생 전,번이 적혀있었다.
짱구 모르게 동생 전,번과 구치소 주소를 메모해 두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서 위치와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놓고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형 친구 엄만데 형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니? 무슨 일로 그렇게 되었니?
형 전과 붙게 그냥 두면 안되잖아."하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고소자가 여러명이라 쉽지가 않아요.
다음주에나 아빠가 올라오셔서 합의를 볼 수있는 방법을 상의할거에요.
내용은 전화로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한다.

"내가 형 면회가려고하는데 너도 같이 가지 않겠니?"
"네, 시간 맞춰볼게요." 했는데 연락이 안되서 나혼자 평택구치소로 면회를 갔다.
그 아인 나를 보더니 놀라했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계속 떨구고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하고 있다.

"괜찮아, 사람이 살다보면 잘못도 하는거야. 하지만 또 잘못을 하면 안돼.
다른 사람들은 용서가 안되어도 엄마는 엄마니까 용서가 된단다."
너는 내 아들의 친구니까 너 또한 아들과 같은 존재잖니.
아픈 생인손같은 그런 아들이다."
그런데 옆에 있으면 두둘겨 패주고 싶고 야단치고 싶다. 라고 말해주었다.

그 아인 내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가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어찌 내칠 수 있겠는가
자식이 잘못을 했다고 어찌 내치겠는가말이다.
나라도 감싸줘야지 더 이상 잘못을 하고 수렁에 빠지지 않게 보듬어줘야하지 않겠는가
접견 마치고 나오면서 영치금과 속옷과 먹거리 신청해 넣어주고

내가 도울 길이 없을까하고
평택 검찰청, 법원, 경찰서를 다 찾아가봤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가끔 면회나 가주고 편지나 보내주는 것 . . .
그리고 검사님, 판사님께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라도 보내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꾸 눈시울 뜨거워져 눈물이 난다.

2011년 7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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