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가출한 손님 되돌려 보내기

智美 아줌마 2011. 7. 20. 23:32

늘 싸가지랑 별일이 없으면 일요일 저녁무렵에 목욕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마트 들려 장을 봐가지고 온다.

그날도 여느 날같이 목욕을 갔다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하는데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털이 곱실곱실 커다란 갈색 푸들 한마리가 마트에 들어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게 아닌가
사람들은 누가 마트 안에 큰 개를 데리고 왔냐고
다들 피하면서 한소리씩들 한다.

그러더니 이 녀석 마트 밖으로 나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자신한테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천방지축 신이났다.
찻길로 뛰어들어갈까봐 우리 모녀는 놀라 따라갔고
다행히 싸가지가 잡아서 안고 마트 안으로 들어왔다.
상황을 보니 마트에 온 사람 중에 강쥐 주인은 없는 것 같았다.

"얘 어떻게 해" 싸가지와 나는 강쥐를 보고 난감했지만
작년 여름, 우리 심탱이 잃어버렸을 때
나흘만에 경기도 포천 동물구조대까지 가서 찾아왔던게 생각이 나서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다.

강쥐 상태를 보니까 내다버린 것 같지가 않았고 털도 깨끗한게
가출한 녀석인 것 같아 마트에 연락처를 남기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사흘 밤낮을 동네를 돌면서 심탱이 찾아다닐 때
얼마나 낙심이 되는지 밥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정말 아무 의욕도 없이 멍하니 만사가 다 귀찮았었다.

제일 많이 사고를 치고 식구들마다 다 물어서 피투성이가 되게 했어도
함께하던 강쥐 한마리가 없어지고나니까
퇴근들해서 집에와도 말 수가 줄어들고 집 분위기가 가라앉고
서로 대화가 단절되어 갔었다.

그러니 이 녀석 집 식구들도 얼마나 애가 탈까하는 생각에
동물구조대로 보낼 수가 없어 며칠 데리고 있으면서
실종 전단지라도 붙기를 기다려야지 했다.

다행히 아이가 순해서 잘 따르고 귀염을 떨어 데리고 있기에 괜찮았는데
집이 낯설어서인지 첫날 밤에는 잠을 안자고 왔다갔다
새벽이 되서야 잠을 자더니 다음 날엔 다른 아이들 자니까
푸들도 내 옆에 와서 잠을 잤다.

그런데 월요일 여친들 모임이 있어 외출을 해야되는데
심탱이가 푸들이 앞에서 얼쩡대면
으르렁대서 행여 식구들 없을 때 싸우기라도하면 어쩌나하고
나갈 때 마루에 푸들을 혼자 두고 우리 강쥐들은 방에다 놔두고 나갔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해서 몇명이서 청계천을 갔다오는데
짱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푸들이 대형 사고쳤어?
뭔 사고?
현관문에 방음장치해둔 것 다 뜯어놨는데
어떻게 치워야될지 엄두가 안나요."한다.

우씨 ~ 이 녀석 순해서 사고 안치겠다 생각했더니 . . .
아쿠야 ~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여니까
문에 붙여놓은 계란판과 신문지볼 방음스폰지를 다 뜯어서 난장판을 만들어놓았다.
저녁내 치우고 현관문에 붙어있던 것을 절반은 잘라내고
땀 줄줄 흘리면서 새로 시공을 하고 정리를 하고 나니까 싸가지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푸들 가족인 것 같은데 연락이 왔어.
어떻게 알고?
응, 내가 출근해서 동물구조대, 유기견센타, 애완견 카페 . . .
여러 곳에다 가출견 데리고 있다고 올려놓았더니
자기네 강쥐같다고 전화가 왔는데 맞는 것 같아.
아이고 ~ 다행이다. 그런데 왜 강쥐 찾으러 안다니고
실종 전단지도 안붙였다니?"

가출견 데리고 있으면서 혹시라도 강쥐 찾아다니는 사람이 눈에 띌까하고
도리어 내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장사하는 분들께 물으며 다녔는데
참나 . . . ㅎㅎㅎ

사정인즉, 일요일 저녁무렵 91살되신 할머니가 현관문을 여니까
이 녀석이 냅다 튀어나갔다는 것이다.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께서 혼자 집에 계시던 중에 일어난 일이라
아파트 입구까지 따라가셨지만 그만 놓치고 마셨다고 . . .

그래도 우리 심탱이 잃어버렸을 때는 전 식구가 주변 동네를
며칠을 밤낮없이 찾아다녔는데
사정이 있겠지만 그 푸들 주인들은 참 소극적인 것 같았다.
재미있는 건 우리 심탱이는 방학동까지 가서 동물구조대에서 나와 데리고 갔는데
이 녀석은 방학동에서 쌍문동으로 원정을 왔다.
방학동과 쌍문동 경계되는 지역이긴하지만 . . .

그렇게 며칠 데리고 있다보니 우리들도 정이 들었다.
나를 졸랑졸랑 따라다니고 심탱이가 으르렁하려치면
얼른 내 무릎에 올라와 안기던 녀석인데
그래도 보호소에 보내지 않고 주인을 찾아주게 되어 참 다행이였다.

그래서 어제 통화한 청년의 형이라는 사람을 만나 전해주었는데
녀석, 자기 식구인줄 알고 앞발을 뻗어 아는 척을 한다.
그 녀석 이름이 푸딩이라고 . . .
아, 그런데 그 형이라는 청년 메너는 꽝인 것 같다.

군대는 갔다온 것 같고 나이는 대략 스물예닐곱 정도는 되보였는데
강쥐 데리고 가면서 말로만 고맙습니다 하고 갔다.
뜨거운 날, 그것도 며칠이나 데리고 있었고 사고까지 친 녀석을
데리고 가면서 시원한 음료수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안사주고 간다.

마트 앞에서 만났는데 꼭 댓가를 바라고 데리고 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사례를 하게되는데
강쥐 키우는 사람끼리라 사례는 바라지 않지만
뜨거운데 데리고 나갔으니까 사례는 못해도
시원한 음료수라도 하나 사줘야되는게 도리가 아닌가 싶다.
그집 어른들이나 청년들도 그런 예의는 모르고 사는 사람들 같다.

저녁에 짱구가 와서는 푸들 데리고 갔냐고 물으면서
"엄마, 시원한 음료수라도 사주고 갔어? 하기에
"아니, 그냥 말로만 고맙습니다. 하고 가더라. 하니

"에이 ~ 몇살이나 되보이는데 말로만 하고 가?
그런 경우에 사례까지 하고 가는게 경우인데 우리야 사례를 받을 생각은 안하지만
그래도 더운데 데리고 나갔으니까 시원한 음료수 하나라도 사주고 가야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네." 한다.
어이구 ~ 이쁜 우리 아들, 나가서 경우없게는 안하겠네. 하며 웃었다
오지랖 넓은 벤다, 이 오지랖을 누가 좀 말려줘 ~ ㅎㅎㅎ


문제의 주인공 푸딩입니다.

2011년 7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