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홀대받은 군화의 비애

智美 아줌마 2011. 7. 4. 23:28
2박3일 훈련이라고 하더니 연락도 없이 3박4일 동안
아그들을 혹사 시키고 녹초가 되서 짱구가 집으로 왔다.

더블백에는 온통 비에 젖고 흙범벅이 된 옷들로 가득하고
목은 쉬어서 말도 제대로 못해 쉐쉐거린다.
와 ~ 옷도 옷이지만 군화를 보니
군화가 검정색이란게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진흙으로 뒤집어 쓰고 있다.

주말 내내 바람에 말리고 집에서 흙 털고 닦아주려니까
에구 ~ 집에서 해결할게 못되는 같아
집 근처 구두 수선집으로 가져갔더니

"군화 못 닦아요. " 한다.
"왜 군화를 못닦아요?"
"그렇게 곰팡이 선걸 어떻게 닦아요?"
"무슨 곰팡이가 설어요? 훈련 받아서 흙 묻은거지요."
"그래도 다른데 가서 닦으세요. 난 못닦아요." 한다.

멀끔하게 차려 입고 앉아서 이쁜 여자 구두만 닦으려나?
배가 불렀지.
어떻게 신발 가려서 닦아.
살다보니 별 그지깽깽이 같은 사람 다보겠네.
은근히 부화가 치민다.

누구를 위해서 누구때문에 젊은 애들이 진흙탕에서 뒹굴며
쌔가 빠지게  생고생을 하고 왔는데
지저분하다고 군화를 못닦아준다고?
자기가 노상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게 다 누구 덕인데
세금 한푼도 안내고 시민들 불편해도 먹고살게 해준거 아니냐고

그런데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아이의 군화를 못닦아준다니 말이되냐고?
그래, 인간아 당신 자식, 손주는 군에 안가냐?
내 더러워서 다른데 간다. 고래해가지고 잘 먹고 잘 살겠냐?

겨우 세수나하고 부시시 집에서 뒹굴던 원피스 입고 그냥 나갔는데
어쩌겠냐, 시간도 없고 버스를 타고 구민회관 앞에 있는 것 같아 갔더니
얼레? 없네. 하는 수 없이 또 버스를 타고 쌍문역으로 갔다.
쌍문역에는 아줌마가 구두 수선집을 하는데가 있어 그 집으로 갔다.

"아줌마 군화 좀 닦아주세요." 하고 처분(?)을 기다리니
꺼내주셔야지 닦아 드리죠. 한다.
아무런 불평없이 구두약을 쓱쓱 바르니 금새 새 군화가 되니
앞서 상했던 기분이 확 ~ 풀리는 것 같다.

그아줌마 아들은 중3이라 아직 멀었지만
지난번 고양 꽃박람회에 갔을 때
해군 군악대들이 때약볕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아리더라는 말을 하였다.

우리 아들도 나중에 군대가면 저렇게 때약볕에서 훈련 받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말을 하였다.
역시 부정도 강하다지만 그래도 모정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업화도 아니고 아들같은 애들이 힘들게 훈련 받아
훍투성이가 된 군화를 지저분하다고 안닦아주는게 말이되냐고
에이 ~ 글쓰다보니 또 열받네.

2011년 7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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