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사소할 수 있는 기억도 때로는 크게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다.
샛방살이 시절 . . .
아주 오래 전 우리 아이들이 초딩이 유딩이 때
아주 똑똑한 강쥐 애롱이가 있었다.
언니 사업장에 놀러 갔다가 직원이 어떤 집에서 얻어 온 강쥐였는데
당시 우리 아이들이 강쥐를 너무 무서워했고
하물며 베터리를 넣어 왕왕 짓는 강쥐 장난감 조차도
무서워 가지고 놀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아이들 무서움 없애 주기 위해 그 직원한테 부탁해서
며칠만 데리고 있다가 돌려주겠다고 하고는 데리고 왔는데
막상 며칠 데리고 있다보니 정이 들어 도저히 데려다 주지를 못하였었다.
그 직원은 "이모님, 강쥐 언제 데리고 오실건데요?" 하며 매일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 마음이 아파 못보내겠는데 어떻하나?
삼촌은 나중에 또 얻어서 키우고 우리가 키울게, 응?" 하며 사정을 했다.
그렇게해서 우리집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아이들이 강쥐를 방에 들여놓으면 침대 위에 올라가 울고불고 . . .
그렇게 하루하루 난리를 치면서 함께 부대끼며 살게 되었다.
이름도 네살박이 짱구가 서투른 발음으로 "애롱이"라고 지었다.
함께 살면서 아이들도 무서움이 사라지고
나갔다오면 부둥켜안고 뒷산에도 데리고 가서 산책도 하곤하였다.
하지만 애들아빠는 강쥐를 좋아하지 않아서
날마다 갖다 버리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하루하루 눈치 속에서 애롱이와 함께 하였다.
한달을 애들 아빠 퇴근할 시간즈음되면 옥상에 올려 놓고
출근하면 다시 데리고 내려오고 . . .
참으로 야속한 시간들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해 들어오면서 하는 말
"저 녀석은 지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들어오면 좋다고 꼬리치나몰라"
서서히 애들아빠 마음에도 애롱이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였다.
휴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애롱이를 데리고 운동도 나가고
그렇게 가슴으로 품으며 함께 살았다.
애롱이는 바둑이과로 세파트 축소형같이 생긴 검둥이였는데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강쥐였다.
이웃에 월담하는 도둑을 두번이나 짓어 사람들에게 알려 피해를 막았고
가르켜주고, 잘못한 것을 야단치면 눈치 빠르게 기억하고
그다지 힘든줄 모르고 키웠다.
6월 어느날 처음 출산을 할 때 한나절을 함께 진통을 하였고
고통에 힘겨우면 내 팔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탄생의 신비로움을 나에게 보여주었었다.
그날의 기억은 정말 잊혀지지가 않는다.
처음으로 출산하는 것을 보았고 내 손으로 한녀석 한녀석
새끼를 받아 내었으니까.
그렇게 서로에게 즐거움이 되면서 살았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었다.
당시 첫번째로 내가 보증을 서 집이 넘어가 세를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1층에 사는 집주인이
강쥐(애롱이와 애롱이 새끼 방울이)들을 없애라고 한 것이였다.
얼마 전 주인 집에서도 강쥐를 두마리나 데리고 왔기 때문인데
그래도 애롱이를 이뻐하고 내가 강쥐에 관한 상식이 많다고
주인집 강쥐들이 이상할 때면 날 불러서 묻곤하였는데
변덕스러운 주인 성격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2층과 1층은 따로 분리가 되어 있어
우리 강쥐들이 내려 가지도 못하는데
뭔 심술이 났는지 강쥐들 치우라고 . . .
에효 ~
내 성격이 살면서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하다보니
며칠 고민 끝에 다른 집으로 보내게 되었다.
이사를 갈까도 생각했지만 이사까지는 여의치가 않아서
그리하기로 결정을 했었다.
애롱이 모녀를 보낼 때 그 기막히던 마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강쥐들을 동네 세탁소 아저씨 친구 집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떠나보내던 그날, 오래도록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에구 ~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애롱이 모녀를 그 친구분께 건내주고
그 아저씨는 바구니에 담아 가셨는데
방울이는 바구니에 매달려 깽깽거리며 자신을 꺼내 줄 것을 애원 하였지만
애롱이는 돌이 되어 꼼짝하지 않고 뒤돌아 서있었다.
"애롱아,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엄마 한번만 보고 가라." 하며
몸을 돌려보려했지만 꿈쩍도 앉고 끝내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갔다.
그렇지, 엄마가 어떻게 자식을 보낼 수 있는건가
엄마도 아니지, 무슨 엄마야 . . .
보내고 식탁에 앉아 얼마나 울었던지 . . .
우리 딸 싸가지는 학교 갔다가 와서 보니 애롱이가 없는 것을 보고
침대 밑에 머리를 박고 얼마나 흐느껴 울었던가.
우리 아들 짱구는 유치원 갔다와서보니 애롱이가 없는 것을 보고 묻길래
대문이 열려서 나갔는데 길을 잃었는지 아직도 안들어온다고 했더니
온동네를 돌며 목터져라 "애롱이"를 불렀었다.
살면서 가끔가끔 생각이 났지만
요즘들어 이상하게 애롱이 생각이 많이 난다.
더 잘 해주지 못했던 것 . . .
야단치며 소리 질렸던 것 . . .
맛있는 것도 제대로 못해준 것 . . .
지금 강쥐들과 살고 있어서인지 더 그런 것 같다.
아직 살아있을까
아님 벌써 사람의 손에 의해 명을 달리했을까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애롱이 모녀 보내고 며칠 있다가
주인 아줌마가 부르는 소리가 나서 내려다 보니
애롱이 주라고 먹거리를 준다.
강쥐들 없애라고해서 다른 집에 보냈어요.하니
그렇다고 보냈냐고 한다.
참내 기가 막혀서 . . .
남한테 싫은 소리 못듣는 내 까칠한 성격이 참지 못하고
애롱이 모자를 보낸 것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흐렸다, 맑았다, 천둥치는
변덕스러운 주인 아줌마땜에 마음 다친 적이 한두번이였나
그렇게 마음 고생으로 3년간 그집에서 샛방살이를 하고
그 이듬해 다세대를 사서 이사를 하였다.
가끔 우리 심탱이가 말썽을 부리고 화나게 하면
"너 이녀석 자꾸 말썽 부리고 아야(가끔 물때가 있다)하면 유기견 센타에 보내 버린다."
말귀는 알아들어서인지 지가 "아야"하고 잘못하고나면
책상 밑에 숨고 벌로 밥을 안줘도 배고프다고 떼도 안쓴다.
며칠 전 우리 싸가지 친구가 심탱이가 맘에 든다고 달라고 하였는데
싸가지도 나도 어떻게 보내냐고 못보낸다고 하였다.
제일 미운짓을 많이하지만 그래도 제일 많이 웃게 하는게 심탱이니까.
2009년 6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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