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의 연가 |
해머링맨은 높이 22미터, 무게 50톤의 거대한 움직이는 조각품으로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 독일, 스위스, 미국 등에 이어 일곱 번째로 2002년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 세워졌다. 일하는 기쁨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망치 든 오른 팔이 1분 17초마다 위, 아래로 움직인다.(서울역사박물관 건너 위치)
광화문을 43년간 든든하게 지킨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8년 4월27일 세워졌다. 이날은 충무공 탄신 423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당초 세종로에 세워지는 동상으로 세종대왕(덕수궁에 설치)이 강하게 거론됐지만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게 된다.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풍수지리학자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왜적을 물리쳐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 최종 선택됐다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인종 1년) 4월28일 서울 건천동(지금의 인현동)에서 부친 이정(貞)의 4형제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충무공은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진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에서 전승을 거뒀다.
또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했다.그러나 1598년 철수하는 적선 500여척이 노량(露梁)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을 기습했으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독전고가 뉘어 있어 제대로 된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하다고 . . .
거북선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적을 격퇴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기록상으로는 조선초 문헌에 처음 나타난다.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 장군이 창제귀선을 건조하여 왜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전선으로 평가된다
칼란디바
마가렛과 팬지
지하철 5호선 역 출입구, 세종벨트 통합 티켓팅&인포센터
나는 왕비다. ㅎㅎㅎ
광장 바깥쪽에는 물이 흐르는데 연대별 조선 실록의 중요한 사건들을 명시해 놓았다.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토스카가 공연 중인가보다. 언제 이곳에서 공연을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 . .
이순신 장군 혼자 광화문을 지키셨는데 이젠 세종대왕과 함께 지키신다.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제4대 왕(재위 1418~1450). 젊고 인품이 고매한 학자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다. 조선의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문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문화를 일으켰다. 4군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국방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조선 세종 이후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쓰인 기구로 1441년 세종 23년 8월에 호조가 측우기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다음해 5월에는 측우에 관한 제도를 새로 제정하고 측우기를 만들어 서울과 각 도의 군현에 설치하였다.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특히 세종실록에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기구로 선기옥형, 혼의, 혼의기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는 1433년(세종 15) 정초·정인지 등이 고전을 조사하고 이천·장영실 등이 그 제작을 감독하였다. 이로부터 천문학의 기본적인 기구로서 조선시대 천문역법의 표준시계와 같은 구실을 하게 되어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가,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과 송이영이 각각 만들었다.
이중 송이영의 것은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와 특징을 잘 살펴 추를 시계장치의 동력으로 이용한 것이다. 송이영의 혼천의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세종대왕 동상 지하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기념관이 있지만 시간이 늦어 관람을 못하였는데 생각보다 꽤 넓고 볼만한 자료들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면 좋을 것 같다.
광화문과 인왕산이 보인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 년 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한일합방 후 1927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북쪽에 이전시켰고, 그후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8년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시켰다. 2006년 12월부터 광화문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어 2010년 8월에 완료되었으며 제65주년 광복절에 맞춰 8월 15일에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꼭 종이접기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뽀 ~
교보빙딩 쪽으로 횡단보도 건너면서 한 컷!!
늘 지나다니면서 뭘까? 궁금했는데 . . .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는 대한제국의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1902년 세운 기념비이다. 이 기념비의 비문에는 고종이 황제를 칭한 것과,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한 것, 그리고 고종이 즉위 40년이 된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모임 마치고 경희궁과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다보니 어느새 샐러리맨들의 퇴근 시간이 되었다. 우루루 넥타이 부대들이 빌딩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저 아저씨들 일행들과 헤어져 서성이더니 물가에 앉아 버린다.
왜? 집에 안가고? 길위에 앉아있을까? 왠지 쓸쓸해보이고 중년의 고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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